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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앞으로 다가 온 근로시간 단축]우천 촬영중단으로 족구한 시간도 근로?...지침 늦어져 대혼란

비상걸린 문화·예술계

근로시간 산정·기술 스태프 근로자 인정 등 쟁점 수두룩

특례업종 재포함 사실상 불가능...한류산업 위축 우려도

문체부 "7월중 1차 가이드라인"...제도 시행전엔 어려워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DMC첨단산업센터에서 개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관련 현안설명회에서 업계 관계자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예상되는 업계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서은영기자




영화 촬영 스태프인 A씨는 영화제작 현장에서 갑자기 비가 내려 촬영이 중단되면 동료들과 족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20~30분 만에 비가 그쳐 작업이 재개될 때도 있지만 하염없이 내리는 비로 그날 하루 촬영을 아예 접은 적도 허다하다.

작업이 중단된 직후부터 촬영 재개 또는 퇴근 전까지 족구를 하면서 보낸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일까 아닐까.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고용노동부는 근로자가 휴식 중이라도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인 상황이라면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는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개별 업종의 세부적인 상황을 파고 들어가면 아직 명쾌하게 규정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결론부터 말하면 A씨의 사례에서 나타난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할지 여부는 고용부와 함께 좀 더 따져봐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당장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문화·예술계의 혼란이 여타 업종 못지않게 크다. 연장·야근 근로가 많고 업무 주기와 업무 특성이 일정하지 않은 문화·예술계에 근로시간 단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작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문화 산업 종사자들의 궁금증과 불안을 해소해줄 가이드라인 마련은 차일피일 미뤄지고만 있다. 이렇듯 혼란이 가중되면서 문화·예술계에 대한 근로시간 단축의 무분별한 적용이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한류 산업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까지 생겨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18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업계 의견을 열심히 수렴하고 있지만 문화·예술계 안에서도 분야별로 특성이 다르고 가정해볼 수 있는 세부 상황도 워낙 다양해 당장 제도가 시행되는 오는 7월 이전에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늦어도 7월 중에는 기본적인 사안들을 담은 1차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내용을 보완하고 다듬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로 영화·드라마·방송 등에 해당하는 ‘영상·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과 ‘방송업’이 특례업종에서 삭제되면서 이들 산업의 사업장은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7월부터 1주일에 68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다. ‘1주일 52시간’ 제한은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기업 규모별로 2019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에 들어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게임 산업의 경우 애초에 특례업종이 아니었기 때문에 300인 이상 사업장은 7월부터 ‘1주일 52시간’을 지켜야 한다”며 “현재 300인 이상의 상시 근로자를 둔 게임 업체는 14개 정도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고용부는 지난 11일 법원 판례들을 기초로 한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을 공개했지만 문화·예술계를 위한 별도의 지침 마련이 늦어지면서 업계 종사자들은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물음표만 잔뜩 안은 채로 새로운 제도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휴식과 근로시간을 구분하는 기준 외에도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업계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사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인 쟁점 중 하나가 영화·방송 제작 현장 기술 스태프들의 지위 설정과 관련한 문제다. 현재로서는 기술 스태프들을 근로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프리랜서로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고 판례도 제각각인 상황이다. 만약 스태프들을 근로자로 인정한다면 이들은 모두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될 뿐 아니라 영화·방송 제작사 역시 근로자 숫자가 확 늘면서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시점이 빨라질 수 있다. 한 영화사 제작총괄팀장은 “당장 8월 크랭크인을 앞두고 고용부와 지방노동청부터 변호사와 노무사 등 전문가까지 각계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묻고 있지만 그 어디서도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며 “관행대로 스태프를 꾸렸다가는 제작자부터 감독까지 범법자가 될 상황인데도 판례가 나올 때까지는 확답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듣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협회 회장은 “용역계약부터 지분계약까지 다양한 계약관계가 병존하는 영화 프로덕션의 특성을 무시하고 모든 스태프를 상시 근로자로 인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문화·예술 산업과 콘텐츠 업종을 다시 특례업종에 포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는 유연근무제 확대 적용을 정부에 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유연근무제와 관련한 업계의 요구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가 탄력근무제 확대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2주 또는 3개월 단위로 운영이 가능하다. 2주 단위로 운영한다고 가정하면 업무량이 많은 첫째 주는 58시간을 일하고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두 번째 주는 46시간 동안 근무를 해서 전체적으로 평균 52시간을 맞추는 식이다. 업계는 2주 또는 3개월 단위로만 가능한 운영 기간을 최대 1년까지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두 번째는 재량근로 대상에 콘텐츠 업계를 포함해달라는 요구다. 재량근로제는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을 일정하게 산출하기 쉽지 않은 경우 노사 간 서면 합의로 근로시간을 인정하는 제도다. 현재 재량근로 대상에는 △신기술 연구개발 업무 △정보처리 시스템 설계 업무 △신문·방송 등의 취재·편집 업무 △영화·방송 제작 현장의 감독·프로듀서 업무 등이 포함돼 있다. 재계 관계자는 “특례업종과 달리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인정하는 재량근로제는 ‘1주일 52시간(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 전에는 68시간)’의 범위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며 “다만 재량근로제에 포함되면 근로감독의 영향권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재량’에 따라 근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업계 요구들을 수렴한 뒤 고용부와 상의해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 것”이라며 “인건비 지원을 포함한 여러 가지 지원책도 함께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나윤석·서은영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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