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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노동운동, 말로만 빈곤해결인가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최저임금제도는 '무딘 도구'

실직·폐업 등 부작용 불러

근로장려세제 확대 고려해야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1만790원으로 43% 인상을 요구했다. 엄청난 수준이라 정부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화풀이한다는 말이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장의 존립이 흔들리는 사람들은 노동계가 횡포를 부린다는 이야기도 한다. 최저임금을 인상할 수 있는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은 지지 않으니까 함부로 올린다는 불만이다. 올해에 최저임금이 16%나 올라 간신히 버티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맥이 풀리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혜택을 보는 근로자들도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들을까 조마조마해한다.

최저임금제도는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반(反)빈곤정책이다. 취지대로 빈곤을 줄이려면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감내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최저임금 16% 인상만으로 영세한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등은 폐업이, 취약한 비정규직과 청년은 실직이 줄을 이었다. 반면 서민물가는 겁 없이 뛰어 쓸 돈이 줄었고 소득 불평등은 오히려 확대됐다. 하위 20%의 가계소득은 대폭 감소했지만 상위 20%의 소득은 대폭 증가했다. 과도한 최저임금에 의한 빈곤화 문제는 통계청 자료로 확인된다.

최저임금도 너무 올리면 독이 된다. 최저임금제도는 빈곤해결과 소득 불평등 해소에 성능이 안 좋은 ‘무딘 도구’다. 이것은 대부분의 국내외 최저임금연구에서 확인된다. 다른 나라처럼 우리나라도 빈곤층 10가구 중 7가구는 취업자가 없어 최저임금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혜택받는 근로자라고 해도 소득계층에 넓게 퍼져 있고 오히려 상위소득 30% 가구에 속한 비율(14%)이 하위소득 10% 가구에 속한 비율(9%)보다 높다. 빈곤탈출과 소득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최저임금은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의 자녀에 관계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 동일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도의 모순을 해결할 대안은 없는가. 미국 등 선진국은 취약가구 근로자가 일을 하면 저소득을 보충하도록 정부가 현금을 주는 근로장려세제를 활용한다. 관련 연구를 보면 취약가구 근로자의 취업이 늘고 빈곤은 줄며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 근로장려세제의 수혜집단을 특성에 따라 정교하게 설계하고 지원 액수까지 크면 효과가 더 뚜렷했다. 그러나 이 제도의 확대는 정부의 재정에 달려 있다. 최저임금제도는 정부의 예산부담이 없지만 근로장려세제는 정부가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근로장려세제는 지난 2009년에 시행됐지만 노동계가 신자유주의 정책이라 치부하면서 빛이 가려져 왔다. 그러나 관련 연구를 보면 근로장려세제의 효과는 크다. 근로장려세제의 규모는 1조3,000억원 정도로 고용지원금제도보다 훨씬 작지만 최저임금제도와 달리 저소득 가구에 혜택이 집중됐고 빈곤도 줄였다. 이뿐만 아니라 저임금 근로자의 취업과 근로시간이 모두 증가하게 만들었고 소득 불평등도 줄였다. 또한 자영업자가 월급 받는 취업자로 전환하고 주부들이 직장에 나오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근로장려세제는 근로자를 직접 지원하는 반면 고용지원금제도는 사업주를 지원한다. 고용지원금제도는 예산을 대거 퍼부어도 효과가 낮지만 생색내기에는 좋다. 이 때문에 정부는 툭하면 고용지원금제도를 만든다. 타성이 붙어 최저임금을 과도하게 인상해 고용불안이 커지자 3조원의 일자리안정자금을 기업에 주는 이상한 정책을 만들었다. 만일 근로장려세제 지원대상과 규모를 확대하고 수혜요건은 완화해 3조원을 투입했다면 세금낭비를 줄이고 빈곤과 소득 불평등 악화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계는 취약계층 포용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실용적인 노선을 밟아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집착하면 말로만 빈곤해결이고 실제는 저소득 근로자를 빈곤으로 떠밀게 된다. 허술한 고용지원금제도는 개혁하고 남는 재원을 근로장려세제에 투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동운동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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