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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강은경 서울시향 대표] "내 인생은 도전으로 점철...명품 클래식홀 꼭 만들어야죠"

■시작은 예술

음악가 꿈꾸며 예원학교 바이올린 전공

학문적 갈증에 서울대 법과대학 진학

다시 예술로 눈돌려 기획사서 사회 첫발

예술경영·법학박사 두 토끼 모두 잡아

■오케스트라 수장 되다

소통으로 악단 결속 다지는데 최우선

내달 시행 '근로시간 단축' 만반의 준비

단원들 '주당 40시간' 연습...큰 문제 없어

남북 예술문화 교류에도 적극 참여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언제나 옳은 진리인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하나도 제대로 갖기 힘든 재능을 ‘멀티’로 장착하고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 3월 취임한 강은경(48·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가 그런 사람이다. 강 대표는 법과 예술이라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상당한 성과를 낸 뒤 공공기관의 수장에 올랐다.

시작은 ‘예술’이었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 소질이 남달랐던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예원학교에 진학해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논리적 호기심을 양껏 충족하지 못한 강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학업에 전념해 최고의 수재들만 모이는 서울대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다시 ‘예술’로 눈을 돌려 지금은 사라진 한 공연기획사에 입사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한 곳에만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강 대표의 기질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계속됐다. “2000년대 초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 한창 열심히 일하던 시기였어요. 법대를 나온 ‘원죄’가 있으니 회사 분들이 업무와 관련해 궁금한 법적 사안이 있으면 모두 저를 찾아오더라고요. 뭔가 도움을 주고 방향도 제시하고 싶은데 학부만 졸업한 저 역시 깊이 있는 지식은 없다 보니 ‘더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요. 문화와 기업 활동을 접목한 ‘예술경영’에 관심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었어요.”

최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오찬을 겸한 인터뷰를 가진 강 대표는 “제가 원래 ‘실험 정신’이 좀 과해서 인생이 산만한 편”이라며 “특별한 개척자인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사실은 시행착오 인생”이라고 쑥스러워했다. 강 대표가 취임 이후 개별 언론사와 인터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직장 생활 도중 학문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 강 대표가 문을 두드린 곳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그는 한예종 무용원에서 예술경영으로 예술전문사 과정을 밟았고 다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 법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 대표의 설명대로 “귀납적으로 답을 찾아 헤매면서” 흘러 흘러 오다 보니 뜻하지 않게 ‘법률 지식을 겸비한 공연예술 기획자’라는 독보적인 타이틀을 얻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시간을 쪼개 공부에 투자한 노력은 현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법률 현안을 조명한 저서 ‘공연예술법 마스터클래스 4막36장’을 쓰는 밑거름이 됐다.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공연팀장, 한예종 강의전담 교수 등을 거쳐 서울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를 이끌게 된 강 대표는 취임 이후 직원들을 일일이 따로 만나며 소통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박현정 전 대표의 인사 전횡과 단원을 향한 폭언 등이 초래한 법적 공방이 이어지면서 조직의 분위기가 많이 위축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직원들과 안면을 트고 소통하면서 어느 정도 내부 결속이 다져졌다고 판단한 강 대표는 서울시향의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임기 내에 반드시 이루고 싶은 숙원 사업으로 서울시향의 클래식 전용 홀 설립을 꼽았다. “세종문화회관은 클래식 홀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이 공연 일정을 하나 잡으려면 서초구의 예술의전당과 송파구의 롯데콘서트홀을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관 날짜를 공연장에 맞추다 보니 해외 지휘자나 연주자와 일정을 조율하기도 쉽지 않고요. 홀이 없는 오케스트라는 전용 구장이 없는 국가대표 축구팀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강 대표는 “광화문 일대는 ‘글로벌 도시’ 서울의 중심인데 이제 강북에도 클래식 홀이 하나쯤은 생길 때가 됐다”며 “강북에 있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시민들이 강남에서 진행되는 서울시향의 공연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14년 타당성 조사를 시작으로 클래식 전용 홀 건립을 추진해왔으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엇갈리는데다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을 둘러싼 정치적 논의까지 겹치면서 이 프로젝트는 잠정 보류된 상태다. 각계각층의 엇갈린 이해관계가 결정적인 순간에 전용 홀 건설의 발목을 잡았다.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전통 문화의 향기가 숨 쉬는 광화문 일대에 서양 음악을 위한 전용 공간을 짓는 것을 반대하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국악과 전통 음악도 세계화가 많이 진행됐고 혼합 장르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악’과 ‘양악’을 칼로 무 자르듯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전용 홀 설립을 추진하겠지만 ‘서울시민들의 컨센서스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시민을 위한 홀을 짓는 게 저의 꿈인데 마치 시향을 위한 집을 하나 더 만드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서울시향이 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지요.”



오는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는 가운데 법률 전문가인 강 대표는 새로운 제도 도입에 앞서 만반의 대응을 마친 상태다. 그는 “오케스트라 단원을 ‘특수노동자’로 인정하는 일부 해외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일반근로자’로 규정하고 있어 서울시향 단원들도 모두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을 받게 된다”면서도 “현재 단원들의 주당 연습시간이 40시간 정도라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돼도 별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어떤 지방자치단체의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이 출퇴근 도장을 찍는 경우도 있는데 서울시향은 공연이 있을 때 더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한때 인수합병(M&A)이 대세라고 해서 변호사들이 그쪽으로 많이 몰렸는데 요즘은 노무 관련 이슈에 집중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새로운 제도가 조직에 무리 없이 안착할 수 있도록 저도 노동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박 전 대표와 갈등을 빚으며 음악감독직에서 물러난 정명훈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숙제다. 강 대표는 “최근 발족한 ‘음악감독추천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3명가량의 복수후보를 추천하면 이사회 제청과 시장 임명 절차를 거쳐 음악감독을 확정하게 된다”며 “추천위에서 1·2·3순위를 정하면 제가 실무적으로 만나 현실적인 조건을 타진하는 형태로 이뤄질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번부터 음악감독 선임 과정에 투표를 통해 단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식이 추가됐어요. 당장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바로 모셔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차분히 지켜나가다 보니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할 것 같아요. 어떤 분이 오실지 몰라도 우리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잘 끌어내고 무엇보다 서울시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듬뿍 가진 분이 음악감독으로 선임됐으면 좋겠습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연이은 개최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문화·예술계에도 남북 교류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물론 서울시향도 남북 교향악단 합동공연과 같은 교류·협력 방안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하고 있다. 강 대표는 “현재 여러 가지 기획들이 지자체별로, 창구별로 물밑에서 오가고 있다”며 “저희는 불러만 주시면 항상 준비돼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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