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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평소 원나잇 잦아…강간 아니다”

■올 강간 사건 1심 판결 보니
피해자 사진·CCTV 제출해도
재판부 "신빙성 없는 꽃뱀 추정"
가해자가 성관계 잘못 시인해도
"사죄일뿐 무력 아니다" 두둔까지

  • 신다은 기자
  • 2018-08-21 17:41:41
  • 사회일반
“피해자 평소 원나잇 잦아…강간 아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무죄 판결을 계기로 형법 297조를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거세다. 현행법이 ‘피해자 저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만 강간죄 성립요건으로 인정했다가 처벌 사각지대를 만들었다는 판단에서다. 강간죄 관련 법 개정요구는 지난 1995년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올해 1심에서 무죄로 판결 난 강간 사건 39건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 재판부는 여전히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거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의 없는 강제성관계를 무죄로 처분했다. 특히 가해자가 잘못을 시인했는데도 무죄로 판결이 난 사건도 2건이었다.

강간죄는 주로 짧은 시간 동안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피해자가 어렵게 증거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재판부의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 지난 2월 서울동부지법 재판부는 피해자 A(18)양이 양 팔을 붙잡혀 성관계를 당한 직후 팔에 멍이 든 모습을 보이자 “성관계 도중 생긴 상처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1월 대전지법도 피해자 A(21)씨가 상처를 입은 사진과 단추가 뜯어진 블라우스를 증거로 제출하자 “단추가 1개밖에 안 뜯어져 무력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CCTV 장면과 목격자 진술도 재판부 해석에 따라 달라졌다. A씨는 지난해 1월 남성과 술을 마시다 기억을 잃었고 이튿날 아침 모텔에서 깨어났다.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85%로 만취 상태였다. 모텔 주인은 “쿵쾅거리는 소리에 올라가 보니 여성이 ‘살려달라’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CCTV에도 출입문이 세 차례 열렸다가 닫히는 모습이 찍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흔들림 없이 걸었고 입실 후 1시간 동안 소란도 없었다”며 “꽃뱀이라는 남성의 주장에 부합하는 정황”이라고 밝혔다.

가해자가 잘못을 시인했음에도 무죄로 결론 난 사건도 있다. 지난해 7월 재수생 B씨는 술에 취한 여성(19)과 성관계를 한 뒤 다음날 피해자에게 카카오톡으로 “너무 잘못했다. 다른 동기들에게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내가 먼저 옷을 벗겼다”고 인정한 녹음파일도 나왔다. 하지만 대구지법은 “성관계를 한 데 대한 사죄이지 무력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무죄 처분했다.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법도 술자리 후 잠들었다가 동의 없는 성관계를 당한 C(19)씨에 대해 “사건 발생 전날에도 클럽에서 처음 만난 남성과 성관계를 했기 때문에 이 남성과도 자발적으로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반면 검찰의 소환 조사에 불응하고 성관계 사실마저 부인한 피고인에 대해서는 “사법 소환 조사가 처음이어서 당황스럽고 두려웠을 수 있다”고 했다.

여성계는 “현행법으로는 피해자가 어떤 증거를 들고 와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형법 297조 강간죄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선경 변호사는 “강간을 너무 좁게 해석하는 현행법 때문에 사건의 맥락을 따지지도 않고 무죄 처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기준으로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서울동부지법 2018고합46·대구지법 2018고합10·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317·대전지법 천안지원 2017고합145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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