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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남북동질화의 시발점, 연천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사람]

삼국시대부터 남북 문화교류의 통로

유적 함께 연구하면 차이 줄일수 있어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이호재기자.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돌’ 전문가이자 ‘연천’ 전문가이다. 지난 1979년 경기도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 발굴의 인연이 그를 전곡선사박물관의 초대 관장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입니다. 한반도에 정착한 주민의 첫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이기도 하고요. 사실 연천이라는 지역 자체가 한반도 전체로 봤을 때 북측 세력과 남측 세력이 만나는 통로였습니다. 우리 민족에 있어 여러 가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지역이에요. 지금은 남북 접경지역이라 개발도 늦어졌고 접근도 힘든 곳이 됐지만요.”

그는 연천이야말로 남북교류의 상징적인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삼국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 더 나아가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남북의 문화교류·세력교류의 통로가 바로 연천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구려 멸망 이후 신라와 당 사이의 한반도 주도권을 두고 벌어졌던 나당전쟁을 소개했다. 당의 20만 대군에 맞서 신라와 멸망한 고구려의 세력이 힘을 합쳐 지켜낸 곳이 연천의 매소성이라는 것이다.



“고구려 멸망 이후 한반도 전체를 당에 편입시키려고 하자 이에 반발해 신라와 고구려가 힘을 합쳐 대항한 곳이 바로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 바로 앞에 있다고 전해지는 매소성입니다. 사실 많은 피를 흘린 것도 그만큼 중요한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를 침공해 단양에 고구려비를 세울 때의 전쟁터도 연천이었고 진흥왕이 북쪽으로 진출해 금강산까지 이르렀을 때의 1차 방어선도 연천이었습니다. 한때 신라와 고구려의 전쟁터였지만 이후 힘을 합쳐 외적을 물리친 곳이기도 한 셈이지요. 남북도 연천에서 새로운 교류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는 연천에 남북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박물관을 짓기를 바랐다. 만월대에서 남북이 함께 고려 유적 발굴을 진행하는 것처럼 연천에서 더 오래된 역사인 구석기를 공동으로 발굴하고 연구하다 보면 문화적 이질성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제나 정치·군사는 몰라도 문화영역은 남북한이 함께 고민하고 같이 연구개발하는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분단 70년이 지나며 서로의 생활양식이나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를 해소하고 남북 동질화의 시작점으로 연천도 괜찮지 않을까요.”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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