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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 기업인의 ‘미투’ 고백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8년 6월호에 실린 포춘US 번역 기사입니다.

늦은 밤 식사와 퇴근 후 술자리-실제 대부분의 사업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다-는 여성에게 위험할 수 있는 자리다. 성 관계를 강요받지 않고 비즈니스 상대로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상당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음 두 여성 임원들은 미국의 대형 언론그룹 트롱크 Tronc의 전임 회장이자 투자자인 마이클 페로 Michael Ferro가 그런 신뢰를 져버렸다고 고발했다. By Kristen Bellstrom, Beth Kowitt

캐스린 민슈 Kathryn Minshew는 비로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2013년 9월 전후, 당시 투자회사 래포츠 Wrapports의 회장 마이클 페로가 마침내 자신이 운영하는 커리어 컨설팅 스타트업 더 뮤즈 The Muse에 75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한다는 조건에 서명한 것이었다. 그녀의 기업이 그 해 말까지 버티기 위해 꼭 필요한 자금이었다. 페로는 이후 그녀에게 음식을 테이크 아웃해서 자신의 회사 아파트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의 기업이 앞으로 더 많은 투자를 받으려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얘기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집에 들어서자, 페로는 그 목적은 잊은 듯했다. 그는 버번을 잔에 따라 민슈에게 건넸고, 그녀에게 강제로 키스하려 했다. 민슈는 몸을 빼지 못할 정도로 강한 압력이었지만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페로의 입술이 결국 자신의 볼에 닿았다고 말했다.

민슈는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고 몸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갑자기 이 아파트 안에 내가 그와 단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쉽게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로부터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6년, 헤이건 캐플러 Hagan Kappler도 라스베이거스 소비자 가전박람회(Consumer Electronics Show, CES)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고 말했다. 페로의 아리아 Aria 호텔 스위트룸에서 사업 논의를 한다는 명분으로 저녁식사를 했을 때의 일이었다. 당시 제조 대기업 잉거솔 랜드 Ingersoll Rand의 임원이었던 캐플러는 온도조절장치 시장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페로를 만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마침 페로가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IBM에 매각했을 무렵이었다. 그러나 캐플러는 그가 계속 뒤에서 자신을 안았다고 폭로했다. 그녀는 이런 신체 접촉이 불편하다고 말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가슴을 만졌다고 했다.

당시 임신 9주차였던 캐플러는 그 후 악몽에 시달렸고, 일에 집중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곧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그녀는 “갑자기 내 자신이 다르게 보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분명 나를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두 여성은 모두 사업 목적으로 페로와 밤 늦게 만나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민슈에게는 추가적인 투자와 인맥, 캐플러에겐 잠재적인 파트너십과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 제안이라는 유인 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두 여성 모두 페로와의 만남을 “놀랍고 두려웠다”고 묘사했다. 자신의 사업이 위태로워질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 포춘과 최초로 공식 인터뷰를 한 민슈와 캐플러는 각각 투자자와 계약 상대로 페로를 만났다. 그러나 그가 트롱크의 비상임 회장으로 취임하고 최대 주주가 되면서, 지난 몇 년 간 페로의 영향력과 권력이 점점 강해졌다. 트롱크는 시카고 트리뷴 Chicago Tribune, 뉴욕 데일리 뉴스 New York Daily News, 볼티모어 선 Baltimore Sun 등 지역 대표 신문을 보유한 미디어업계의 강자다.

포춘은 두 여성의 상세한 진술을 바탕으로 지난 3월 페로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에게 연락을 취하고 며칠 후 온라인 기사를 게재하려 할 때, 페로가 자신이 트롱크 이사회에서 물러날 것이며 후임 회장은 CEO 저스틴 디어본 Justin Dearborn이 맡게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신 페로는 회사 자문역을 맡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매년 500만 달러를 지급받게 됐다. 4월 중순, 페로는 자신이 보유한 트롱크 주식 910만 주를 주당 23달러를 받고 매코믹 미디어 McCormick Media에 매각했다. 총 금액은 2억 900만 달러였다.

