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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칼럼] 일본은 정녕 한반도 평화를 원치 않는가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한반도 위기 반사익 누려온 日
노골적 간섭 움직임 보이는 中
구한말 풍전등화 상황과 비슷
韓,중심 잘잡고 좌표 설정해야

[권홍우칼럼] 일본은 정녕 한반도 평화를 원치 않는가

존경스럽지만 얄밉고, 친구가 될까 싶으면 원수인 존재…. 일본 얘기다. ‘두 얼굴의 얍삽한 일본’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를 보자니 밉상 그 자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을 당시 환영 의사를 나타낸 유일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싱가포르에서 오는 6월12일 열릴 북미 정상회담 직전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한다는 점도 영 꺼린다. 북미 정상회담 무산 선언 당시를 복기해보자. 트럼프는 군사적 행동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 최강의 군은 준비돼 있고 한국과 일본은 어떤 재정적인 부담도 기꺼이 질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에 아베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 ‘북한을 믿지 마라. 전쟁한다면 우리가 비용을 대겠다.’

각종 스캔들로 떨어져 가는 지지율을 북핵 위기로 간신히 지켜온 아베의 입장에서 ‘한반도 평화=재앙’일 수 있다고 치자. 한반도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각은 대동소이하다. 니혼게이자이는 ‘북미 정상회담이 실현되더라도 연기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설을 최근 실었다. 최대 20여개로 추정되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미국에 반출해야 한다던 일본 언론도 있다. 지난 2017년 내내 전쟁 발발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위기설’의 진원지는 대부분 일본이다. 언론은 강경책을 부추기고 일본 정치인들은 미국 내 극우파 인사들을 찾아다니느라 바빴다.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서 오랫동안 가졌던 의문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일본은 과연 무엇인가?’

근대 이후 한국과 일본처럼 운명이 극명하게 엇갈린 나라도 흔치 않다. 식민지배의 수탈로 신음했던 한반도가 동족상잔의 피를 흘릴 때 침략과 분단의 책임이 있는 섬나라는 그 피를 자양분 삼아 경제를 키웠다. 한반도의 분단 자체도 원래는 일본의 몫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로 연합국의 분할통치를 받아야 했던 일본 대신 분단을 강요당한 게 한반도다. 남북한이 긴장과 대립으로 지새운 73년 세월을 넘어 평화를 모색하려는 이때에 일본이 훼방꾼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악연 중의 악연이 아닐 수 없다.

고약한 이웃은 일본뿐 아니다. 중국도 미덥지 못하다. 미국이 북한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두 번째 만남을 가진 후부터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단순한 주변국의 위치가 아니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간교한 일본과 음흉한 중국,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19세기 말 풍전등화의 조선의 처지와 닮았다. 기회와 위기가 뒤섞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때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가.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진영 논리로부터의 탈피와 좌표 확인. 조선이 허망하게 무너진 바탕에는 허구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었다. 명나라의 17대왕 숭정제가 자살(1644년)했다는 소식에 조선 선비들은 ‘백이숙제처럼 살겠다’며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내란에 쫓긴 중국 왕이 자살했는데 ‘대명천지(大明天地)가 사라졌다’며 조선의 ‘지조 있는 선비’들이 산에 들어가 ‘숭정처사’를 자처할 무렵 일본 유림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일본 주자학의 시조로 평가되는 ‘야마자키 안사이’가 제자들에게 던진 물음이 논쟁을 낳았다. ‘만약에 공자가 대장, 맹자가 부장으로 이뤄진 중국 군대가 일본을 쳐들어온다면 우리는 공맹의 도리를 따르는 자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제자들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요즘 같으면 ‘하나님이 총사령관, 예수님이 참모장인 하늘의 군대가 우리나라를 침략해 온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와 같은 중압감의 질문에 논란이 이어질 때 야마자키는 간단명료한 답을 내렸다. ‘마땅히 칼을 갈고 갑주를 입어 전쟁에 나가 공자와 맹자를 사로잡아 덴노에게 바치는 것이 공맹의 바른 뜻이다.’ 같은 시대, 같은 유학을 공부했어도 조선과 일본이 자기 정체성, 자기 좌표에 대한 인식은 이토록 달랐다. 그 차이가 근대 이후 양국의 운명을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0년에도 조선의 뜻있는 선비들은 융희 4년이라는 독자 연호 대신 숭정 301년이라는 연호를 고집했다.

평화냐, 준전시로의 복귀냐는 민족사의 갈림길에서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맹종과 굴신의 사대주의는 지나간 시대의 우화(愚話)에 그치고 말까. 가장 존귀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행위가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가 되기를 바란다.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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