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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10년 끝나지 않은 금융위기<하>]"10년전엔 넉넉한 재정·금리 쿠션 있어 극복...다시 위기 땐 탈출 쉽지 않아"

-최전선서 소방수 역할 전광우 前금융위원장 인터뷰

지금은 저금리·미일 스와프 해지...여건 더 나빠

부처간 유기적 협력·총체적 대응시스템 갖춰야

개혁 미루고 정책 일관성 잃어 경제 만성질환

과감한 혁신으로 '기업 활동·성장' 촉진 필요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권욱기자




“10년 전 넉넉한 재정에다 금리·통화 쿠션(안전판) 덕에 강력한 위기대응전략을 실행했지만 지금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이 지난 10일 글로벌 금융위기 10주년을 맞아 서울 중학동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2008년 3월 초대 금융위원장에 올라 9월15일 세계 4위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며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최전선에서 소방수 역할을 맡았다.

최근 터키와 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의 경제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1998년, 2008년에 이어 올해 금융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는 ‘10년 주기설’이 나돌고 있다. 한국 역시 당장 눈에 보이는 외환보유액이나 국가부채 등 지표들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쇼크를 넘어 참사 수준에 이른 고용 상황과 조선과 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위기, 성장세 둔화 등으로 경기 하강이 뚜렷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발한다면 한국은 10년 전처럼 빠르게 탈출할 수 있을까. 전 전 위원장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무게를 실은 것이다.

10년 전인 2008년 8월 기준금리는 5.25%였다. 그러나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자 한은은 10월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한 번에 1%포인트 낮췄다. 이어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내리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2%까지 떨어뜨렸다. 단 6개월 만에 기준금리가 3.25%포인트나 인하되며 시중에 돈이 풀렸고 경기를 지탱했다. 미국·일본과 맺은 통화 스와프는 한국이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다시 겪지 않으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시장에 퍼뜨리며 공포를 누그러뜨렸다. 주요20개국(G20)을 중심으로 한 한발 빠른 국제공조 역시 당시 위기 극복의 열쇠였다.

이런 대응전략으로 말미암아 한국은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부터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서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 가장 빠른 회복을 자랑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 조기 탈출의 원동력이었던 핵심 정책수단이 부족하다는 게 전 전 위원장의 판단이다.

전 전 위원장은 “장기 저금리로 금리 인하 카드를 쓸 수도 없는데 달러와 엔화 스와프도 없는 상황”이라며 “어느 나라건 디레버리징(부채 정리)에 실패해 상황이 어려운데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자협력에 관심이 없고 10년 전 위기 극복의 버팀목이었던 중국은 오히려 리스크 요인이라 위기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1.5%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 이미 두 번에 걸쳐 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두 번 더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1.75~2.0%에서 최고 2.5%까지 올릴 수 있다는 얘긴데 이 경우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는 1%포인트까지 벌어진다. 1bp(0.01%포인트)의 금리 차에도 세계 유동성이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에 들어온 글로벌 자금이 이탈해 대거 미국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도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지만 2·4분기 말 가계부채(가계신용)가 1,493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자칫 전 국민을 이자 부담으로 몰아넣어 가뜩이나 얼어붙은 내수 경기를 더욱 냉각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올리지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상황인 셈이다. 전 전 위원장은 “현재는 금리라는 툴(도구)을 사용할 여지가 없는데 위기상황에 대처할 여지를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전 위원장은 통화 역시 안심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8월 말 외환보유액은 4,011억달러로 2008년 말(2,012억달러)의 두 배에 이를 정도로 대외건전성은 양호한 수준이다. 그러나 한 번 우기가 몰려오면 썰물처럼 외화가 빠져나갈 수 있는 만큼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화 안전판으로 여기는 통화 스와프 대상국가에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가진 미국과 그에 버금가는 일본이 빠져 있는 점도 아쉽다. 전 전 위원장은 “캐나다와 중국·스위스 등과의 스와프로 지평은 넓혔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기축통화가 없는 만큼 미일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공조가 가능할지도 불분명하다. 전 전 위원장은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으며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협력이나 자유무역협정(FTA)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만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대외 리스크가 커진다 하더라도 국내 경제 기반이 탄탄하다면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상황은 더 악화했다.



“10년 전 위기가 급성질환이었다면 지금은 치유 경험 없는 구조적 만성질환입니다.”

그는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을 눈여겨봤다. 잠재성장률은 자본·노동 등 생산요소를 최대한 투입해 추가 물가 상승 없이 달성 가능한 성장률을 말한다. 나라의 온전한 기초체력인 셈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4.8~5.2%에서 2006~2010년 3.7~3.9%, 2011~2015년 3.0~3.4%, 2016~2020년 2.8~2.9%로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성장동력이 자꾸만 쇠퇴한다는 얘기다.

이유는 구조개혁을 차일피일 미뤄오면서 경제성장을 이루는 투자와 노동· 기술혁신 등 3요소 어느 하나 기댈 곳이 없어져서다. 전 전 위원장은 “자본은 설비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고 노동 경직성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엔진이 될 만한 첨단산업의 기술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소득주도 성장만을 앞세워 혁신성장은 여전히 공전한다는 게 전 전 위원장의 판단이다. 그는 “10년 전 미국 경제를 두고 녹아내린다는 뜻의 ‘멜팅 다운’이라는 표현까지 나왔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기업 활동과 성장을 촉진하는 바람직한 정책적 조합이 시너지를 낸 결과이자 리먼 사태의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하루빨리 시장과 기업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난기류를 만나면 비행기도 항로를 바꾸듯 경제 정책도 상황에 맞게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결국 이런 안팎의 위기 요인을 잠재우고 경제의 활력을 되찾을 길은 성장성 회복이다. 전 전 위원장은 “근본적인 개혁과 시스템 업그레이드로 잠재성장률 하락을 돌파해야 한다”며 “구조개혁·산업·규제·노동 등 경제 전체가 체질을 개선하고 체력을 강화하는 과감한 혁신 모멘텀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기가 닥쳐온다면 시스템 면에서는 10년 전 강력한 초동대응으로 위기에 대응했듯 과감하고 선제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그는 “위기에는 부처 간 유기적 협력으로 정책을 조합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총체적 위기대응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 무리한 과잉대응은 금물이다. 그는 10년 전을 예로 들었다. 전 전 위원장은 “당시 영국과 싱가포르처럼 예금보장한도를 높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그러나 뱅크런(예금 인출 사태) 상황도 아닌데 주가마저 대폭락하는 시기에 자본시장을 더 위축시키는 신호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판단해 반대했고 이를 관철했다”고 말했다. 신속하고 충분·과감한 대응은 좋지만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은 경제 정책 대응은 앞뒤를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초대 금융위원장을 지낸 그는 경제위기를 버텨낼 또 다른 수단으로 경제의 심장과 혈맥인 금융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전 전 위원장은 “우리 금융 경쟁력이 우간다 수준이라는 말은 과장된 측면이 많지만 제조업 경쟁력과 비교하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 산업이 허약한 이유로는 합리적이지 못한 규제를 꼽았다. 그는 “적절하고 바람직한 규제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더 많은 규제를 지향하기보다는 더 좋은 규제를 만드는 것이 금융 당국이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금융 산업 경쟁력을 키우려면 일관성 결여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 전 위원장은 이어 “외국인 투자가들도 항상 예측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며 “환경 변화에 따라 규제를 신축적이고 유연하게 가져가는 것은 좋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아예 다른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대담=이철균 경제부장 fusioncj@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정리=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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