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시세보기

서울경제

HOME  >  경제 · 금융  >  정책·세금

‘정치적 목적’ 따라 툭하면 면제조항 손실 … 수兆 사업도 검증 패싱

■ 예타 규정 유명무실
KTX 노선 수정 등 포퓰리즘 사업도 예타 피해가
文정부들어 '더 헐겁게' 추진..혈세낭비 우려 커져

  • 빈난새 기자
  • 2018-09-11 17:53:38
  • 정책·세금
‘정치적 목적’ 따라 툭하면 면제조항 손실 … 수兆 사업도 검증 패싱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3월,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바꿔 예비타당성조사 제외 대상에 ‘재난예방사업’과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을 추가했다. 재난예방사업에는 준설·보 건설 작업 등이 포함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 정부가 이렇게 예타 면제 대상을 확대한 것은 2008년 12월 4대강 사업 완공 시기를 2012년에서 2011년으로 1년 앞당기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예타를 생략해 4대강 사업 완공 시점을 앞당기고 자칫 타당성이 낮게 나올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12년까지 5년간 4대강 관련 사업 13개가 예타 면제를 받았다. 총사업비 15조5,691억원이 들어갔지만 사전 검증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감사원에 따르면 4대강 사업의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은 0.21에 불과했다. 통상 이 비율이 1이 넘어야 경제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예비타당성조사는 정부가 나랏돈이 대거 들어가는 재정사업을 새로 할 때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말 그대로 이 사업이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할 만큼 타당한 것인지 사전에 판단하는 절차다. 현재는 국가재정법 제38조에 따라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재정이 300억원 이상 들어가는 신규 사업은 조사 대상이다. 1999년 정부가 공공투자사업 관리를 엄격히 하기 위해 도입했다. 혈세 낭비를 감시하기 위한 제도지만 잇따른 예외 신설과 원칙 없는 제도 손질에 점점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예타 제도도 정책환경 변화에 따라 개정될 수 있다. 문제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뀔 때다. 2009년 정부는 4대강 사업 예타를 면제하려고 시행령을 고쳤다는 비판에 적극 반박했다. “재해예방사업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추진해야 할 최우선적 사업으로 예비타당성조사의 실익이 없는 사업”이라서 제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2014년 예타 제외 대상을 시행령에서 법 규정 사항으로 승격하면서 정부는 ‘재난예방을 위해 시급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의 면제 결정에 대해서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시행령에 새로 만들었다. 당초 재해예방사업의 예타를 면제하면서 스스로 강조한 논리가 약해진 것이다.

예타 면제 대상이 늘어나면서 ‘정부 예산 따먹기’ 식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예타를 피해갈 가능성도 커졌다. 올해 예산에 정부안보다 증액돼 국회를 통과한 호남고속철도 2단계 사업도 한 사례다.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광주송정~목포 KTX의 경로를 변경해 무안공항을 지나도록 하고 이를 위해 총 사업비를 1조1,000억원 추가한 2조4,731억원으로 통과시켰다. 대표적인 ‘표 나눠먹기’지만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이유로 예타는 면제됐다.

예타 ‘패싱’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심각한 문제다. 아동수당의 경우 2017~2021년 13조4,000억원(최초안 기준)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예타 조사는 건너뛰었다. 5년 이상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 계속사업도 마찬가지다. 교육부의 고교 취업연계 장려금 사업은 향후 5년간 재정소요가 6,658억원에 달하지만 예타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와 여당은 예타 검증을 더 헐겁게 하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금을 주는 ‘단순 소득이전 사업’은 예타를 생략하고 SOC 사업 예타 기준도 500억원에서 1,0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단순 소득이전 사업은 2009년부터 예타 대상에서 제외됐다가 2014년 다시 추가된 뒤 이번에 또 개정 대상이 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6년까지 완료된 예타 총 653건 중 통과율은 66.7%였다. 130조원이 넘는 사업비가 절감됐지만 면제 대상만 넓어지고 있다. 예산 낭비를 막는다는 예타의 본래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재정분야 전문가는 “타당성 검토 없이 무리하게 추진하면 수요·경제성이 없는 사업에도 재정이 투입될 수 있다”며 “일단 사업에 들어가면 ‘타당성 없다’는 이유로 중도에 사업을 취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전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시선집중

ad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