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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남과 북, 설레었던 65년 간의 '첫 순간들' 총정리

주한미군 핵무기 남한 첫 배치(1958년) '대립모드'서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으로 첫 공식대화 시작
첫 공동성명은 1972년 7.4 선언…'상호 불가침' 합의
1991년엔 첫 비핵화 선언도…2006년엔 北 첫 핵실험
2000년 시드니올림픽, 한반도기 들고 남북 첫 공동입장
2018년 11년만의 '평화모드'…11년만의 남북정상회담
北 지도자 첫 남녘 땅 밟고 '한반도 비핵화'도 첫 명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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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남과 북, 설레었던 65년 간의 '첫 순간들' 총정리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그어진 ‘군사분계선’ 표식 / 통일부 자료 캡처

남과 북이 헤어진 지도 벌써 65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동안 한반도에는 긴장과 대립, 충돌이 반복돼왔죠. 지난달 27일 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처음 만나 올해 안에 ‘종전 선언’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까지 수용할 의향을 밝히기도 했죠. 지난 65년간 수차례 반복됐던 갈등과 평화, 이번에는 정말 이를 끝내고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까요.

한반도에 설렜던 ‘첫순간들’ ▲영상으로 보기▲


■분단 18년 만에 처음 마주한 남북

서로 으르렁대기만 하던 남과 북이 대화를 시작하게 된 건 분단된 지 18년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그동안 한반도에는 주한미군의 핵무기 남한 첫 배치(1958년), 남북한 확성기 방송 첫 시작(1962년-63년), 북한 간첩의 첫 남한 침투(1968년), 한미 합동군사훈련 첫 전개(1969년) 등 긴장의 연속이었죠.

그러다 처음 공식 남북 대화가 열린 건 1971년 9월 20일,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적십자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쉽게 풀리진 못했습니다. 이산가족 첫 만남은 그 뒤에도 15년이나 지나서야 이뤄졌거든요.

이때 판문점에는 남북 직통전화도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최근 남북 두 정상 간 핫라인도 처음 만들어진 것 뉴스에서 봤죠? 이건 무려 첫 전화 개통 47년 만에 성사된 대단한 일입니다.

[스토리텔링] 남과 북, 설레었던 65년 간의 '첫 순간들' 총정리
1971년 9월 22일 처음 개통한 남북 직통전화

[스토리텔링] 남과 북, 설레었던 65년 간의 '첫 순간들' 총정리
첫 전화 개통 47년 만에 연결된 남북 정상 간 ‘핫라인’ / 연합뉴스



■첫 남북 공동성명은 1972년 7.4 선언…‘상호 불가침’ 합의


첫 공식대화 이후 최초의 7.4 남북 공동성명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상호 인정, 상호 불가침’ 원칙을 정한 역사적인 첫 합의였습니다. 하지만 이때 박정희 정권이 남한에서는 ‘반공’을 외치며 긴장감을 키웠고, 북한이 판문점에서 벌인 잔혹한 도끼만행사건 때문에 전쟁설까지 돌기도 했습니다.

80년대 들어 전두환 정권이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북측에 제안하기도 했지만, 북한은 미얀마에서 테러를 일으키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죠.

북한의 ‘양면 전략’은 쭉 이어집니다. 1984년, 서울에 물난리가 크게 났을 땐 북한이 남한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호품을 보낸 적도 있었죠. 분단 이후 31년 만인 1984년에는, 제1차 남북경제회담을 통한 첫 남북 경제교류 논의와 1985년 대망의 첫 이산가족 상봉, 첫 남북 예술단 교환이 성사되기도 했죠. 북한은 그해 말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처음 가입하며 평화의 길로 들어서는 듯했습니다.

[스토리텔링] 남과 북, 설레었던 65년 간의 '첫 순간들' 총정리
대한항공 비행기 폭파사건 당시 현장을 중계하고 있는 뉴스 화면 캡처

■단일화에서 비핵화까지… 봄바람 부는 90년대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한항공 비행기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처음 ‘테러지원국’으로 국제사회에 찍히고 맙니다. 그즈음 소련의 해체가 영향을 미쳤을까요. 북한은 또다시 통일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에는 남북 간 첫 고위급회담이 열렸습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첫 ‘군축(군비 축소)’ 논의가 여기서 이뤄졌죠. 1990년에는 분단 37년 만에 첫 남북축구대회가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개최됐습니다. 이듬해에는 전설적인 콤비 현정화, 리분희 선수의 남북 탁구 단일팀이 세계 우승까지 따냈죠. 이게 바로 ‘코리아’의 저력임을 보여준 대사건이었습니다.

남과 북은 여세를 몰아 1991년 국제연합(UN)에 동시 가입하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교류 협력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나온 게 남북의 첫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입니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에도 서명했습니다. 훈훈한 남북의 ‘썸 타기’에 1992년 미국은 38년 만에 처음으로 한반도에서의 한미 합동군사훈련도 중단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때는 정말 드디어 대립을 끝내고 평화의 길로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걸요. 1993년 3월, 북한이 비밀 핵무기 개발계획을 들키고 맙니다. 북한은 즉시 핵확산금지조약과 핵안전협정을 탈퇴하겠다고 압박했고 그 유명한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위협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땐 진짜 전쟁이 날 것 같아서 사재기 열풍이 있기도 했죠.