페로는 대변인을 통해 포춘의 인터뷰 제의를 거절했다. 민슈와 캐플러, 그리고 이 이야기 속의 다른 여성들이 제기한 구체적인 주장에는 따로 대응하거나 반박하지 않았다.

페로의 대변인은 포춘에 다음과 같이 밝혀왔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주요 상장 기업을 비롯한 여러 기업들의 경영을 맡으면서, 마이클 페로가 제소를 당하거나 합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보도를 전제로 한 포춘의 공식 주장들은 개인 사생활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며, 문제의 여성들은 트롱크나 그가 경영했던 다른 기업에 소속된 직원들이 아니었다. 최근 발표된 것처럼, 페로는 비상임 회장으로서 트롱크의 재정상태를 개선시킨 후 경영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별도의 코멘트는 없을 것이다.”

민슈와 캐플러의 이야기는 상당히 많은 사업과 거래가 성사되는 장소-늦은 저녁 식사와 퇴근 후 술자리를 포함해 공식 근무 시간 외의 회색 지대-에서 펼쳐졌다. 적절한 대응이 좀 더 어렵고, 훨씬 복잡하며, 규칙은 느슨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수십 년 간 여성을 대체적으로 배제했던 곳이었다.

물론 이런 자리와 네트워킹에 여성들도 점점 더 많이 참여하는 추세지만, 이 곳에 나왔다고 해서 여성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랜 기간 남성들의 전유공간이었던 곳에 ’침투‘한 여성들은, 남성 동료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저 사람이 외설적인 발언을 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가 이 만남을 데이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까? 이 사람은 정말 나의 사업에 관심이 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나와 자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이 같은 위험 지대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 여성들은 실제 사업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들-인맥, 멘토, 자본-로부터 소외된다. 그러나 일단 이 영역에 뛰어들면, 원치 않는 관심과 희롱, 심지어 폭행의 가능성까지 열리게 된다. ’어떤 결정이든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당초 민슈와 캐플러가 했던 합리적인 계산이었다. 하지만 결국 두 여성 모두 이런 믿음을 잃었고,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됐다. 공통 분모는 바로 마이클 페로를 만난 것이었다.

여러 기업을 창업해 온 페로는 특히 클릭 커머스 Click Commerce(2006년 2억 9,200만 달러에 일리노이 툴 웍스 Illinois Tool Works로 매각됐다)와 머지 헬스케어 Merge Healthcare (2015년 10억 달러에 IBM에 매각됐다) 두 개의 디지털 스타트업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거기서 번 돈으로, 여러 사업체를 후원한 두 곳의 투자회사에 자금을 지원했다. 그 중 하나가 2011년 시카고 선 타임스의 인수였다. 미디어 제국을 건설하려는 페로의 야망이 시작된 계기였다. 그는 2016년 트리뷴 컴퍼니의 지분을 매입해 트롱크로 사명을 바꿨고, 매출 15억 2,000만 달러를 올리는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페로(51)에 대한 고발은 트롱크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있던 때, 미투 운동이 기업 문화를 바꾸고 있던 시점에 나왔다. 지난 2월, 트롱크는 LA 타임스와 다른 캘리포니아 신문들을 헬스케어 업계 거물 패트릭 순시옹 Patrick Soon-Shiong에 5억 달러를 받고 매각하기로 했다. 9,000만 달러의 연금 부채까지 함께 넘겼다. 이 거래는 당시 보도국이 트롱크가 새 경영진을 통해 기자들의 노조 결성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반발했던 시기에 성사됐다. 앞서 1월에는, LA 타임스 CEO이자 발행인인 로스 레빈손 Ross Levinsohn이 자발적으로 무급 휴가를 냈다. NPR이 ‘그가 성희롱으로 두 차례 고소당했으며, 전 직장에서도 ’남성 중심 리그‘를 만들었다’고 보도한 직후였다(레빈손은 NPR CEO와의 통화에서 이 혐의를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NPR은 해당 사건을 조사한 결과, 레빈손은 무혐의였다고 밝혔다. 그후 레빈손은 트롱크로부터 새 자리를 제안 받았다). 하지만 불과 몇 주 후-트롱크가 2017년 신문사를 인수하기 전 임기를 시작한-뉴욕 데일리 뉴스의 수석 에디터 두 명이 여러 차례의 성희롱 혐의로 해고됐다.

