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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WHO] '리라화 쇼크' 이면엔...에르도안의 '귈렌 콤플렉스' 있었다

■'21세기 술탄' 최대 정적 펫훌라흐 귈렌

2008년 FP선정 '세계 최고 지성'

한때 에르도안과 동지 사이였지만

부패척결 운동으로 사이 틀어져

2016년 쿠데타 주동자로 지목

브런슨 목사와 연루의혹 제기

맞교환 고수...美와 갈등 증폭

트럼프 보복 불러 경제 '최악'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로이터연합뉴스


펫훌라흐 귈렌 재미 이슬람학자/유튜브 캡처


지난 2016년부터 터키 정부가 구금 중인 미국인 선교사 앤드루 브런슨 목사 /AFP연합뉴스


“에르도안은 아무 증거도 없이 1만㎞ 떨어진 나를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펫훌라흐 귈렌)

최근 터키와 미국의 정치적 갈등에서 촉발된 ‘리라화 쇼크’가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면서 국제사회의 시선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시골 마을에 사는 한 재미 이슬람학자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대립의 핵심 배경인물인 펫훌라흐 귈렌이다.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 선교사 앤드루 브런슨 목사의 석방을 압박하며 터키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금융제재 대상으로 지정해 터키 리라화 폭락의 방아쇠를 당겼다. 터키가 요구를 묵살하자 10일에는 트위터를 통해 터키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의 관세를 2배로 올리는 ‘폭탄’을 투하했다. 이날 터키 리라화 가치는 장중 20%나 폭락하며 신흥국 금융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지난 66년간 동맹을 유지해온 미국에 등을 돌리게 만든 브런슨 목사 구금사태는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터키 정부는 당시 군부 쿠데타의 주동자로 지목한 귈렌과 브런슨 목사가 연관돼 있다고 보고 간첩·테러 조직 지원 혐의로 그를 구금했다. 터키 정부는 브런슨 목사가 반정부활동가인 귈렌과 쿠르드노동당(PPK)을 지지하고 정치적·군사적인 목적으로 분류된 국가정보를 취득했다고 보고 있다. 미 정부는 그간 터키 측에 브런슨 목사의 석방을 요구해왔지만 터키 정부는 미국이 재미 이슬람학자 귈렌의 터키 송환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번번이 이를 거절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을 향해 “우리 사람(귈렌)을 넘기면 우리도 당신들의 사람을 돌려보내겠다”며 두 사람의 맞교환만이 유일한 선택지임을 강조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국과의 우호관계와 맞바꿀 정도로 집착하는 귈렌은 누구인가. 그는 2008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선정한 ‘세계 최고 100대 지성’ 투표에서 노엄 촘스키, 리처드 도킨스 같은 세계적인 학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이슬람 사상가이자 학자다. 1999년 신병 치유를 위해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후 지금까지 약 20년간 펜실베이니아주 세일러스버그에에 살고 있다.

1941년 터키 동북부 에르주룸에서 출생 한 귈렌은 이맘(이슬람 성직자) 아버지를 둔 가정에서 이슬람 교육을 철저히 받으며 성장했다. 10대부터 이맘의 삶을 시작한 그는 터키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개설교를 하다가 국가모독죄로 연금되기도 했으며 1980년 발생한 군사 쿠데타 시기에는 체포령이 내려져 한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1960년대부터 터키 내에 세속주의·공산주의·이슬람주의 등 이념 갈등이 심해지자 귈렌은 공개설교를 중단하고 이슬람 세속주의를 가미한 서구식 교육기관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봉사를 바탕으로 이슬람의 가치를 알린다는 ‘히즈메트(HIZMET·봉사)’ 운동의 효시다. 히즈메트 운동은 합리적인 비용으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슬림 양육을 목표로 삼는다. 히즈메트를 통해 성장한 인재들은 터키 내 정치·경제·법조·교육·미디어·의료계 등에서 폭넓게 활동하며 광범위한 ‘귈렌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진정한 무슬림은 수염을 기르고 모스크에서 꾸란을 외우는 모습이 아니라 거리에서 장사를 하며 고객을 속이지 않을 때 참신앙이 드러난다”는 귈렌의 온건 이슬람주의는 율법주의 아래서 고통받던 터키 국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진 치유제가 됐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터키 국민의 10%는 그가 이끄는 ‘귈렌 활동’을 지지하며 그가 세운 교육기관은 현재 150여개국 1,000여곳으로 확산됐다.

이처럼 터키 무슬림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귈렌은 한때 에르도안 대통령과 한배를 탄 사이였다. 귈렌은 2001년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하고 2003년 총리에 올랐을 때부터 도움을 줬다. 이슬람주의를 기반으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에르도안의 ‘터키식 모델’이 성공한 데도 귈렌의 지지와 후원이 배경이 됐다. 하지만 2013년 말 수사·재판기관에 포진한 귈렌 지지자들이 부패척결 공세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에르도안 정부의 관료들을 겨냥하는 모습을 보이며 양측에 균열이 생겼다. 결국 에르도안 대통령은 수천명의 귈렌파를 숙청했으며 귈렌은 2014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행정부의 작은 분파 하나가 나라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며 권력을 독점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공식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2년 뒤인 2016년 7월, 에르도안이 자신을 겨냥한 쿠데타 시도의 주동자로 귈렌을 지목하며 양자 간 갈등은 최정점에 이르렀다. 당시 에르도안이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에 “터키는 미국이 요구한 테러리스트 추방 요구를 거절한 적이 없다. 우리가 전략적 파트너라면 미국은 우리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귈렌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면서 터키와 미국 간 갈등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외신들은 ‘21세기 술탄’을 꿈꾸며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귈렌 콤플렉스’가 세계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에르도안은 귈렌이 각종 사건에 연루됐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16만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하거나 감옥에 보냈다”며 “터키 경제가 흔들리는 것은 그의 과도한 권력에 대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우려하기 때문”이라며 에르도안 대통령이 근거 없는 주장보다 법치주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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