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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직장갑질 미투'가 강물처럼 흐르려면

김민형 사회부 차장





“결국 사표를 썼어요. 1년 넘게 시달리니 못 버티겠어요.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요.”

얼마 전 만난 기자의 지인은 기어코 회사를 그만뒀다. 1년여 전부터 ‘갑질’하는 상사 때문에 힘들다더니 7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나와버렸다. 다행히 그는 새 직장을 구했다. 외국계 회사다. 연봉은 조금 적지만 상호존중 문화에 끌렸단다.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소주잔을 들었다. “복수 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새 직장에서의 희망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의 무게를 생각하라”는 말을 붙였다. 일순간 지인의 눈에서 상처 입은 맹수의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무섭게 후회가 몰려왔다. 쓸데없는 사족이었다. “제가 왜 참아야 합니까. 저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길 게 뻔한데. 그냥 모른 척하라고요? 그렇게는 못해요.”

이명희·조현아·조현민씨 등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다. 언론 보도로 속속 드러난 그들의 행태를 보면 기업 오너로의 우월적 지위를 넘어 마치 법 위에 군림하는 존재들 같다. 오죽하면 경찰·관세청 등이 득달같이 수사에 착수했을까.



많은 직장인은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에서 갑질에 노출된다.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상사의 거친 폭언과 부당한 지시에 속앓이를 한다. 사표를 가슴속에 품고 만지작거리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뽑아내지 못할 뿐이다. 갑질 폭풍이 불어닥칠 때 내 자아의 존엄성을 잠시만 모른 척하면 될 일이다. 그 사이 마음속 멍은 하루가 다르게 색깔이 짙어지겠지만 인간의 존엄성보다 당장 눈앞의 생계가 더 걱정이다.

새삼 ‘미투(MeToo)’ 고발자의 용기가 존경스럽다. 직장 갑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서도 그야말로 전력으로 한 걸음을 내디뎌 범죄자들을 단죄했으니 말이다. 다만 ‘직장갑질 미투’는 성폭력 미투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상대적 약자의 인권을 유린하고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것은 비슷하다. 다른 점은 성폭력은 명백한 ‘범죄’로 분류되고 구체적인 상황별로 법적 처벌조항이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직장 갑질은 이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 폭언을 비롯한 각종 갑질이 후배를 위한 ‘교육’이나 ‘지도’로 손쉽게 포장되는 이유다.

직장갑질 미투가 또 다른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드유(WithYou)’가 필요하다. 또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지나친 폭언, 부당한 인사, 비합리적인 업무배분 및 업무배제 등 다양한 형태로 행해지는 갑질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행태별로 법적 처벌을 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 ‘Gapjil’이라는 단어가 외신까지 타며 전 세계에 알려진 마당이다. 지금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우리 자식들도 가슴속에 사표를 품고 다니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kmh20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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