페로의 부적절한 행동은 그의 언론사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겐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포춘은 잡지 스플래시 Splash와 그리드 Grid에서 일했던 9명의 전 직원들과 인터뷰를 했다. 페로가 2016년까지 소유했던 선 타임스에 고용됐던 이들은 그가 두 곳의 잡지사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말했다. 페로와의 조우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그곳이 여성들이 일하기 불편한 직장이었음을 시사했다.

이들은 페로가 정기적으로 여성의 옷과 외모에 대해 성적인 발언을 했다고 고발했다. 그는 여성 직원들의 성적 매력을 언급하거나, 짧은 치마를 입었을 때 더 좋다 같은 발언을 했다. 또한 그는 스스로 ‘섹시한’ 하이힐이라 묘사했던 구두를 자세히 보려고, 한 여성 직원의 다리 아랫부분을 잡았던 적도 있었다. 그는 젊은 여성들을 비서로 고용했는데, 일부 직원들은 이들을 ‘페로의 천사들’이라고 불렀다.

그리드의 전 편집장 맷 프레젠트 Matt Present는 페로가 자신에게 “잡지 뒷면의 풍자 칼럼을 여성 작가들에게 맡기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프레젠트는 “페로는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단지 남자가 바라보는 대상이라는 가정 하에 회사를 경영했다”고 폭로했다.

2016년 트롱크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페로는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하지만 이미 그는 고향인 시카고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중추이자, 언론계의 거물, 자선 행사의 단골 고객이었다. 그는 여러 의미에서 ‘선수’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의 스타트업 클릭 Click은 파몰리브 Palmolive 빌딩에서 과거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 Playboy Enterprises가 사용했던 층을 썼고, 페로 자신은 플레이보이 창간자 휴 헤프너 Hugh Hefner의 집무실을 사용했다. 거의 대부분 남성들이 참석하는 페로의 생일 파티는 매년 시카고 가십 페이지를 장식한다. 파티에는 애벗 래버러토리즈 Abbott Laboratories의 CEO 마일스 화이트 Miles White, 전 리글리 Wrigley CEO 빌 ‘보’ 리글리 Bill “Beau” Wrigley, 시장 램 이매뉴얼 Rahm Emanuel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참석한다. 크레인스 시카고 비즈니스 Crain‘s Chicago Business는 ’페로가 선 타임스 칼럼니스트로 만들어준 시카고 출신 여배우 제니 매카시 Jenny McCarthy가 그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민슈는 페로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언론에 자신의 이야기를 두 차례 고백한 바 있다. 이번에 그녀는 페로의 이름을 최초로 공식 언급했다. 포춘은 민슈가 페로와의 사건 직후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4명의 절친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녀가 해당 사건을 투자자들에게 언급한 이메일들도 검토했다. 아울러 캐플러가 페로에게 당한 일을 얘기했던 12 명의 지인들도 인터뷰했다. 그 중에는 당시 그녀의 상사도 포함돼 있었다.

민슈와 캐플러는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자신들의 경험을 밝히게 된 이유는 비슷했다. 민슈는 “그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큰 이유였다. 새로운 피해자가 비슷한 일을 겪을 때마다, ’내가 막을 수도 있었던 일‘이라는 자책이 들 것 같았다”고 말했다.

