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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文정부 첫 저출산대책..."급한불 끄자"지만 '붕어빵·용두사미' 쓴소리도

#맞벌이를 하며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키우는 A씨는 앞으로 아이가 방과후교실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1년 간 퇴근을 1시간 일찍 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200만원까지는 지원해줘 월급을 크게 깎일 염려도 덜었다. 이제까지 A씨는 이미 육아휴직 1년을 사용해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은 쓸 수 없었다.

#학습지교사 B씨, 분식집을 운영하는 C씨는 수입이 줄어들 걱정에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도 일을 쉬기 어려웠다. 고용보험이 없어 출산전후휴가급여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B·C씨와 같은 특수고용직·자영업자와 단시간근로자도 정부 지원으로 3개월 간 매달 5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9개월 전 아이를 낳은 D씨는 곧 육아휴직이 끝나는 아내와 고민에 빠져있다. 아이를 돌보려면 뒤이어 육아휴직에 들어가야 하지만 직장이 남자 육아휴직에 관대한 분위기도 아닌데다 자신이 아내보다 월급이 많아 가구수입도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에서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로 3개월 간 월 200만원까지 지원해주지만 소득 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D씨처럼 부부 중 두 번째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사람은 앞으로 이 지원을 250만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

#홀로 중학생(15세)과 초등학생(12세) 두 아이를 키우는 E씨는 올해까지는 둘째에 대해서만 한 달에 13만원씩 정부로부터 양육비를 받았다. 하지만 한부모 양육비가 월 17만원으로 오르고 첫째 아이까지 지원 대상이 되면서 앞으로는 총 34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5세 딸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월세·전셋집을 전전했던 F씨는 이제까지 신혼부부만 지원 대상이었던 행복·공공주택에 입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6세 이하 미취학 자녀를 둔 한부모 가정을 위해 정부가 따로 6만 세대를 지원하기로 하면서다.







정부가 지난 5일 발표한 저출산 대책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의 내용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나온 첫 저출산 대책입니다. “여성을 출산기계로 보느냐”는 반발을 낳기도 했던 출산율 수치 목표를 없애고 ‘주거복지’를 비롯해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차별 해소’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자꾸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보다 이미 잘 만들어져 있는데 문턱이 높거나 실효성이 떨어져 쓰이지 못했던 출산·양육 지원 제도의 활용도를 높이자는 게 이번 대책의 목표입니다.

다만 그러다 보니 정부가 그동안 저출산 대책 발표를 4개월 여 미뤄오면서까지 강조했던 ‘패러다임 전환’은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남성의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자체를 달갑지 않게 보는 직장문화, 여성의 경력단절 위험, ‘독박육아’ 공포, 사교육비 부담 등 아이 낳기를 꺼리게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비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금 지원 중심의 기존 제도의 대상자를 늘리고 지원 금액을 올리는 ‘급한 불 끄기’용 단기처방이 중심이 됐습니다. 물론 비혼·사실혼 출산에 대한 차별 해소처럼 한 걸음 더 나아간 접근도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현재 5개년(2016~2020년) 계획으로 짜인 기존 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재구조화해 오는 10월 근본 대책을 다시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상희 부위원장이 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일하며 아이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를 발표하고 있다./송은석기자


이번 저출산 대책은 신혼부부·청년·한부모가정 ‘주거지원’과 ‘출산·육아 지원’ 두 파트로 나뉩니다.

우선 주거지원을 위해 정부는 주변 시세보다 20~30%나 저렴한 ‘신혼희망타운’ 아파트를 위례신도시·평택 고덕 등에 2022년까지 총 10만가구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신혼희망타운 전용 대출 조건도 파격적입니다. 연 1.3% 고정금리로 최장 30년간 나눠 갚을 수 있도록 집값의 70%까지 최대 4억원을 빌려줍니다. 생애 처음으로 집을 사는 신혼부부의 취득세는 절반으로 깎아줍니다. 결혼 7년차 이내 신혼부부거나 1년 내 혼인신고 예정인 예비부부 88만쌍이 대상입니다. 특히 결혼하지 않은 채 만 6세 이하 자녀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대디’ 6만가구에게도 신혼부부와 같은 자격을 주기로 했습니다.

신혼집 마련 등 결혼비용 부담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는 청년을 위해 임대주택·금융지원도 대폭 늘립니다.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청년주택 공급 규모를 27만가구로 2만가구 더 늘리고 5만명 대상이었던 대학 기숙사 입주 규모도 6만명으로 확대했습니다. 청년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최고 금리 3.3%, 이자소득 5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주는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도 내놓을 예정입니다. 임차보증금과 월세를 동시에 대출해주는 ‘청년 전용 보증부 월세대출’ 상품도 올해 말 나옵니다.



이미 아이를 낳고 키우는 2040세대를 위한 출산·양육 지원책도 있습니다. 이창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기획조정관은 ”우리나라 기혼부부 희망 자녀 수가 2명은 되기 때문에 1명을 낳아서 큰 부담이 안 된다면 2명까지는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며 “자꾸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보다는 육아휴직·근로시간 단축 등 기존에 만들어진 제도의 문턱을 낮추고 차별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모 ‘워라밸’ 위해…아이돌보미·근로시간단축·육아휴직보너스 확대=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부모의 ‘워라밸(일생활 균형)’을 위해 중위소득 120%(3인가구 기준 442만원)까지만 지원받던 아이돌봄서비스는 중위소득 150% 가구(553만원)까지 대상이 확대됩니다. 저소득층의 아이돌보미 이용금액에 대한 지원은 기존 80%에서 최대 90%까지 늘리기로 했습니다. 늘 공급 부족·저임금 불만을 낳던 아이돌보미도 처우를 개선해 2만3,000명에서 4만3,000명까지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는 앞으로 최대 2년간 임금 삭감 없이 일하는 시간을 하루 1~5시간 줄일 수 있습니다. 육아휴직 1년을 썼더라도 근로시간 단축 1년을, 육아휴직을 안 썼다면 근로시간 단축을 2년 쓸 수 있게 됩니다. 이중 하루 1시간에 대해서는 정부가 통상임금의 100%를 200만원까지 보전해줍니다. 지금까지 육아기 부모의 근로시간 단축은 하루 2시간부터만 가능했고 육아휴직 1년을 모두 쓴 상태라면 이마저도 쓸 수 없었습니다. 임금보전도 통상임금의 80%까지밖에 안 돼 활용도가 더 떨어졌습니다.