그러나 북한 최고지도자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북한은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를 통해 핵 활동을 멈추기로 약속합니다. 물론 경수로 건설 지원 등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얻어낸 결과였지만요. 분단 이후 44년 만인 1997년, 남북과 미국, 중국 간 첫 다자회담도 개최됐습니다. 민간교류의 물꼬를 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소 떼 1,001마리 방북과 금강산 관광의 시작도 이때 있었던 일이죠.

하지만 미국 부시 행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제네바 합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결국 중거리미사일 대포동 1호를 시험발사하고 분단 후 첫 남북 해상 교전인 제1연평해전까지 일으키며 도발을 이어갔습니다.

[스토리텔링] 남과 북, 설레었던 65년 간의 '첫 순간들' 총정리
금강산을 관광 중인 당시 관광객 모습 / 연합뉴스

[스토리텔링] 남과 북, 설레었던 65년 간의 '첫 순간들' 총정리
2000년 9월15일 시드니하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사상 처음으로 ‘코리아’란 이름으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입장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 연합뉴스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북한은 첫 핵실험 도발

이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놓은 것이 바로 2000년, 분단 후 47년 만의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겁니다. 그 결과 개성에는 공단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15년 만에 첫 이산가족 상봉도 재개됐습니다.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 때는 남과 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처음으로 공동 입장을 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죠.

오래간만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지나 싶었는데… 2002년 1월, 9·11테러 이후 열 받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며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넣어버린 겁니다. 그러자 북한은 평화 분위기 속 진짜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북한은 2002년 10월 17일,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선언했고, 2003년 1월 10일 핵확산금지조약에서도 진짜 탈퇴해버렸죠.

사안이 심각해지니 중국과 일본, 러시아까지 합세한 첫 6자회담이 2003년 8월 열리게 됩니다. 어렵게, 어렵게 4번의 회담이 연이어지는 사이 북한은 2005년 처음으로 핵무기 보유 선언을 터뜨리기까지 하죠. 그해 9월 19일 북한이 마침내 체제 안전을 약속받으며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기로 약속하지만, 협상 결과가 흐지부지되니까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나갑니다. 대포동 2호 발사에 이어 2006년 10월 첫 핵실험까지 단행했습니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두 번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 2007년 10월, 분단 이후 54년 만에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간 겁니다. 두 정상은 10.4 선언을 통해 처음으로 ‘종전선언’까지 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때 개성관광도 처음 시작되고, 북한은 테러지원국에서 빠지는 등 또다시 한반도에 순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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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 발사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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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걸어 넘어가는 노무현 대통령 내외 / 연합뉴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폭탄에 극단으로 치닫는 한반도

그러나 북한은 2009년 5월 또다시 2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야망을 드러냅니다. 보수정권인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남북 관계도 급속도로 긴장되기 시작했죠. 2010년에는 천안함 사건이 터지며 금강산 관광 11년 만에 대부분의 대북 교역과 교류가 중단되고 맙니다. 2013년에는 3차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광명성 3호의 위성궤도 진입 성공 위협으로 개성공단도 운영 8년 만에 완전 폐쇄돼 버렸죠.

북한은 계속해서 4차, 5차, 6차에 이르는 핵실험과 거듭된 미사일 발사를 통해 결국 미국 본토까지 닿는 대륙 간 탄도미사일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2017년 9월 주장해 전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사이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죠. 사상 최대의 대북제재와 압박이 이어지며 북한과 미국 관계는 극단까지 치닫게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논란이 많았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하면서도 베를린에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발표해 통일 논의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무슨 뜬구름 잡는거냐’는 비판만 거셌습니다. 문 대통령의 ‘신 베를린 선언’에 대해 당시 북한 노동신문에서는 “전반 내용들에는 대결의 저의가 깔려 있으며, 북남관계 개선에 장애만을 덧쌓는 잠꼬대 같은 궤변들이 열거돼있다”고 깎아내리기도 했습니다.

[스토리텔링] 남과 북, 설레었던 65년 간의 '첫 순간들' 총정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6일 오후(현지시간) 구 베를린 시청 베어 홀에서 열린 쾨르버 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토리텔링] 남과 북, 설레었던 65년 간의 '첫 순간들' 총정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스토리텔링] 남과 북, 설레었던 65년 간의 '첫 순간들' 총정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만나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2018년 11년만의 ‘평화모드’…11년만의 남북정상회담

그러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분위기 대반전! 북한이 한반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11년 만에 남과 북이 다시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는 감동을 선사했죠.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때에는 26년 만에 한미연합군사훈련도 다시 연기됐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문재인 대통령은 이후 특사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친서를 전달했습니다. 지난 4월 초, 남한 예술단이 11년 만에 평양에서 뜨거운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제 한반도에 또다시 봄바람이 부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20일 이제는 핵을 정말 포기하고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고 처음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판문점 선언’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처음으로 두 정상 간 합의문에 명시하고, 후속 조치로 취재진 등을 북한으로 초청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오는 5월 말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미정상회담에도 나설 예정입니다. 기나긴 65년간의 남북 분단의 역사, 앞으로의 ‘첫 순간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요.

/강신우기자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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