캐플러는 자신이 겪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여성들을 돕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인들도 내가 이런 일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뮤즈는 현재 연간 5,000만명의 사용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3,000만 달러 자금을 유치한 안정적인 기업이다. 그러나 2012년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을 조달할 때도 자주 실패했던 초기 스타트업 중 하나였다. 당시 26세였던 민슈가 진정 원했던 건 어엿한 사업가로서의 대우와 투자를 받는 것이었다.

그 해 7월 한 콘퍼런스에서 처음 만난 마이클 페로는 그녀에게 희망을 채워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몇 주 후, 페로는 더 뮤즈의 120만 달러 규모 시드 라운드 seed round* *역주: 앤젤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받는 초기 자금조달 단계에 참가하겠다고 약속했다. 투자자들 중에는 그레이트 오크스 벤처 캐피털 Great Oaks Venture Capital, 고든 크로퍼드 Gordon Crawford, 전 허스트 매거진 Hearst Magazines 사장 캐시 블랙 Cathie Black도 있었다. 페로는 10만 달러를 투자하며 더 뮤즈의 최대 투자자 중 한 명이 됐다. 뉴욕 시에 기반을 둔 민슈는 시카고에 올 때마다 그와 만나려고 노력했고, 페로의 제안으로 그의 여러 매체에 등장하기도 했다.

2013년 5월 시카고에서 민슈는 페로를 만나 점심식사를 하며 현재의 고민을 털어 놓았다. 시리즈 A 라운드/*역주: 벤처 캐피털로부터 최초로 공식적인 투자를 받는 단계/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싶지만 인수되는 건 원치 않았던 그녀는 자신이 받은 투자 제안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녀는 페로가 해답을 줬다고 말했다. 시카고 선 타임스의 모회사 래포츠가 추가적으로 시드 머니에 투자하면, 이후 더 큰 규모의 공식 투자 라운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이었다. 당시 그녀는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며 “그 때만 해도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사업가로서 믿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페로가 설립한 투자회사 중 하나인 래포츠를 통해 추진됐던 이 거래는 지지부진했다. 민슈는 여름이 지나자 점점 더 초조해졌다. 연말엔 회사 운영자금이 바닥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래포츠가 거래조건 제안서에 서명했고, 2013년 9월 18일 민슈는 세부사항을 마무리하기 위해 시카고로 날아갔다. 미팅 후 민슈는 동업자 알렉산드라 카불라코스 Alexandra Cavoulacos에게 전화를 걸어 “거래가 성사될 것 같다”는 소식을 당당하게 전했다.

민슈는 계약이 마무리되자 페로가 저녁에 만나자고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페로는 그녀에게 인근 레스토랑에서 친구들-페로는 돈이 많고 권력이 세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과의 술 자리에 합석한 후, 자신의 사옥에 가서 저녁을 주문하자고 했다(민슈는 그 장소가 “마치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곳처럼 산만하고 어수선했다”고 묘사했다). 페로는 민슈에게 아파트가 그 날 밤 비니까 자고 가라고 말했다. 뮤즈가 이제 막 시작한 신생기업이니까 가능한 한 돈을 절약하라고 조언했다.

그 아파트 건물에 들어가면서 민슈는 처음으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당시 27세였고 이 사람과 같이 있었다.” 그러나 민슈는 과거 그의 부인도 만났고, 페로 역시 자신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냈다. 그가 사업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믿고 75만 달러를 투자한 사실도 떠올렸다. 그녀는 “이상한 건 아니야. 단지 이상한 것처럼 보일 뿐이야. 괜찮아”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나 아파트에 들어서자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민슈는 전면 유리를 통해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페로가 두 잔의 버번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강제로 키스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민슈는 “온 몸이 얼어붙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먼저 두려움을 느꼈다. 일부는 내 신체적 안전에 대한 것이었지만, 대부분은 이 상황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우리 사업에 너무나도 중요한 이번 거래를 망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민슈는 몸을 빼며 “나는 한 번에 한 사람하고만 만난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그러자 페로는 한 발 물러서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페로가 자신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당신을 식당에 데려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과 자고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민슈에게 손을 대진 않았다.

