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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68년 그리고 11시간

정영현 정치부 차장





내년이면 아흔이 되는 이북 출신 유관식 할아버지에게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늘 희망고문이었다. “어머니, 일주일만 피난 갔다 올게, 걱정 마세요”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난 고향. 일곱 밤만 자고 돌아간다던 약속을 68년 가까이 지키지 못했다. 이산가족 상봉의 행운조차 매번 유 할아버지를 비껴갔다. 2년10개월 만에 재개된 올해 상봉행사 역시 경쟁률이 대단했다. 무려 569대1이었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마침내 덜컥 선정됐다. 꿈만 같았다. 게다가 상상도 못 했던 소식까지 전해졌다. 상봉장에 나올 북측 가족이 할아버지의 딸이다. 태어난 줄도 몰랐던 자식이었다. 할아버지는 “내 생에 여태까지 제일 기뻐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적 같은 만남이 이뤄지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고통에 휩싸였다. 상봉행사를 하루 앞둔 지난 19일 할아버지의 아들은 “딸이 아버지도 없이 혼자 자라느라 고생했을 생각에 가슴 아파하며 힘들어하셨다”고 할아버지의 심정을 전했다.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탈락자에게도, 상봉 대상자에게도 잔인한 일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또다시 시작됐다. 20일 유 할아버지를 비롯해 89명의 이산가족이 2박3일 일정으로 금강산을 찾았지만 이들에게 허락된 가족 만남 행사는 6차례, 총 11시간에 불과하다. 유 할아버지가 68년 동안 존재조차 몰랐던 자식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이래저래 다 합해봤자 반나절도 되지 않는 셈이다.

심지어 유 할아버지처럼 직계가 만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산가족들이 고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생존 이산가족 10명 중 4명은 80세가 넘는 초고령자다. 올해 101세로 이번 상봉에서 최고령인 백성규 할아버지의 “다 죽게 됐으니까” 소식이 왔다는 말이 한없이 무겁게 들리는 이유다. 백 할아버지는 가족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이날까지 건강 관리를 해왔지만 막상 북에 두고 온 아들은 먼저 세상을 떠나 이번에 며느리와 손자만 만나게 됐다.



4·27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뤄진 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앞으로 1주일 동안 금강산에서 눈물 마를 날이 없을 것이라는 건 이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후 35년 동안 매번 똑같이 반복돼온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 차수인 22차 상봉행사를 확정적으로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모두가 안다. 그로 인해 아직 단 한 번도 가족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불안과 고통에 빠질 것이라는 점까지 더해서 말이다.

남북에 이어 북미 관계까지 풀리면서 죽은 자들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절이 됐다. 이달 초 미군 유해 55구가 북측에서 이송된 데 이어 앞으로 북미 유해 공동발굴, 추가 송환도 논의되고 있다. 죽은 자의 처지도 달라지고 있을진대 산 사람들의 한은 더 빨리 풀어야 하지 않을까. 남과 북은 물론 미국도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더 이상 도돌이표가 되지 않도록 전향적으로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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