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해외칼럼] 능력주의에 대한 공격

뉴욕 명문고들 입시 폐지 시사

하버드선 아시아계 차별 주장

능력주의를 공격하는 사람들

대체 방안 있는지 질문 던져야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최근 몇 주간 독자들은 상호 연관이 없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 부분 서로 연결된 두 가지 이슈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빌 더블라지오 미국 뉴욕시장은 스튜이버선트를 비롯해 치열한 경쟁률을 보이는 관내 8대 공립고교의 입학시험을 폐지하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치는 한편 이들 학교에 더 많은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제한적 조치를 하기 시작했다.

보스턴에서는 하버드대가 입학사정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을 차별했다는 새로운 주장이 법정 소송으로 흘러나왔다.

각각 다른 방향에서 불거진 상황이지만 둘 다 현대적 사회의 근간 중 하나인 능력주의(meritocracy)에 대한 공격과 다르지 않다.

능력주의라는 발상은 지금 사면초가에 처한 상태다. 오른편에 속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이를 평범하고 근면한 미국인들을 얕잡아보는 현실과 동떨어진 엘리트 집단의 암호로 여긴다.

영국의 경우 능력주의에 기반한 사회를 이뤄야 한다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주장은 엘리트주의와 불평등을 번식시키는 개념이라는 좌파의 공격에 시달렸다.

이쯤에서 능력주의가 언제 어떻게 현대사회의 조직 이념이 됐는지부터 살펴보자.

그전의 사람들은 부와 사회적 신분, 혈연 등을 중시하는 배타적이고 비공식적인 시스템으로 지위를 높여갔다.

니컬러스 레먼이 그의 흥미로운 저서 ‘중요한 시험(The Big Test)’에서 술회했듯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모든 면에서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WASPS)들에 의해 움직였다.

최고경영자(CEO)들, 대학 학장들과 상원의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WASPS였다. 이 같은 WASPS 천하는 주로 교육 분야에서 능력 위주의 시스템이 위세를 떨치면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저물었고 엘리트 기관들은 신분 배경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능력주의를 겨냥한 뉴욕의 도전은 현대 공립교육 시스템의 총아인 8개 명문 고등학교를 포함한다.

이들 학교의 입학 여부는 단 한 차례의 시험으로 결정된다. 돈이나 연줄, 혹은 인종적 배경이나 운동선수로의 기량은 통하지 않는다.

그 결과 뉴욕 최고의 명문고로 꼽히는 스튜이버선트 하이스쿨의 입학률은 스탠퍼드나 하버드 입학률보다 낮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명문 고교 출신의 빈곤한 영재들이 후일 중산층으로 대거 편입됐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기록이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뉴욕 명문고들이 “다양성(diversity)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시 전체의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의 비중이 68%인 데 비해 이들 학교에 재학 중인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의 비중은 고작 10%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입학시험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보이는 그룹은 아시아계로 이들이 뉴욕시 8개 명문 공립고 학생 전체의 62%를 차지한다.



그러나 더블라지오의 자세는 틀렸을 뿐 아니라 완고하기까지 하다.

첫째, 이들 학교의 인종 구성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아시안’이라는 카테고리는 중국·한국·베트남·인도·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와 필리핀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다양한 혈통을 아우른다. 이들은 판이한 문화와 사회경제적 조건을 지닌 인종 집단으로 언어와 종교도 다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테스트가 특정 소수계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력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데 온전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뉴욕의 일반 공립교들과 8대 명문고 사이의 차이점이다.

더블라지오 시장의 도전 배경에는 재능을 서열화하는 데 대한 좌파의 불편함이 놓여 있다.

시장의 계획을 지지하기 위해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서 학자인 민하 T 팜은 “모든 학교가 엘리트 학교가 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건 용어의 모순이다. 어떻게 사회를 조직하느냐에 상관없이 엘리트층은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엘리트층이 어떻게 형성되느냐다. 재능을 통해서인지 아니면 정치이념이나 사업관계 등 다른 기준으로 형성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보스턴의 도전은 진정한 능력주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뉴욕과 전혀 성격이 다르다.

고소인 측은 소장에서 엘리트 대학들이 학생들의 능력을 중시한다고 떠벌리지만 그것은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명문 대학들이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조직적인 편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최근 법원에 제출된 문건에 따르면 하버드대는 ‘인성(personality)’ 같은 소프트한 기준을 사용해 시험 점수가 높고 고교 성적이 우수하며 과외활동을 왕성하게 한 입학신청자들의 점수를 깎아내렸다. 이는 입학 자격을 갖춘 유대인들을 거부하기 위해 하버드대가 1920년대에 구사한 수법과 유사하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하자. 테스트는 완전하지 않다. 당연히 다른 요소(factor)들로 보완돼야 하지만 더블라지오의 방식은 마땅하지 않다.

그의 방식을 따른다면 일부 엘리트들이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로 입학사정을 좌지우지하던 과거의 ‘올드 보이 네트워크’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올드 보이 네트워크야말로 계층·인종·종교·정치와 금전을 근거로 편견과 우대를 밀반입한 프로세스였다.

지금 실력주의가 공격받고 있지만 그 공격에 가담한 자들은 스스로에게 과연 무엇으로 능력주의를 대체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윈스턴 처칠이 민주주의에 관해 말한 것처럼 능력주의는 사회 엘리트를 선발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 최악의 시스템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