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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6·25 전쟁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김태우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전 통일연구원장

과거 '아픈 역사와 마주하기'

곧 나라의 미래를 위한 행보

남북 상생·화해협력 디딤돌로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오늘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벌써 68년이 되는 날이다. 이 전쟁에서 대한민국은 국군 전상자 62만명, 민간인 사망자 24만명, 북한군에게 학살된 민간인 13만명, 부상 민간인 23만명, 북쪽으로 끌려간 피랍자 8만5,000명 등 100만여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한국을 구출하기 위해 참전한 유엔군의 피해도 엄청났다. 전사한 3만7,000명에 부상 후 고국에 돌아가서 사망한 군인들까지 합치면 미군의 희생은 5만4,000여명에 달했고 16개 참전국의 전상자를 합치면 유엔군의 전상자는 50만명에 달한다. 전쟁을 도발한 북한도 전상자 80만명에 민간인 사상자 30만명을 더해 100만명이 넘는 인명피해를 봤으며 ‘항미원조(抗美援朝)’와 ‘구인자구(救隣自救)’를 외치며 북한을 도와 참전했던 중국군의 피해도 컸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전체 인명피해는 39만명이지만 실제로는 100만명에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다.

6·25전쟁의 예순여덟 번째 돌을 맞으면서 우선 생각나는 것은 그토록 참혹한 전쟁에서 그토록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그토록 국토가 처참하게 부서졌음에도 오늘날 한국이 24개국의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으로서 다른 나라들을 원조하는 나라가 됐다는 사실이다. 정말 꿈만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생각나는 것이 어찌 그뿐이겠는가. 6·25를 기억하는 세대들이라면 당연히 애치슨 라인, 이승만 대통령, 한미동맹, 호국영령 등을 떠올릴 것이고 오늘날 중고생들의 역사 교과서에서 6·25가 왜곡되거나 ‘잊힌 전쟁’이 되고 있음을 애석하게 여길 것이다.

애치슨 라인이란 지난 1950년 1월12일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발표한 동북아의 미국 방위선을 말한다. 알류샨 열도와 일본, 그리고 필리핀을 잇는 이 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은 제외됐다. 북한은 남침전쟁을 도발하더라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중공군은 대만에 대한 포격을 개시했고 북한군은 전면 남침을 감행했다. 한국은 북한의 대대적인 평화 공세를 믿고 평화의 환상에 빠져 “오라 남(南)으로, 가자 북(北)으로”를 외치고 있었다. 전쟁을 예상하지 않은 군 지휘관들은 “북한이 쳐들어오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것”이라고 허풍을 떨고 있었다. 국군의 패주는 당연했다. 전쟁 발발 사흘 만인 6월28일 서울이 함락됐고 7월31일 북한군은 대구 북방에서 낙동강 전선으로 둘러싸인 남한 국토의 10%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점령하고 적화통일을 눈앞에 뒀다. 미국은 소련 공산주의 세력의 남하를 저지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참전했다. 9·15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만회하고 38선 이북으로 진격하지만 중국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다시 후퇴하고 만다. 6·25를 경험한 세대들에게는 골백번도 더 배우고 들은 6·25의 역사다.



하지만 요즘 적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역사는 무척 생소하다. 관심도 없고 학교에서 잘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내고 한미동맹을 성사시켜 번영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역사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독재자’로 기억될 뿐이다. 호국영령을 추모해야 하는 이유를 절절하게 느끼지도 않는다. 현충일에 태극기를 내걸고 묵념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전사한 장병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변을 당한 학생들이나 민주화운동 중에 숨진 분들보다 더 낮은 대우를 받아도 이런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려 하지도 않는다.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경제 기적이 동맹이 제공해준 안보 방패와 안정성 위에서 가능했다는 역사를 가르치거나 6·25전쟁에서 희생당한 유엔군 장병에게 감사하라고 권면하기도 어렵다. 그러다가는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참전한 것이므로 감사할 이유가 없다”는 반론에 맞닥뜨리기가 십상이다. 이런 논리라면 은사님이나 부모님께 고마워해야 할 이유도 없다. 선생님은 월급을 받고 살기 위해 내가 다니는 학교로 발령받았을 뿐 처음부터 나를 알고 도우려고 온 것이 아니며, 부모님 역시 자신들의 행복을 영위하는 중에 나를 낳았을 뿐이다.

요즘 한반도에는 새로운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많은 국민이 남북이 ‘도발과 긴장’의 악순환을 차단하고 상생의 시대를 열어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럴 때일수록 6·25의 역사는 소중하며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과거의 아픈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것은 곧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유태인은 세계 인구의 0.2%에 지나지 않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1을 차지한다. 강원도와 경기도를 합친 정도의 소국인 이스라엘은 수십 배의 인구를 가진 이슬람국들에 둘러싸여 네 차례의 전쟁을 벌였지만 모두 승리했다. 이스라엘이 강한 것은 2000년에 걸친 유랑의 역사와 홀로코스트를 똑바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북한의 6·25 남침과 이후의 도발들을 똑바로 기억하는 것은 남북 상생과 화해 협력을 위한 디딤돌이지 걸림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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