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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칼럼] 소득주도성장의 운명

최저임금·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정부가 시장과 싸우겠다는 고집

임금구조와 시장 체질 안바꾸면

좋은 일자리 창출하기 어려울 것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최영기 교수




지난 일요일 청와대는 처음으로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설명했다. 선의를 갖고 읽으면 공감할 내용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계기로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들지도 않을 듯하다. 정책 당국자의 진심 어린 신념 토로가 오히려 정책에 대한 수정과 보완의 여지를 차단하고 누가 맞는지 두고 보자는 식의 불필요한 진실 게임 구도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정책의 성패가 진영 간의 정치적 승패 게임으로 변질될 때 손해 보는 쪽은 결국 정부이고 국민이다. 이런 정치적 대결 상황에서 반대파들은 흔히 정책의 성공을 바라기보다 실패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더구나 소득주도 성장과 같이 정부가 직접 분배에 개입하는 정책이 결실을 보려면 경제주체들의 협력과 조화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의 갈등 상황은 정책 추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벼랑 끝 대결로 몰고 갔는지 곱씹어볼 일이지만 이미 총성은 울렸고 공방은 격해지고 있다. 과연 소득주도 성장의 운명은 어찌 될까.

정부의 후퇴, 국회의 승리로 끝나는 길이 그나마 소득주도 성장을 연명시킬 수 있는 해법이 아닐까. 국회의 승리를 점치는 것은 소득주도 성장의 주요 정책들이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미 국회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 메뉴를 거의 다 소진했다. 최저임금은 내년까지 29% 인상이 결정된 상태이고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이미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기도 벅찬 지경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잘 설명했듯이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복지 투자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 또 공정거래법을 비롯해 법 개정 사항도 한둘이 아니다. 정부여당이 아무리 원칙 고수 입장을 천명한다고 하더라도 야당과의 협의와 절충이 불가피하고 결국에는 큰 틀의 정치적 타협을 통해 일정한 수정과 보완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수정된 정책이 소득주도 성장으로 계속 명명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작명이 어떻게 되든 정부가 약속했고 국민이 진짜 원하는 좋은 일자리의 창출과 과도한 격차의 해소라는 당초의 목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부는 연말까지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주력 수출 제조업의 위축과 과잉 자영업의 구조조정이라는 실물경제 추세를 볼 때 고용과 분배 지표가 곧 나아진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추진된 소득주도 정책의 성과는 아직 통계지표로 입증되지 않았다. 최우선 과제로 추진됐던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감축 정책은 기존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하는 효과는 있었겠지만 신규 일자리 창출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의 질적 개선 효과가 지속된다는 보장도 없다. 시장은 안 변했는데 정부 결정에 따라 잠깐 바뀐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리를 무릅쓰고 내년까지 최저임금을 29% 올려놓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생산성 향상이나 가격 조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몇 년 지나 최저임금은 옛날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이 그랬다. 2003년 이후 5년간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을 연평균 10.6%씩 올렸지만 이후 5년간 연평균 인상률은 5.2%로 반 토막이 났다. 생산성과 사업주의 지불 능력이 그대로인데 임금만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정규직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2004년 정부는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고 상당한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직무와 생산성과 괴리된 채 움직이는 임금결정 구조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대통령은 또다시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지시해야 했다.

시장을 활용하고 시장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정책이라야 시장을 바꿀 수 있다. 저임근로와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서는 임금이라는 노동시장의 가격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이 직무와 생산성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연공과 노사교섭에 따라 왜곡되는 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한, 그리고 100인 미만 사업장의 47%가 임금체계조차 없는 무질서가 시정되지 않는 한 정부가 아무리 저임근로와 비정규직을 없애려 해도 잠시뿐일 것이다. 정부가 이를 모르지도 않는다. 정부의 국정계획에도 임금결정 구조개혁에 대한 방안들이 나열돼 있다. 그러나 웬일인지 지난 일요일 정책설명에서 노동시장구조 개혁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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