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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한숨짓는 자영업] 저녁 예약 손님 뚝…식당가는 "죽을 맛" 노래방은 "곡소리"

펜션도 워크숍·단체손님 확 줄어

가족 시설로 바꿔야하나 속앓이

'워라밸' 되레 직장인 지갑 안열어

"소득주도 성장론 아닌 저성장론"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이틀 앞둔 29일 오후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주인이 텅 빈 식당 한가운데 앉아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다. /권욱기자




전국 15만명 이상의 자영업자들이 가입한 국내 최대 자영업 카페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지난 23일 흥미로운 제안이 올라왔다. 지난 1월에서 6월22일까지 전년 대비 매출 증감 현황을 올려 달라는 이 카페에는 총 143명이 참가했는데 전년 대비 매출이 하락했다고 밝힌 응답자는 무려 62.18%에 달했다. 특히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 자영업자들이 20% 이상 매출이 빠졌다고 답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영업자의 오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이틀 앞둔 29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찾은 현장에서는 “당장 내일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도대체 누굴 위한 정부냐”는 비판까지 상인들의 아우성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여의도에서 9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전필수(가명)씨는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가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피크 시간대인 저녁 7~8시에는 상가 건물 화장실 앞까지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지금은 예약은커녕 테이블 반 이상이 비어 있다. 전씨는 “늘 하는 말로 들리겠지만 국제통화기금(IMF) 때보다 훨씬 힘든 것 같다”며 “경기가 나빠지면서 매출은 계속 줄고 있는데 7월부터 회식까지 사라지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떨었다.



인근에서 장어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숙자(가명)씨의 사정은 더욱 좋지 않다. 다른 외식 메뉴에 비해 비교적 고가인 장어는 회식 등 저녁 장사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데 2년 전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손님이 줄어든데다 이번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 손님이 없는 삶’이 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된 것이다. 그나마 단골손님을 중심으로 하루 몇 건씩 이어지던 저녁 예약은 7월부터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가 보여준 예약 장부에 적힌 7월 예약은 단 1건에 불과했다.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인근의 자영업자들의 표정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가산디지털단지는 전형적인 오피스 상권으로 인근 기업의 동향이 매출로 직결되는 곳이다. 여의도와 가산디지털단지 등 총 네 곳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나현식(가명)씨는 이미 점포 한 곳을 매물로 내놓았다. 그는 “모든 매장에서 이달 매출이 전월 대비 30% 감소했다”며 “여의도는 300인 이상 기업이 많아 매출 하락세가 뚜렷하고 우리 점포 주변에는 권리금 없이 나온 매물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가산디지털단지역 인근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안경표(가명)씨는 “이곳에 있던 LG 계열사들이 마곡으로 옮기고, 이랜드도 토요일 근무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손님이 크게 줄었다”며 “한 건물에만 식당이 40곳일 정도로 이 지역 상권은 과포화 상태로 인건비와 식자재 가격까지 오르고 있어 식당 10곳 중 두세 곳은 폐업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같은 건물에서 설렁탕 집을 운영하는 최광수(가명) 씨는 기자와 만나자마자 “죽을 맛”이라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저는 좌파지만 요즘 보수 성향의 신문에서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으로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통일도 좋고, 축구도 좋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밤 시간대 매출 비중이 높은 주점이나 노래방 등에서도 매출 감소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광화문 인근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정명환(가명) 씨는 “미투 운동이 한창 거셀 때부터 업장을 찾는 손님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혹시라도 모를 ‘미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장사꾼 입장에서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워크숍이 공식적인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유탄을 맞게 된 연수시설이나 펜션 등 숙박업체들도 성수기를 앞두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에서 워크숍 전문 펜션을 운영하는 이준희(가명) 씨는 “지난해만 해도 본격적인 여름휴가에 앞서 단합대회를 오는 단체 손님이 많았지만 다음 달에는 단체 예약이 두세 건에 그친다”면서 “족구장이나 세미나실 등 워크숍 전용 시설을 뜯어내고 가족 고객 시설로 바꿔야 할지 고민이 되지만 개인 고객 펜션 시장도 이미 포화 상태라 결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 시행과 관련해 6개월의 계도 기간을 주기로 했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법 위반 시범 케이스에 걸릴 것을 우려해 회식금지령을 내리는 등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기 전부터 회식을 1차만 하고 끝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롯데그룹 역시 최소 1주일 전에 회식을 공지하고 1차에서 끝내며 9시 전에 마무리하자는 내용의 ‘119’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의 적용을 받지 않은 기업들조차 사회 분위기를 타고 회식 등을 자제하는 추세다. 종업원 200인 규모의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직원 교육을 담당하는 이혜란(가명) 이사는 “팀별로 월 1회 회식, 회사 전체로는 연간 1회의 워크숍을 운영했는데 앞으로는 저녁 회식을 점심 회식으로 대체하고 워크숍은 1박 2일에서 당일치기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회사의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공유하는 회식이나 워크숍이 중요하다고 보지만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이슈 앞에서는 이런 것도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영업계에서는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에 최종 책임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근재 한국외식업중앙회 서울시협의회장은 “근로자의 실질소득이 높아야 자영업계도 생존할 수 있는데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하면서 오히려 직장인들의 지갑을 비우고 있다”며 “사실상 소득주도 성장론이 아니라 ‘저성장론’이나 마찬가지”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박해욱·김연하·심우일·허세민기자spook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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