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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트럼프 아닌 우리의 정부다

닉슨 몰아낸 '딥 스테이트'처럼
대통령 자만에 등돌린 사람 늘어
트럼프도 곧 '그 교훈' 터득할 것

  • 2018-08-27 17:10:48
  • 사외칼럼
리처드 코헨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해외칼럼]     트럼프 아닌 우리의 정부다
리처드 코헨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는 시를 전혀 알지 못할뿐더러 시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을 터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T S 엘리어트가 틀렸다는 사실 정도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로 꼽았지만 미국 대통령들에게 가장 잔인했던 달은 4월이 아니라 8월이다. 역사적으로 8월은 대통령 킬러였다.

자신에게 진저리를 치는 의회와 동정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사법부에 포위된 리처드 닉슨은 1974년 8월9일 항복의사를 밝힌 채 두 손을 들고 백악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이어 대기 중이던 헬리콥터에 오른 그는 그날로 임시 유배지인 캘리포니아를 향해 날아가는 것으로 역사에 영원한 오점을 찍었다.

그의 죄(sin)는 많지만 결정적 실수(mistake)는 대통령과 제왕의 지위를 혼동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대가로 그는 정치생명을 잃었다.

닉슨은 의회와 사법부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빌 클린턴에게 뭇매를 가하는 광경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 사건 역시 8월에 일어났다.

1998년 8월3일, 훗날 트럼프가 ‘딥스테이트(deep state)’라고 명명한 ‘불순세력’은 클린턴의 혈액을 요구했다.

당시 군 통수권자였던 클린턴은 채혈을 담당한 해군 군의관의 지시에 따라 순순히 소매를 걷어 올리고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

작은 병에 담긴 대통령의 피는 눈 깜빡할 사이 연구소로 옮겨졌고 그의 혈액에서 뽑아낸 DNA가 남성 체액으로 얼룩진 모니카 르윈스키의 드레스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한다는 판독 결과가 나오자 대통령 반대세력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트럼프는 그날 클린턴에게 일어났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대통령직이 지닌 권한의 한계를 보여주는 신호학습(signal lesson)이었다.

이어 같은 달인 8월20일, 클린턴은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의 알카에다 소유 추정 시설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명령했다.

펜으로 서명하는 간단한 손놀림만으로 미국 본토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의 적들을 죽이라고 지시한 것이다.

미사일 공격 명령은 대통령의 손끝에서 나오는 막강한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단 한 명의 해군 군의관도 막아낼 만한 힘이 없었다.

트럼프는 대통령의 제왕적 측면으로 쉽게 빠져들었다. 뉴욕 퀸스에서 성장한 그는 조잡하면서도 인기 있는 모조품을 뜻하는 키치(kitsch)의 광팬이다.

그가 성장한 퀸스의 1세대와 2세대 미국인들의 아파트 건물들은 ‘가든스’라든지 ‘빌라’ 혹은 ‘코트’ 등과 같은 허풍스런 이름으로 족보에 올라 있다. 이들 중 일부는 ‘타운(Towne)’처럼 단어 끝에 e를 붙인 옛 철자법의 고풍스러운 흔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자신도 루이14세풍을 도입했다. 트럼프 소유의 뉴욕 아파트 건물을 살펴본 사람들은 그의 눈꼴사나운 과시욕에 메스꺼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런 키치 장식은 트럼프 본인에게 썩 잘 어울린다.

그는 전례·역사 혹은 좋은 취향 등을 완전히 무시한 채 통치하거나 지배하려 든다.

지금 그는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현직 정보기관 고위관리들을 처벌하려 드는 등 마치 제왕처럼 행동하고 있다.

트럼프는 그들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게 아니라 진실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그는 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트럼프는 평생 비밀유지협약(NDA)에 의존해 삶을 꾸려왔다. 마이클 코언 혹은 그의 전임자인 로이 콘 같은 변호사들이 뒤처리를 도맡았다.

그러나 NDA로 정부나 전처들을 침묵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직 연방관리들을 속박할 방도는 기밀정보에 관한 규정을 제외하곤 전무하다.

예를 들어 존 브레넌은 트럼프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를 위해 일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미국민을 위해 일했다. 그에게 봉급을 준 것은 바로 우리였다.

지금 트럼프의 권력은 어쩔 수 없이 축소되고 있다.

트럼프는 그가 가진 권력의 한계를 배워가며 한껏 심통을 부리고 있다(심지어 그는 자신이 의욕적으로 제안했던 군 열병식까지 취소해야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제어할 능력이 없다.

트럼프의 모욕적인 트윗, 뻔뻔한 거짓말, 언론 매체에 대한 충동적 공격, 숨 막힐 정도로 주제넘은 행동에 핵심 지지자들은 환호하지만 워싱턴의 나머지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 신물을 낸다.

공화당은 그를 이용해 연방법원을 보수주의자들로 채우고 규제를 철폐하는 등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그림자를 몰아내겠노라고 벼르나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경우 그를 버스 밑으로 사정없이 던져버릴 것이다.

언젠가 군 기지를 시찰한 린든 존슨은 백악관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기 중이던 헬리콥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자신의 전용기가 아닌 다른 헬리콥터에 다가서자 현장에 있던 한 병사가 “대통령 전용기는 저쪽입니다”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자 존슨은 “이보게, 여기에 있는 헬기들은 모두 다 내 것이라네”라고 태연히 응수했다.

이는 대통령의 권력과 자만심을 보여주는 간결하나마 함축적인 예다.

하지만 존슨은 결국 강압에 의해 재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헬기들 가운데 그의 것은 단 한 대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트럼프도 조만간 동일한 교훈을 터득할 것이다. 백악관은 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것이다.

그가 말하는 불순세력은 실제로 정치권 곳곳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바로 이 세력이 닉슨을 백악관에서 몰아냈고, 클린턴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트럼프에게 딥스테이트는 늪에서 몸을 일으킨 괴물처럼 보이겠지만 내게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대륙군의 동계 병영이었던 밸리포지에서 추위에 몸을 떨던 병사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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