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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칼럼] 노동존중 사회와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이에서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고용쇼크로 친노동정책에 의구심

노동 유연성·사회 안전망 확보와

혁신성장·규제개혁 패키지로 묶어

이젠 국회가 대타협 주도하게해야





정부의 정책 기조가 조금씩 노동 존중 사회에서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옮겨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해석할 몇 가지 근거도 있다. 지난 5월 정부 여당은 노동계의 격한 반발을 무릅쓰고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했고 국무총리는 준비 부족을 이유로 주 52시간으로의 근로시간 단축을 6개월 늦췄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 인상률을 10.9%로 결정함으로써 두 자릿수 인상이라는 명분을 취하면서도 오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어렵겠다는 속도조절론에 힘을 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기 어렵게 됐다며 깨끗이 사과했다. 10일 인도 방문 중 있었던 기업인들과의 만남에서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기업 활동의 어려움을 앞장서 해결하겠다는 약속도 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는 일자리 창출을 당부하기도 했다. 기업인들에 대한 의례적인 인사치레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인도 방문 직전에는 내용이 부실하다며 규제개혁회의를 전격 취소했고 이후 정부 여당은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을 부쩍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보는 그동안 놀라울 정도로 편중됐던 정부의 친노동 정책 기조와 분명히 다르다. 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집무실에 일자리현황판을 걸고 대통령 1호 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며 직접 위원장을 맡기까지 했다. 대통령의 첫 현장 행보도 인천공항공사 노사를 만나 비정규직 제로를 당부하는 것이었다. 인사에서도 비판을 감수하며 노동운동 경력자들을 발탁해 주요 공직에 임명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노동계 대표들과 직접 만나 협조를 당부하며 신뢰를 쌓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지난가을에는 이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전어를 대접하며 함께 노동 존중 사회를 열어가기 위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달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그동안 일자리와 노동 정책에 대해 보인 집착에 가까운 애정이 식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변수가 작용했을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매월 발표되는 고용통계일 것이다. 당초 32만명까지 예상한 취업자 증가 규모가 5월과 6월 연이어 10만명을 넘기는 것조차 힘든 현실에서 노동 존중 사회라는 열망을 계속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지난주 발표된 한국은행의 수정 경제전망에 따르면 하반기 고용 사정이 좀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취업자가 연간 18만명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이러한 고용의 급격한 위축이 모두 친노동 정책 탓이라는 비판에 대해 억울한 누명이라고 항변해보지만 군색한 변명처럼 들릴 뿐이다.



또 하나 양대 노총의 비협조도 정부를 궁지로 모는 데 한몫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초기 노동 정책들은 대부분 노사의 복잡한 이해관계의 늪에 빠져 들어 갔다. 공공 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하자 기존의 정규직들이 채용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고 비정규직들은 기존 직원들과 같은 호봉제 임금을 달라고 반발했다. 양대 노총은 이 과정에서 정부의 더 많은 양보만을 요구할 뿐 조합원들의 절제와 양보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 조정에 대해서도 이들은 타협할 줄 몰랐다. 자기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최저임금위원회를 비롯한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기까지 했다. 아마 이들은 앞으로 최저임금 공약 파기를 새로운 공격 소재로 삼아 정부를 비난하며 대정부 투쟁을 지속할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도 요구와 쟁취만 있고 절제와 양보는 모르는 상대와의 대화와 타협이 어떤 결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지지 기반을 잃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로 급변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규제개혁과 신산업 육성 같은 전통적인 정책 수단들이 예전보다 강조되는 수준에 머물지 않을까. 성공 가능성이 낮아 보이기는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노동 존중 사회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위한 정책 패키지를 하나로 묶어 대타협을 시도하는 길도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노동 기준의 보장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노동유연성과 사회안전망 확보 그리고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국회가 주도하는 대타협을 시도하는 것이다. 어차피 법과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라면 노사와 여야가 한자리에 모여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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