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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보여주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송영규 논설위원

50%선 무너진 대통령 지지율은

존재 이유 스스로 증명 못한 탓

이제 남은 시간 겨우 2년여 뿐

꼭 성과 낸다는 처절함 가져야





제주도 유명 관광지 용두암 옆에 위치한 제주대 부설 중학교와 고등학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네모 반듯한 모양의 평범한 건축물이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지난 1964년 이후 30년 넘게 이 자리의 주인은 한국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제주대 용담캠퍼스 본관 건물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건축가 고(故) 김중업이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마치 호화여객선이 바로 앞 출렁이는 바다를 헤치고 드넓은 대양으로 나가는 느낌을 주는 걸작이었다. 하지만 요즘 제주에 이런 건축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철거돼 사라진 지 22년이나 지난 탓이다. 한국 건축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그렇게 시대의 걸작을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지워버렸다.

보여주지 않는 것은 힘이 없다.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아리스타르코스가 제기했던 지동설이 2,000년 가까이 힘을 얻지 못한 것도, 고분군이 발견되기 전까지 1,500년간 가야 문명이 잠들어 있었던 것도 존재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보다 안전하고 나은 삶을 보여주지 못한 권력은 항상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자신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과거 정권이 원인을 제공했더라도 현재의 삶이 고단하다면 모든 책임은 현재 권력에 귀결된다. 대통령이 되고 여당이 되는 것은 모든 짐을 기꺼이 짊어지겠다는 약속과 다르지 않다. 그럴 수 없다면 김중업의 걸작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지듯이 권력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주 사상 처음 50% 밑으로 내려갔다. 7월 초 70%를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달 만에 22%포인트나 급락했다.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7월까지만 해도 생활 수준 중하 이하 계층의 지지율은 70%를 웃돌았다. 두 달이 지난 지금 이들의 지지율은 45% 수준이다. 이전에는 자영업자 10명 중 6명 이상이 ‘잘하고 있다’며 박수를 쳤지만 이제 고개를 내젓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문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약자들의 이탈이다.

보여줌이 없었다. ‘일자리가 마련된 정부’라는 다짐은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남은 것은 1년 전 30만명이 넘었던 취업자 수가 100분의1로 줄었다는 초라한 성적표다. 주거 문제를 해소하겠다고는 했지만 서민들은 집값 급등 속에 내 집 마련의 꿈이 사라지는 것만 바라볼 뿐이다. 빈곤 탈출과 교육 개선을 내세웠지만 소득 불평등은 더 커졌고 교육현장은 혼란만 커졌다. 약속은 감동적이었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절박함도 없다. 정부는 기다려 달라고 한다.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이기 때문에 고통이 수반된다”고도 했다. 잠시 어려움은 있겠지만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산업화 시대 정부는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들도 다 잘살게 되니 참고 견디라고 했다. 일단 파이를 키우고 나중에 나누자고 했다. 파이가 커졌고 절대적 생활 수준도 높아졌다. 하지만 상대적인 박탈감 역시 더 커졌다. 그렇게 40년 넘게 참고 견딘 국민들에게 또 참으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나고 있다. 5년 차에 접어들면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문재인 정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시간이 2년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제는 보여줘야 한다. 편안한 내 집에서 일자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이 현실이 돼야 한다. 정책 방향이 올바르다고 말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현실 속에서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1층에는 1,003개의 브라운관 TV로 만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뛰어난 영상미를 구현하며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았지만 고장이 나 흉물처럼 변했다. 국민들의 기대를 안고 출발했던 문재인 정부가 관람객들로부터 외면받는 백남준 작품의 전철처럼 되는 것은 국가에도 국민에게도 비극이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더 처절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출발은 화려했지만 결말이 초라했던 경험은 과거로 족하다.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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