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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What]균형추 빠지는 '지혜의 기둥' 美 연방대법원…'보수의 기둥'으로 기우나

"정치도구 전락" 화살 맞는 美 연방대법원

은퇴 앞둔 '중도파' 케네디 후임

트럼프, 강경보수 캐버너 올려

낙태권 인정·'러 게이트' 수사 등

중대 국가정책 뒤집힐 가능성

미국인 연방대법원 신뢰도 37%

14년 연속 평균치인 44% 밑돌아

"대법관 종신제 폐지 논쟁 재부상"





‘지혜의 아홉 기둥’으로 불리는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들의 보수와 진보 균형이 반세기 만에 무너질 위기에 직면하면서 민주주의 수호라는 연방대법원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미국 사회에서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닐 고서치에 이어 두 번째 대법관으로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너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보수 연방대법원의 탄생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는 여성의 낙태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 등 그동안 논쟁이 계속돼온 판결들이 뒤집힐 가능성을 우려하며 연일 들썩이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자신의 이념에 부합하는 대법관을 임명하는 경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미국 대통령은 공통적으로 당파성에 따라 대법관 자리를 메워왔다. 하지만 집권 1년여 사이 2명의 임명권을 갖게 된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보수 색채를 띠는 인물을 연달아 연방대법관 자리에 앉히면서 논란이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태다. 연방대법원이 견제와 균형의 기능보다 대통령의 권력 남용의 장치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 속에 미국 특유의 ‘대법관 종신제’에 대한 논쟁도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헌법에 대한 최종 해석자인 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은 표결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논쟁적 사건들의 향방을 결정한다. 이들이 내리는 판결은 법적 구속력을 넘어 국가 정책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 같은 막강한 권력의 배경에는 대법관 임기 종신제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의 연방대법관은 자발적으로 사임하거나 은퇴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재직할 수 있다. 이달 말 은퇴를 앞둔 82세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지난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지명한 후 30년간 자리를 지켜왔다. 제임스 린드그렌 노스웨스턴대 법학 교수는 “초창기 대법관의 종신제가 결정될 때만 해도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지금보다 현저히 짧았다”며 “현재 대법관은 18~19세기 전임자들보다 50%나 긴 재직기간을 누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 특유의 종신제는 최근 들어 연방대법원을 곪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일간 보스턴글로브는 “종신 대법관이 당파적 공격이나 여론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성을 확보할 것이라는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며 막강한 권력과 긴 재임기간이 연방대법원 판결의 신뢰도와 투명성을 해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낙태·동성애·무기허용 등 사회 논란이 되는 문제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70~1980년대 대법관들은 보통 당파적으로 임명되지 않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대법관의 이념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성향에 맞춘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고서치에 이어 보수 성향이 강한 캐버너 판사를 대법관으로 지명한 데 대해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캐버너 지명자는 2015년 미 국가안보국(NSA) 사찰이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판결하는 등 강경 보수파로 구분되는 인사다. 그동안 중도보수로서 대법원의 균형추 역할을 해온 케네디 대법관의 후임으로 캐버너가 공식 임명되면 사회적 파장이 큰 주요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판결이 나온 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 ‘로 대 웨이드’ 사건이다. 1973년 낙태를 처벌하는 모든 법을 위헌으로 본 판결이 내려진 후 지금까지 고수돼온 이 판결은 대법원의 무게중심이 뚜렷한 보수로 기울면 변경될 여지가 크다. 게다가 캐버너는 과거 “현직 대통령은 범죄 수사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취지의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져 그가 최종 임명되면 트럼프 대통령을 2016년 대선 관련 ‘러시아 게이트’ 수사 선상에서 배제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보스턴글로브는 캐버너를 비롯해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모두 70세 이하로 향후 10~20년간 재임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193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이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연방대법원은 최근 들어 이슬람권 5개국 국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대통령 행정명령이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하는 등 보수적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장치로 전락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권위와 위상도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지난달 갤럽이 조사한 연방대법원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도는 37%로 14년 연속 평균치인 44%를 밑돌았다. 갤럽이 조사를 시작한 1973년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신뢰도는 40~50%대를 유지했으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임기 2기인 2007년 34%로 뚝 떨어진 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방대법원의 신뢰도를 높이고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대법관 종신제를 임기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방안이 제기된다. 2015년 로이터의 조사에서는 대법관의 종신제를 임기제로 대체하는 방안에 응답자의 66%가 찬성했다. 현재 미 에너지부 장관을 맡고 있는 릭 페리는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시절 대법관의 임기를 18년 단임제로 바꾸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이를 통해 모든 대통령이 임기 중 2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논리다. 미 인터넷 매체 복스(Vox)는 “이 같은 개혁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대법관 지명 과정에 규칙성을 부여하고 대법관의 정치 신념이 여러 세대에 걸쳐 확장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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