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남북과 동북아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유럽연합(EU)처럼 동북아 전체가 경제공동체가 되고 다자적인 안보협력체가 돼야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자고 일어나면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문 대통령의 구상에 여론은 싸늘했다. 당시 문 대통령 스스로도 “지금처럼 잔뜩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선뜻 다른 해법을 모색하기도 어렵다”고 전제를 깔았을 정도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북한의 도발이 중단되고 북미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자 문 대통령은 상징성이 있는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더 구체적이고 궁극적인 동북아 평화체제 밑그림을 밝힌 것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동북아 6개국(한국·북한·중국·일본·러시아·몽골)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를 제안한다”며 “동아시아 에너지·경제공동체로 이어지고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철도로 동북아 국가를 잇고 이어 러시아·중국·몽골 등의 에너지를 한반도와 일본으로 연결하는 에너지공동체를 구축한 뒤 단일 인터넷상거래 시장 구축 등으로 경제도 이어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EU식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이 핵심이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1·2차 세계대전으로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낸 유럽이지만 유로화라는 단일화폐 사용 등으로 촘촘히 연결되면서 지금은 굳건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실제 이날 문 대통령은 “1951년 전쟁방지·평화구축·경제재건이라는 목표 아래 유럽 6개국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창설했다”며 “이 공동체가 이후 유럽연합의 모체가 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궁극적인 평화체제 구상과는 별도로 현실적인 측면에서 북한과 미국의 빠른 조치도 촉구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양 정상이 세계와 나눈 약속”이라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포괄적 조치가 신속하게 추진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곧 열릴 것이라는 점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상호대표부로 발전하게 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사상 최초로 설치하게 됐다”며 “며칠 후면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하는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광복절임에도 이례적으로 일본에 ‘협력’의 메시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총리와도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협력은 결국 북일관계 정상화로 이끌어 갈 것”이라며 일본이 원하는 북일관계 정상화를 언급했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관계의 걸림돌은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 부침에 있다”며 각을 세운 것과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에 일본의 협력이 필수적임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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