남성의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한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아내에 이어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배우자에게 첫 3개월간 지급하는 급여 상한액은 월 2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오릅니다. 부부 중 두 번째 육아휴직은 보통 남성이 쓰기 때문에 보통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라고 부릅니다. 남성이 쓰는 배우자 유급출산휴가도 현행 3일에서 10일로 대폭 늘어납니다. 부담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유급휴가 5일분 임금은 정부가 지원키로 했습니다. 휴가 사용기간도 출산 후 30일에서 90일 이내로 늘리고 1회 분할사용도 허용됩니다. 정부는 부모 동시 육아휴직도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첫돌까지 외래의료비 부담 ‘0원’=만 1세 미만 아기가 아파서 병원에 갈 때 부모가 내는 건강보험 본인 부담금은 현행 21~42%에서 5~20%로 줄어듭니다. 아기가 감기에 걸렸을 때 동네 의원에 가면 지금까지는 초진 진찰료를 3,200원 내야했지만 앞으로는 700원만 내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만 1세까지 아이의 외래 진료비로 부모가 내는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은 평균 16만5,000원에서 5만6,000원까지 떨어질 전망입니다.

나머지는 정부가 지원하는 ‘국민행복카드’로 낼 수 있습니다. 기존 국민행복카드는 임신·출산 진료비에만 쓸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아이 진료비에도 쓸 수 있게 됩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산모의 분만예정일 이후 60일까지만 쓸 수 있었던 국민행복카드 사용기한을 1년까지로 확대하고 지원금액도 기존보다 단태아 60만원, 다태아 100만원으로 10만원씩 늘리기로 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만 1세 아동의 의료비를 사실상 ‘0원’으로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입니다.

◇자영업자·특수고용직 5만명에 출산지원금 150만원=새로 도입되는 제도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고용보험 적용대상이 아니어서 출산휴가급여를 받지 못했던 자영업자나 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와 같은 특수고용자, 단시간 근로자도 앞으로는 정부로부터 출산지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원 규모는 3개월간 월 50만원씩 총 150만원입니다. 연간 약 5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싱글맘·대디’ ‘사실혼’ 차별 없앤다=이번에 정부가 새로 제시한 비전은 ‘모든 출생이 존중받는 여건’을 만들겠다 겁니다. 이를 위해 아이를 시설에 보내지 않고 홀로 키우는 한부모에게 주는 양육비는 월 13만원에서 17만원으로 올리고 지원 아동 연령도 만 14세에서 만 18세로 높입니다. 만 24세 이하인 청소년 한부모의 경우 현재 18만원에서 25만원으로 인상 폭을 대폭 올렸습니다. 정부는 사실혼 부부도 법적 부부와 마찬가지로 난임시술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방안도 내놨습니다. 지금까지 미혼모 자녀는 아버지가 자녀 존재를 인지하면 아버지의 성(姓)으로 바꿔야 했지만 원래 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합니다. 주민등록상 ‘계부·계모’ 표현도 삭제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혼 여성에게 임신부터 출산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통합 상담 서비스도 강화됩니다.



이번 저출산 대책을 시행하기 위해 추가로 들어가는 재정은 매년 약 4조4,200억원에 달합니다. 주거지원(5년)에 연평균 3조5,200억원, 출산·양육지원에 약 9,000억원입니다. 출산·양육지원제도의 경우 추가되는 돈까지 합쳐 총 내년에만 약 3조1,000원이 투입됩니다.

하지만 결국 이미 하고 있던 지원을 확대하는 데 그치다 보니 문재인 정부가 인구위기 극복을 위해 강조해온 ‘패러다임의 전환’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집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재정만 투입하는 패턴이 이번에도 반복됐다는 얘기입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최근 결혼한 31세 남성 이모씨는 “지원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있는 남성 육아휴직이나 배우자 출산휴가도 눈치가 보여 마음 놓고 쓸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허무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출생아 수 감소 속도가 전 세계에서 유례 없을 정도로 빠른 만큼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기존 제도의 빈 틈을 메우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저출산위 관계자는 “올해 이후 출생아 수 30만명대 선까지 무너지면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번 대책은 당장 급하게 내년 출생아 수 30만명대 선 붕괴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장 급한 불을 끄려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절박감입니다. 현재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재조정 중인 정부는 오는 10월 또 한 번 저출산·고령화 장기대책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이창준 저출산위 기획조정관은 “우리나라에 맞는 적정 인구 규모와 그에 맞는 출생아 수를 분석해 10월에 발표할 재구조화 대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의 첫 저출산 대책이었던 만큼 전문가들도 아쉬움을 표합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정책 재구조화는 오랜 시간과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데 ‘차별성’과 ‘성과’를 강조하다 보니 결국 큰 그림은 바꾸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해봉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한국이 직면할 미래 인구변동은 과거 인구 성장을 기초로 한 대응에서 벗어나 인구 감소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시사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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