민슈는 자신이 거절을 하자, 페로가 흥미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민슈에게 그녀가 이전 술자리에서 만난 한 남성이 시카고에서 유명한 투자자인데, 아래층에서 그녀와 저녁을 먹으면서 더 뮤즈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그녀는 기회다 싶어 아파트를 서둘러 나왔다.

민슈는 저녁식사 후 비어 있는 아파트로 돌아와 다시 한 번 동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 전과는 매우 다른 소식을 전했다. “이 거래가 잘 진행된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어.” 아파트에 도청장치나 감시 카메라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그녀는 카불라코스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고, 다음날 오후 뉴욕에 도착하면 자세한 내용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그날 밤 옷을 다 입은 채로 잤다고 말했다.

포춘은 민슈의 발언을 확인해 준 카불라코스를 인터뷰했다. 그녀가 시카고 출장 이후, 페로와의 만남에 대해 얘기한 다른 세 명과도 인터뷰를 했다. 아울러 그녀가 ’최소한 13명의 초기투자자들에게 극도로 부적절한 언행‘을 저지른 주요 투자자 관련 사건을 고발한 이메일도 검토했다. 민슈는 한 메일에서 페로의 이름을 밝혔다.

뉴욕으로 다시 돌아와 그녀는 ’완전히 집중력을 잃은 채‘ 며칠을 방황하며 보냈다. 그러나 사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사건을 처리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민슈와 카불라코스는 회사가 직면한 긴박하고 실존적인 질문들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페로의 투자 자금은 여전히 유효한지, 만약 그렇다면 그 돈을 받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둘은 몇 시간 동안 가능한 전략적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그 중에는 민슈가 아파트를 나와 동업자와 같이 사는 방안도 들어 있었다. 민슈는 “우리가 내보내야 할 직원 목록들도 순서대로 작성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래포츠와의 거래는 ’천천히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다른 곳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지를 모색했다. 거래조건 제안서에 엄연히 서명했음에도, 래포츠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도, 그 거래를 진행하려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민슈와 카불라코스는 대체 투자자를 찾을 수 있었고, 두 달도 안 돼 75만 달러를 유치했다. 민슈가 시카고까지 날아가 성사시키려 했던 거래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2015년 4월, 더 뮤즈는 다음 단계의 자금 조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창업자들은 래포츠를 포함해 대규모 시드 투자를 한 당사자들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했다(지금도 여전히 래포츠는 회사 투자자로 남아 있다). 민슈와 한 방에 있던 카불라코스가 페로에게 대신 전화를 걸었다. 그는 예전 거래를 계속 언급했다. 민슈는 “도리어 그가 ’더 투자하려고 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라고 반문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헤이건 캐플러도 이런 일 때문에 포춘과 첫 인터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윌리엄스 Williams 대학과 버지니아 다든 Virginia Darden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녀는 헤드헌터들이 탐낼 만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캐플러는 매킨지와 스타벅스, 골드만 삭스,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 등 내로라하는 유수 기업들을 거쳤다. 그녀는 37세에 이미 142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제조 다국적기업 잉거솔 랜드 임원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삶이 마이클 페로를 만난 2016년 1월 5일 밤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다.

캐플러는 2015년 9월부터 2016년 1월 사이 페로와 있었던 일들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녀는 매번 페로와의 만남 직후 그와 있었던 일들을 자신의 남편, 남동생, 아버지와 상사에게 말했다(포춘은 이들을 모두 인터뷰했다). 그녀는 그 외에도 최소한 5명의 가까운 친구들, 변호사, 자신의 산부인과 의사 및 치료 전문가에게 라스베이거스 호텔 스위트 룸에서 벌어진 일들을 자세하게 얘기했다(물론 그 상세함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들도 포춘에게 그런 사실을 말해주었다.

