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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 화 잘내면 무조건 분노조절장애자?

작은 스트레스에도 파괴적 행동 땐

의학적으로 '간헐적 폭발장애' 진단

유전·뇌 속 신경물질 부족이 원인도

화난 것 이야기하고 문제 해결하는

건강한 방식 분노 표현과 구별해야





게임을 조용히 하라는 말에 화가 나 룸메이트에게 흉기를 휘두른 대학생, 잔소리에 분노해 깨진 술병으로 형을 찌른 동생, 부부싸움으로 화가 난 끝에 생후 10개월 된 아들을 벽에 집어던진 아빠, 병원의 불친절에 분노한 나머지 응급실 간호사를 걷어찬 환자…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놀랄 법한 사건들이 한국 사회에서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고 있다. 그저 ‘화가 났다’는 이유로 사람을 때리고 위협하고, 결국 죽이기까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 왜 이토록 무섭게 화를 내고 있는 걸까. 가히 ‘분노사회’라 불러도 손색없는 요즘의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개개인의 문제와 사회의 변화, 두 방향 모두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우선 개인의 문제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들 분노조절장애라고 말하지만 그런 질환은 없고 정식 진단명이 있는 정신과적 질환 가운데는 ‘간헐적 폭발장애’가 가장 유사하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공격성이 반복적(한 달에 여러 차례)으로 폭발해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때 진단된다. 간헐적 폭발장애는 특정 행동을 조절할 수 없고 멈출 수 없는 충동조절장애 중 하나로 해석하는데 같은 범주에 있는 질환으로는 병적 도박이나 도벽·자해 등이 있다. 예컨대 누군가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물건을 훔치는 도벽 행위를 반복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분노를 폭발시키는 행동을 통해 긴장을 푼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 같은 충동조절장애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지난 2009년 3,720명에서 지난해 5,986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간헐적 폭발장애의 의학적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많이 없다. 유전적 요인이나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부족할 때 나타난다는 보고가 있다. 또 정서를 조절하는 뇌의 특정 부분(전두엽이나 편도체 등) 손상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간헐적 폭발장애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병적 분노’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 화를 내는 ‘건강한 분노’와는 엄연히 다르다. 전문가들은 누군가가 외부 스트레스나 자극이 사소한 데 비해 지나치게 격렬한 분노 행동을 보일 때, 분노 행동 시 뒤따르는 결과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데도 불구하고 파괴적 행동을 멈출 수 없는 경우 충동조절장애를 의심한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간헐적 폭발장애를 앓는 사람들은 변변한 직업을 가지지 못하거나 깊은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범죄를 저질러 비싼 값을 치르기도 한다. 결국 이런 부정적 결과가 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해 다시 분노 행위를 부르는 악순환에 빠져 버린다.

현대인들의 분노가 단순히 개개인의 취약성 문제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하지현 건국대병원 교수는 저서 ‘대한민국 마음보고서’에서 분노로 인한 무차별 폭력 등은 도를 넘은 자기 중심주의가 빚어낸 결과라고 지적한다. 요즘 청년들은 무언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내가 뭘 잘못했나 보다’라고 하기보다는 ‘여긴 도대체 왜 이래’라며 분통을 터뜨리며 감정적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자기 중심주의는 사소한 스트레스도 견디지 못하고 ‘욱’하는 충동 행동으로 이어진다. 하 교수는 기다리지 않고도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소비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참을성을 길러주지 못했다는 점과 공동체의 붕괴로 인해 나쁜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어 줄 수 있는 동네 형, 할아버지 등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분노사회’를 부르는 원인으로 꼽았다.

분노사회를 바꾸는 시작은 역시 ‘나’부터다.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신이 화난 것을 이야기하고 바라는 것을 제대로 주장해 문제를 해결하는, 건강한 방식의 분노 표현 습관을 길러야 한다”며 “우울증 등이 동반돼 감정 조절이 많이 어렵다면 약물을 복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어린 시절부터의 인성교육도 중요하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어린 시절의 인성교육은 분노 조절이나 감정 조절의 밑거름이 된다”며 “아이들이 자기 충동을 조절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훈련과 교육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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