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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바나나공화국

‘마지막 잎새’로 잘 알려진 미국작가 오 헨리는 원래 은행원이었다. 문학에 소질이 있던 그는 은행을 다니면서 주간지 롤링스톤을 창간했다. 초기에 잡지 판매가 잘되는가 싶더니 이내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국 사업을 접고 말았다. 더욱이 횡령 혐의로 고소까지 당해 철장 신세를 지게 된다. 다행히 장인이 대신 낸 보석금으로 풀려난 그는 1896년 남미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로 도피해 반년 정도 살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헨리는 당시 온두라스에서 보고 겪은 경험을 토대로 1904년 ‘양배추와 왕들(Cabbages and Kings)’이라는 소설을 썼다.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가 세상에 나오기 1년 전이다. 양배추는 가난하고 무력한 대중을, 왕들은 소수 기득권층을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그는 부패로 찌든 온두라스를 빗댄 가상국가 ‘바나나공화국’을 창조했다. 밖은 화려한데 안을 들여다보면 썩은 내음이 진동하는 구제불능 상태의 국가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쉽게 썩는 바나나의 속성에 비유했다고 한다. 이후부터 ‘바나나공화국’은 바나나· 커피 등 한두 가지 농산물이나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고 부패와 외세 개입 등으로 정치·사회적 불안이 일상화한 나라를 멸시하는 의미로 쓰인다. 원래 온두라스 등 중남미국가들을 주로 지칭했으나 몇몇 아프리카 나라들로 범위가 넓어졌다. 미국 영화감독 겸 배우 우디 앨런은 1971년 개봉한 코미디물 ‘바나나스(Bananas)’에서 바나나공화국을 풍자하기도 했다.



한동안 잊힌 듯했던 바나나공화국이 세계 정치무대에 ‘스트롱맨’들이 등장하며 다시 회자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자신의 ‘21세기 술탄’ 등극을 위한 개헌투표를 방해한다며 유럽국들을 싸잡아 비난하더니 급기야 네덜란드를 바나나공화국이라고 조롱했다. 네덜란드를 비난할 소재가 없으니 과거의 튤립 광풍을 떠올리며 바나나공화국을 들먹였던 것 같다.

요즘 미국 정가에서도 바나나공화국이 논란이 되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의원 2명을 공금유용 혐의로 기소한 데 대해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을 맹비난하자 공화당 상원의원과 보수계 폭스뉴스가 “미국은 바나나공화국이 아니다”라며 비판했다는 소식이다. 부패를 옹호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군 진영에서 날아든 바나나공화국 공격을 트럼프 대통령이 또 어떻게 받아칠지 궁금한 대목이다./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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