캐플러는 2015년 9월 페로를 처음 만났다. 잉거솔 랜드에서 그녀는 디지털 전략 구축을 담당하고 있었고, 당시 페로와 교류하던 남동생이 둘의 만남을 제안했다. 그 때는 페로가 10억 달러에 헬스케어 스타트업 머지 Merge를 IBM에 막 매각했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페로는 캐플러가 회사를 위해 구축하고자 하는 분야에 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미팅을 요청했고, 페로를 만나기 위해 시카고로 날아갔다.

둘은 시카고 선 타임스 건물에서 2시간 가량 첫 미팅을 가졌다. 캐플러는 당시 페로가 스트리퍼와 매춘부 얘기부터 기술업계 여성들은 앞서기 위해 자신의 외모와 성적 매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여러 가지를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녀에게 칭찬과 비판을 섞어 “당신은 매력적이지만 화장을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에게 이력서를 보낼 때 반드시 사진을 첨부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페로는 미팅 과정에서 캐플러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제안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가장 그럴듯한 발언은 잉거솔 랜드와 IBM 간의 파트너십을 중재해 줄 수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캐플러는 페로가 자신을 직접 고용할 가능성도 내비쳤다고 했다. 실제로 미팅 막바지에 그는 그녀에게 “이번 논의는 당신이 내 개인 비서실장이나, 내가 운영하는 사모펀드 업체 메릭 벤처스의 CEO직을 맡기에 적합한지를 인터뷰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둘 모두 높은 연봉을 받는 자리였다. 그는 그녀의 외모와 경력이 마음에 든다며, 과묵한 성격도 자신의 사업에 더 큰 신뢰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캐플러는 당시 상사였던 디온 페르손 Dion Persson에게 전날 일을 보고하고, 칭찬을 받은 건지 아니면 모욕을 받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페르손은 그녀에게 “페로는 당신이 함께 일하고 싶은 타입의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캐플러도 그 점을 알았지만, 그가 너무 많은 것을 제시했기 때문에 그 제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페로와의 만남은 캐플러에게 큰 흔적을 남겼다. 그녀는 그 자리를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미팅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매우 안전하고 좋은 기업에서 근무했다. 안심할 수 있는 멋진 환경이었다”며 “그러다 갑자기 ‘여성이 응당 취해야 할 모습과 역할을 몰랐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바보처럼 들리겠지만, 나름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결국 캐플러는 페로에게 자신의 증명 사진을 붙인 이력서를 보냈다.

둘은 첫 미팅 이후 몇 차례 이메일과 전화를 주고 받았다. 잉거솔 랜드의 리더십 컨퍼런스 주최자였던 캐플러는 그에게 혁신 경연의 심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2015년 12월 21일 캐플러는 시카고에서 페로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페르손도 동행했다. 페로가 과연 콘퍼런스에 적합한 인물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페로는 미팅을 시작하면서, 아내가 자신에게 크리스마스 주에 왜 출근하는지를 물었다고 말했다. 캐플러와 페르손은 그가 당시 아내에게 “캐플러와 바람을 피려고”라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페르손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페로가 내뱉은 말들이 상당히 거북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조짐이 보였지만 그걸 제지하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기억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시 페로는 몇 가지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했다. 잉거솔 랜드의 온도조절장치 사업과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을 제휴하는 별도 사업체를 만드는 방안도 그 중 하나였다. 페르손은 그 사업체를 캐플러가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페로는 그러려면 그녀가 좀 더 얼굴을 꾸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로는 이튿날 캐플러와 통화하면서, 상사 앞에서 그녀를 심하게 희롱하지 않아 좋지 않았냐고 농담을 했다. 이후 그들은 CES에서 만나기로 계획했다. 캐플러는 온도조절장치 시장에 대한 자료를 취합해 그와 함께 구체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논의하려 했다. 캐플러는 “그는 내게 ‘라스베이거스에 어울리게 옷을 입어라’고 말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라스베이거스 도착 예정일인 2016년 1월 5일 오후 6시 30분경, 페로는 캐플러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었다. 그녀는 비행기가 연착돼 다음에 만나자고 했다. 페로는 곧바로 반발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굳이 이날 라스베이거스까지 왔다며, 일정을 연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캐플러는 이륙 10분전까지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페로는 캐플러에게 ’도착하면 마셔야 할 술잔이 많다‘는 식의 답장을 보냈다. 착륙 후에도 둘은 몇 차례 문자를 주고 받았다. 캐플러는 만나기에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페로는 자신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호텔의 VIP 룸에 있으며, 스위트 룸에서 늦은 저녁을 먹을 수 있다고 답했다.

