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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구본무'를 추모하며] "건전한 상식 가진 경영자의 표상"... 배려·신의 가르침 준 '참 어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외교보좌관이 이동때 자료 봐야죠

독서등 고장난 비행기 좌석 바꿔줘”

73세의 일기로 지난 20일 타계한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평소 소탈했던 성품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재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사회 지도층, ‘참 어른’이 어떤 모습으로 모범을 보이며 귀감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 일부 대기업 오너 일가의 일탈 행위로 반(反)기업 정서가 확산돼 재계 전체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와중에 구 회장의 평소 마음 씀씀이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감동을 더하고 있다. 4대 기업 총수답지 않게 가족장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르는 모습까지 소탈했던 구 회장의 평소 모습 그대로다. “남들 귀찮게 하지 마라”는 게 고인의 유지다.

이낙연 국무총리

“싼 술은 위선…비싼술은 도리아냐

중간값 술만 드신 소탈하셨던 분”

21일 오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구 회장 빈소를 가장 먼저 찾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조문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기업인”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반 전 총장은 “갑자기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다”면서 2004년 구 회장과 처음 만난 인연을 소개했다.

반 전 총장은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외교보좌관 시절 비행기 옆자리에 구 회장이 앉았었다”면서 “마침 제 자리의 독서등이 고장 났는데 구 회장이 ‘난 자료를 안 봐도 되지만 보좌관님들은 자료를 보셔야 하니 자리를 바꿔야겠다’며 자리를 바꿔주셨다”고 전했다. 반 전 총장은 구 회장에 대해 “그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이 돼 전화를 드렸더니 공관에 전자제품이 필요하면 한국 제품으로 해드리겠다고 하셨다”면서 “인사 말씀인 줄 알았는데 10개월 후 정확하게 사무총장 공관을 전부 다 LG 제품으로 채워주셨다”고 말했다.



구 회장이 두고두고 서운함을 삭히지 못했던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당시 김대중(DJ) 정부 주도의 ‘반도체 빅딜’ 관련 후일담도 민주평화당 소속 박지원 의원의 입을 통해 소개됐다. LG가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반도체 사업을 내주며 사업을 접게 된 사건이다. LG 공채 출신인 박 의원은 페이스북에 “DJ 정부 시절 외환위기 구조조정 때 LG의 반도체 산업이 대상이었다”면서 “(빅딜 이후에도) 공·사석에서 구 회장을 뵈면 일체 내색을 안 하시고 제게 감사를 표하셨고 저는 죄송하게 생각했었다”고 썼다.

SNS에도 “갓본무” “존경” 애도

‘반기업 정서’ 만연한 시대 이례적

노블레스오블리주 삶에 추모 물결

구 회장이 DJ 정부 핵심 실세였던 박 의원에게 섭섭함을 느꼈을 만도 한데 이를 전혀 내색 않고 오히려 자신을 배려했다는 것이다. 철저히 상대방을 배려하는 구 회장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화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구 회장이 반도체 빅딜 만큼은 통음(痛飮)하며 분루를 삼킬 정도로 아쉬워했다고 한다.

재벌 총수로는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소탈한 구 회장의 면모도 회자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구 회장은 중간 값의 술을 즐겨 드셨다”면서 “너무 싼 술을 마시면 위선 같고 너무 비싼 술을 마시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라고 추억했다. 구 회장은 평소에도 종종 서울 마포에 있는 평양냉면집과 간장게장집을 홀로 찾은 것으로 알려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도 구 회장에 대한 글이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이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에도 불구하고 재계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던 것과 달리 구 회장을 진심으로 추모한다는 글이 대부분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를 생각하면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서울경제신문이 20일 유튜브에 게재한 2분35초 분량의 구 회장 추모 영상에는 “존경한다” “큰 별이 졌다” “갓본무(신을 의미하는 영어 God과 구본무 합성어)” 등의 댓글이 달렸다.

2000년대 초반 LG의 지주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참여했던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편법·불법은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했던, 말 그대로 정도(正道) 경영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빈소를 찾은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정도 경영에 앞장선 분이고 큰일을 하고 가셨다”고 추모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구 회장처럼 존경받는 기업 총수가 있었다는 점 자체가 국민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줬다”면서 “그 어느 때보다 기업과 구성원, 국민들과의 관계가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구 회장이 주는 긍정적 메시지는 LG의 향후 기업 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재영·신희철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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