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이사람-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든든한 문화나눔 '나비 아저씨'..."예술도 자본처럼 순환해야죠"

예술은 생활이자 삶의 가치

즐기다 보면 나눔으로 이어져

바빠도 자주 전시·공연장 찾아

사라 장·이수경·양혜규 등 지원

1,000점 달하는 미술품 수집

회사내 전시, 많은 사람과 공유

경제강국, 하나같이 문화강국

후원을 존중·인정해줄 때

기업·문화 함께 커갈수 있어

벽산엔지니어링 김희근 회장./송은석기자




그의 별명은 ‘나비 아저씨’다. 참석하는 거의 모든 공식 행사에 항상 ‘나비넥타이’로 불리는 보타이를 착용하기 때문에 붙은 애칭이다. 그의 공식 직함은 벽산(007210)엔지니어링 회장이지만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국립현대미술관을 후원하는 현대미술관회 이사로 22년간 활동하다 지난해 회장으로 추대됐다. 그의 별명인 ‘나비 아저씨’ 뒤에는 재능과 열정 넘치는 예술가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듯 물심양면 지원해 ‘나비처럼’ 날아오르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찬사가 숨어 있다. 명품 브랜드 몽블랑도 공식 인정하며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2013년)’을 수여한 김희근(72) 회장을 최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났다.

“안녕하세요”보다 앞선 김 회장의 첫 마디는 “죄송합니다”였다. 한여름 인터뷰에 부득이하게 타이 없이 만다린칼라(차이나 혹은 스탠딩칼라) 차림인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 것. 충분히 격식을 갖춘 옷차림인데다 올해 폭염은 기상관측 이래 최악이었는데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그에게 타이는 장신구를 넘은 “상대에 대한 예의이자 배려”의 뜻을 담고 있다. 예술 후원도 마찬가지다. 여유가 있어 문화생활을 즐기고, 돈이 많아 예술 후원을 하는 게 아니다. 그 같은 태도는 예술을 꼭 장식물로 치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김 회장에게 문화와 예술은 생활이요, 삶의 가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하던 시절에 농사짓는 친구 집에서 8개월가량 일을 거들며 같이 산 적이 있어요. 그들은 식구끼리 혹은 손님을 초대했을 때 나누는 대화가 우리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대화의 중심이 주로 책이어서 ‘무슨 책을 읽었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나누고 공연과 음악·미술에 대해 얘기하더군요. 우리는 ‘배우자 직업은 뭔지, 아이들은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를 묻고 이야기하는데 말이죠. 테이블 매너란 밥을 먹으며 어떤 포크·나이프를 쓰느냐를 익히는 게 아니라 대화와 문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 농가에서의 경험을 비롯한 해외 체류가 그의 예술 ‘생활화’의 기반이 됐다. 이후 중동 지역 근무를 끝내고 지난 1985년 말 귀국해서는 주변의 경영자 친구들과 작은 점심 모임을 만들었고 우연히 인사동 화랑가에서 판화를 사기 시작한 게 미술품 수집으로 이어졌다. 음악과의 인연은 전공자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시작됐다. “30대 중반에 중동에 살던 나에게 ‘기금이나 후원금 좀 보내라’는 친구들과 여유를 나누던 것이 시작이었다”는 그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을 지냈고 현재는 세종솔로이스츠 이사장으로 있다. 먹고살기도 급급한데 무슨 예술이며 문화냐고 트집 잡힐 수도 있고, 돈이 많으니 누릴 수 있어 좋겠다는 질투도 따를 터이나 김 회장의 소신은 분명하다. 더 많이 벌수록 더 많이 써야 하는 것도 맞지만 어떻게 어디에 사용할지 문화와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산을 축적한 모든 자산가가 예술을 후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나 문화에 관심이 없는 이가 수두룩하고 혼자 즐기며 나눌 줄 모르는 이들도 허다하다.

벽산엔지니어링 김희근 회장./송은석기자


“인품과 도덕성 등에서 반듯한 최고경영자(CEO)는 뭔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문화생활을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영인은 대신 그의 기업이 돈을 씁니다. 돈을 내서 문화융성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CEO 자신이 앞장서 문화생활을 하는 것은 ‘한 수 위’입니다. CEO에 의해 기업문화가 좌우되니까요. 실제로 어느 회사에 다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매너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바쁘고, 돈 벌어야 하고, 여유 없다는 식의 핑계는 모든 비즈니스의 숙명입니다. 나도 잠을 못 잘 정도로 바쁘지만 아무리 바빠도 이런 거(문화생활) 할 수 있어요. CEO의 생각이 가족과 직원을 바꿔놓고 그 영향이 기업의 차이로 이어지거든요.”