캐플러에 따르면, 페로는 그 이후에도 6번이나 전화를 했고 그녀가 지금 어디인지, 언제 도착하는지를 물었다. 그녀가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말했지만, 페로는 그날 밤 바로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 곳으로 가는 도중, 그녀는 이 만남이 그리 좋은 선택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밤 10시 30분쯤 아리아 호텔에 도착했고, 페로는 그녀를 만나 곧바로 스위트룸으로 갔다. 페로는 룸의 조명을 은은하게 하고, 자신이 그녀를 너무 오래 기다렸으니 술을 한 잔 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캐플러는 자신이 임신 9주차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미니 바에서 꺼내 따라준 레드 와인에 살짝 입만 대는 시늉을 했다.

캐플러는 온도조절장치 시장에 대해 세부 사항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페로는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실제로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의 복장에 대해 언급했고, 단 한번이라도 나쁜 짓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런 적이 없다”며 다시 사업 쪽으로 화제를 전환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바 앞에 앉아 있던 캐플러의 뒤쪽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캐플러가 몸을 빼려고 움직이자, 페로가 어깨를 만지기 시작했다. 캐플러에 따르면 페로가 자신을 다시 한 번 안으려 했지만, 이번에는 몸을 완전히 빼서 손만 잡혔다.

캐플러는 다시 대화 주제를 바꾸려고 했지만, 페로는 언제쯤 사업 얘기를 끝내고 재미를 좀 볼 것인지 물었다. 그녀는 여기 일을 하러 왔고, 가족이랑 떨어져 있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페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옆 쪽에서 캐플러를 안으려 하면서, 왜 쑥스러워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마침 그 때 룸 서비스가 도착했다. 달리 무엇을 할지 몰랐던 터라, 캐플러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컵에 물을 한 잔 따랐는데, 갑자기 페로가 다시 자신의 뒤로 왔다. 캐플러는 그가 다시 자신의 몸 위로 팔을 둘렀다가 가슴을 만졌다고 말했다. 캐플러는 테이블을 차리는 호텔 직원을 가리키며, “이젠 여기 보는 사람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페로는 “라스베이거스에선 어느 누구도 뭔가를 보지 않는다”며 무시했다.

그녀는 또 물러섰다. 캐플러는 그 때 페로가 자신이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를 무시한 채 휴대폰으로 포커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캐플러에 따르면, 페로는 그녀에게 “VIP 룸에 있는 친구들이 내게 다시 내려올 것인지 묻길래 ‘여자와 잘 수 있는데 왜 굳이 포커게임을 하겠냐’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둘은 저녁 식사를 위해 테이블 앞에 앉았다. 페로는 자신이 그녀를 돕고 있으며,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녀를 위해 좋은 저녁 식사와 최고급 와인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캐플러는 최대한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고, 사업을 배우는 후배 역할을 하려고 했다. 캐플러에 따르면, 페로는 “사람들과 잘 필요까진 없지만, 앞서나가기 위해선 남자의 장단을 맞춰주고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캐플러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이 사람과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자정 무렵 페로는 자신이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주중에 언제 취하면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 방을 나왔을 때, 그녀는 방금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음날 아침 샤워를 할 때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페르손에게 문자를 보내, 페로를 리더십 컨퍼런스에 초대할 수 없다고 했다. 페르손은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눈치를 챘다”고 말했다. 캐플러는 CES 행사장에서 페로를 마주칠까 두려워하며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돌아다녔다.

