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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법에 담긴 미국의 저력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파리드 자카리아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회고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관한 부분이 아니다. 그가 폭로한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알려진 것들이고 나머지는 가십과 배경설명 정도다,

그러나 코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관한 기술에서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많은 사실을 털어놓았고 국가적으로 대단히 중요할 뿐 아니라 미국에 희망을 주는 변호사들과 법률문화의 역할을 드러내 보여줬다.

이른바 적폐세력을 상대로 트럼프 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싸움의 상당 부분은 부시 시절 전개된 전투의 반복에 불과하다.

코미가 상세히 기술했듯이 9·11 이후 부시 행정부는 법무부 변호사들이 불법이라고 판정한 ‘스텔라 윈드’라는 사찰 프로그램을 운용했다.

지난 2004년 당시 와병 중이던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의 직무를 대행한 코미 법무차관은 이 프로그램을 갱신하는 데 반대했다.

그러자 앤디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과 앨버토 곤잘러스 대통령 보좌관은 코미의 반대를 누르기 위해 프로그램 연장 승인안을 들고 직접 애슈크로프트의 병실로 찾아갔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코미는 당시 FBI 국장이던 로버트 뮬러에게 연락해 지원을 요청한 후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애슈크로프트는 누구의 훈수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일언지하에 카드와 곤잘러스를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그로부터 몇 분 뒤 병원에 도착한 뮬러는 병석에 누운 자신의 상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일생에 한 번 하나님의 시험을 받게 됩니다. 장관께서는 오늘 밤 그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코미는 그때 그 자리에서 울고 싶었다고 말했다. ‘법이 지켜졌다’는 생각에서였다.

두 번째 대결은 고문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부시 행정부는 ‘개선된 심문기술’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코미의 생각은 달랐다. 법무부 수석변호사인 잭 골드스미스 법무국장도 그와 같은 견해를 보였다. 이에 코미는 온 힘을 다해 고문을 합법화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맞섰다.

이 두 가지 케이스 모두에 대해 백악관은 어마어마한 외압을 행사했고 부시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 설득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각료도 아닌 임명직 공무원 코미와 나눈 대화에서 부시 대통령은 개선된 심문기술이 행정부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코미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법무부가 합법으로 인정한 것 외에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마르틴 루터의 말대로 이곳에 내가 서 있으니 다른 곳에 설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일화가 놀라운 이유는 코미와 뮬러 모두 부시에 의해 임명된 고위공직자일 뿐 아니라 공화당원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줄기차게 법과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개인과 정당에 대한 충성심보다 우선시했다.

이런 행동은 개인적 성격의 산물일 수 있지만 법적 훈련으로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비단 뮬러와 코미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설사 대통령이 원하는 바가 다르다 할지라도 정부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하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믿는 행정부 내 각 부처 소속 변호사들 전체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해 6월 트럼프가 뮬러를 해임하려 했던 당시를 떠올려보라. 그때도 돈 맥건 백악관 법률고문이 뮬러가 해임될 경우 항의의 표시로 자신 역시 사임하겠다며 트럼프에게 으름장을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행정부를 떠나기 직전 코미는 국가안보국(NSA) 연설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예스’라고 말하는 것이 좋은 변호사가 할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노’ 역시 좋은 변호사가 해야 할 말입니다. ‘예스’보다 ‘노’라고 말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노’는 생명이 경각에 달린 폭풍의 위기 한가운데서 큰 소리로 사방에 외쳐야 하는 말입니다. ‘노’는 때때로 커리어를 끝장내기도 합니다.”

미국에는 변호사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종종 듣는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매우 위대한 장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법률문화다.

내가 전에 썼듯 알렉시 드 토크빌은 애국적이고 이타적인 귀족계층이 없다면 미국이 결국 선동가들과 대중주의자들의 먹이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러나 토크빌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법조계에서’ 미국의 귀족층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위안받았다.

그는 시민적 의무감(civic duty)을 지닌 변호사들이 속박받는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민주주의의 축복을 보존하는 데 도움을 줄 공공책임(public accountability)의 양식을 만들어낼 것으로 봤다.

코미의 회고록은 미국이 실제로 갖고 있는 뚝심을 알려준다. 그것은 법과 변호사들이 지닌 저력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저력에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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