김 회장은 그래서 실천하는 중이다. 회사로 출근하는 것 못지않게 전시장과 공연장을 찾아간다. 구로구의 벽산엔지니어링 사옥에는 미술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고 다양한 미술품이 걸려 있다. 모두 김 회장의 소장품이다. 자신의 수집품 내역을 밝히기를 꺼리는 보통의 컬렉터들과 달리 “대략 1,000점 가까이 되는데 딱 한 점 빼고는 개인 소장품”이라며 “약 400점을 직원들이 볼 수 있게끔 정기적으로 교체하며 전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림을 수장고에 쌓아두면 뭐합니까. 사무실마다 좋아하는 작품으로 바꿔 걸었더니 직원들의 호응이 좋았습니다. 층마다 연립도서관을 마련해 책을 ‘같이’ 봅니다. 제가 명품 고악기로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소사이어티’ 일원인데요. 구입한 바이올린과 첼로 등 3대를 해외 콩쿠르 수상자에게 2~3년씩 빌려줍니다. 악기는 누군가 연주해야 더 건강하게 오래갑니다. 자본도 순환해야 하고 음악·미술·문학 등 문화예술도 순환이 있어야 보람이 따릅니다.”



단 사유했던 것을 공유로 돌리고 더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도록 기여한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하건만, 우리 실정이 못내 아쉽다. 김 회장은 “국민소득 대비 기부액은 우리가 미국보다 높지만 주로 교회와 선교단체에 대한 의료봉사 등의 비중이 높고 문화 부문은 전체 기부액의 0.2%에 불과하다”며 “저조한 원인 중 하나가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인데 이건 ‘생색이 안 난다’는 뜻이기에 기부에 대한 ‘리스펙트(존중)’가 필요하고 그 공헌을 인정하며 북돋워줄 때 문화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예술 대중화’라는 모호한 표현보다는 ‘예술 생활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과 기업·개인이 제각각인 게 아니라 삶에 접목돼 생활에서 실천돼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김 회장은 예술가와 후원자가, 기업과 문화가 같이 커가는 ‘상생’을 강조했다. 실제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도 “‘애기’ 때부터 후원”했으며 깨진 도자기 파편으로 작업하는 현대미술가 이수경은 나중에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까지 진출한 작가가 됐다. 최근에는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하는 양혜규 작가의 테이트모던 소장품 작업을 위한 클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다.

벽산엔지니어링 김희근 회장./송은석기자


“경제강국은 하나같이 문화강국입니다. 인류사의 맥락에서 경제와 사회·식생활의 흐름은 선진국 패턴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가 오면 문화 향유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겁니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 활성화 폭을 넓히려면 기부나 티켓 구입, 작품 구입 등에 대한 세제혜택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정부 정책에 의지하는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동기부여가 중요하기 때문에 후원자들의 자부심을 추어올려 후원활동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해야 합니다. 물론 저 같은 경영자들이 먼저 나서서 바뀌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잘 쓰는 모범이 되려다 보니 이렇게 바쁘네요.”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하려는 그의 차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이 흘러나왔다. 좌석에 놓인 책은 댄 브라운의 ‘오리진’. “건설 일을 오래 해 그런가 성질이 급해서 늘 음악을 곁에 둡니다. ‘오리진’은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가느냐를 고민하게 하는 책인데요. 아, 무엇이 인간이냐는 질문 끝에 또한 ‘예술’이 있습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송은석기자

김희근 회장 약력

△1946년 진주 △1964년 경기고 졸업 △1969년 마이애미주립대 경영학 수료 △1973년 한양대 공업경영학 학사 △1986년 한국건업 사장 △1993년 벽산건설 대표이사 △1996년~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2009~2017년 한국페스티발앙상블 이사장 △2010년 벽산문화재단 설립 △2010~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상임위원 △2010~2016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 △2011~2014년 광주비엔날레 이사 △2012년 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 △2013년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 △2014년 세종솔로이스츠 이사장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나무포럼 회장 △2017년 현대미술관회 회장 △2018년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