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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캠페인-아픈 사회,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 고아로 큰 미혼부, 아이마저 베이비박스로

<1> 버려진 아이들

어른돼 단란한 가정 꿈꿨지만

애엄마 "돈 벌어온다"며 연락 뚝

아이 데리고 일할 곳 없어 막막

찾으러 온다는 말 남기고 떠나

한국은 아픈 사회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20대 우울증 환자는 최근 5년 새 20% 이상 늘었다. 자살률은 여전히 세계 최고다. 난임 부부는 경제적 부담과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싱글맘이나 폭력피해자는 사회적 편견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다문화가정 아이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한다. 중국 동포와 새터민(탈북자)들은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세계 10위 경제 규모에도 버려지는 아이들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사회병리적 현상을 더 이상 개인사로 돌릴 수는 없다. 사회 구조적 문제와 그릇된 인식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이제는 우리가 보듬고 품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은 창간 58주년을 맞아 ‘아픈 사회,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 캠페인을 펼친다. 고통받는 이웃을 돌아보고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지난 4월 중순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최우진(20·가명)씨가 16개월 된 딸 예림이(1·가명)를 꼭 껴안고 찾아왔다. 베이비박스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다. 쌔근쌔근 잠든 예림이를 한참 바라보던 최씨는 아이를 두고 뒤돌아섰다. 그는 예림이를 힘닿는 데까지 기르고 싶었다.

최씨는 7년 전 중학생이 되자마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고아가 됐다. 부모는 최씨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이혼했고 양육을 맡은 아버지는 얼마 후 그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집을 나갔다. 최씨는 지방도시에서 유흥업소 웨이터로 일하다가 접대부였던 예림이 엄마를 만났다. 연인이 된 둘은 동거하다 2016년 말 예림이를 얻었다.

그들에게 예림이는 ‘선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예림이가 태어나자 두 사람은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만 전념했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최씨는 예림이 엄마에게 혼인·출생신고를 재촉했다. 그러자 최씨의 요구가 부담스러웠는지 예림이 엄마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

서울 관악구 난곡로 주사랑공동체교회 건물 앞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송은석기자






홀로 예림이를 키우다 보니 돈을 벌기가 어려웠다. 방세는 계속 밀렸고 분유와 기저귀를 살 돈조차 없었다. 급기야 일하던 술집에서 사채를 얻었다. 이자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돈을 갚지 못하자 술집 사장이 찾아와 협박을 일삼았다. 자신보다 예림이가 걱정된 그는 지난해 9월부터 집을 나와 친구 집과 모텔을 전전했다. 빚을 갚지 않고는 예림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해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예림이를 데리고 일할 곳은 없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예림이를 키우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출생신고를 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미혼부의 출생신고는 쉽지 않았다.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기 위해 유전자검사 확인서와 특별대리인 선임서 등을 제출해야 했다. 서류가 복잡하다 보니 중도포기자가 많다. 2015년 100건이 넘는 미혼부 출생신고가 들어왔지만 법원은 이 중 16건만 허가했다. 결국 최씨가 찾을 곳은 베이비박스뿐이었다. “얼른 돈 벌어서 빚 갚고 꼭 예림이를 찾으러 오겠습니다.” 교회 관계자에게 남긴 최씨의 마지막 말이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서울 관악구 난곡로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자원봉사자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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