사무실에 복귀한 날, 캐플러는 그 날 있었던 일을 페르손에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말을 꺼내기조차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 그들은 앞으로의 대응방안에 대해 전략을 짰다(잉거솔 랜드 대변인은 포춘에 “그 어떤 부적절한 성적인 행동도 회사 방침과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페르손은 페로에게 편지를 보내, 그를 콘퍼런스에 초대하지 않을 것이며 그와의 관계도 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페로가 캐플러에게 문자와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그녀의 상사로부터 이상한 편지를 받았다며, 별 일이 없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페르손이 한 번 더 개입했다. ’앞으로 캐플러에게 절대 연락하지 말라‘는 편지를 페로에게 보낸 것이다. 그는 그 후 연락을 끊었다.

4년이 넘었지만, 민슈는 여전히 그 시카고 아파트를 떠나면서 느꼈던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아직도 완전히 그 감정들을 정리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 때 사건으로 그녀는 자기 자신과 스스로의 판단력에 대한 확신을 잃었다. 한동안 특정 부류의 남성들과 신뢰할만한 사업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로 중요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거래가 체결되는 작은 규모의 사적인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게 됐다. 캐플러의 상황도 비슷하다. 그녀는 컨퍼런스에 참석할 때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하고 있다.

민슈는 다른 여성들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음을 깨닫게 됐다. 그러나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페로의 이름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4년 전만 해도 내가 누군가의 실명을 폭로하는 사람이라 알려지면 벤처캐피털 투자가 완전히 끊길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믿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슈는 “벤처 커뮤니티가 이 변화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몇몇 투자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 낼 만큼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캐플러는 페로와의 만남 이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돌아온 주말 내내 악몽에 시달렸고, 밤에 갑자기 잠에서 깨 옆에 있던 남편이 무서워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주말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냈고, 두 명의 어린 자녀들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그녀는 임신한 몸에 수치심을 느껴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성적인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 일은 나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민슈와 마찬가지로 캐플러도 수치심을 느꼈다. “어떤 영화에서 한 여성이 나와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 사무실에서 당장 나와 다시는 그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충고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엔 그게 내 잘못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녀에겐 시간과 심리치료가 도움이 됐다. 직장에선 승진을 했고, 최근에는 새 회사에서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는 자리도 맡게 됐다. 그녀는 넷째를 임신한 상태다. “당시 상황에선 나 스스로가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지금은 훨씬 강해졌다.”

캐플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돌아온 일주일 후 변호사를 만나 자신의 대응책을 논의했다. 그녀는 그때부터 페로와의 만남을 상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밝혔을 때, 자신의 커리어와 가족에게 미칠 여파가 두렵기는 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침묵 때문에, 다른 여성들이 계속 그 위험에 노출되는 것 또한 두렵다. 그녀는 “단지 이 사건으로만 자신의 커리어가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슈는 페로가 그런 행동을 한 건 단순히 그가 ’그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나는 실제로 그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여성혐오와 성희롱은 섹스 문제라기 보단, 피해 여성에게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는지를 떠올리게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놀라울 정도의 무신경함을 느꼈다. 민슈는 “마치 그가 나와 그 상황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페로는 단지 내가 그와 잘 것인지 만을 궁금해했다. 하지만 거기엔 나의 커리어, 나의 회사, 직원 14명의 운명이 걸려있었다. 그러나 그에겐 단순히 시도해 볼만한 행동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번역 강하나 sames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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