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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鏡止水] 三笑

월호스님·조계종 행불선원 선원장

삭발·풀먹인 옷입기·국수먹기

스님을 세 번 웃게하는 '소확행'

근심·걱정 관찰하는 단계 넘어

밝은 모습 그리면 웃을 수 있어





스님들이 잘 쓰는 말 가운데 ‘삼소(三笑)’라는 말이 있다. 세 번 웃는다는 뜻이다. 무엇 때문에 웃을까. 첫째는 삭발의 즐거움이다. 삭발하는 날 면도기로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잘라내고 나면 일시나마 번뇌를 모두 제거한 기분이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둘째는 삭발 후 풀 먹인 옷을 입는 기분이 또한 그만이다. 옷을 빨고 말려 새로 풀을 먹이고 반듯하게 다려 입으면 마음 또한 정갈하고 반듯해진 느낌이 든다. 걸어갈 때 옷감에서 나는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정겹기 짝이 없다. 셋째는 국수 먹는 기쁨이다. 절에서 국수는 별식이다. 매일 ‘그 나물에 그 밥’만 먹다가 일주일 혹은 열흘에 한 번씩 먹는 국수는 별미가 아닐 수 없다. 필자도 출가 전에는 국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출가하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수 싫어하는 스님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쓰는 즐거움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원고 요청에 응해 밤늦게나 새벽 일찍 글을 쓰고 다음 날 다시 읽어보며 스스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거 정말 내가 쓴 거 맞나’ 혹은 ‘내가 썼지만 정말 잘 썼구먼’ 하면서 자화자찬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구기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면서도 즐겁기 짝이 없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쓰고 있으니 ‘소확행’이 확실하다. 또 방송이나 강의를 하면서 종종 구체적인 감사 인사를 받는 것도 참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불교에 대해 막연했는데 제대로 알게 됐다’거나 ‘자못 부정적이던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또는 ‘인생이 바뀌었다’는 등의 인사를 받으면 기쁘다 못해 뿌듯하기까지 한 것이다.

사실 수행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숨 쉬면서 느낄 수 있는 행복도 일종의 소확행이 아닐까 싶다. 특히 ‘숨 보기’ 수행은 살아서 숨을 쉴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고 죽으면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생명의 환희까지도 느낄 수 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입은 다물고 코로 숨을 쉬면서 마음을 코 밑에 집중한다. 숨을 들이쉴 때 ‘들이쉰다’, 내쉴 때 ‘내쉰다’고 마음속으로 염해주면 된다. 꾸준히 하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짐과 함께 생명의 약동을 느낄 수 있다.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도 누구나 언제나 할 수 있는 소확행이다. 일단 불안·초조·우울증 같은 증세를 완화시키거나 없애주는 대증요법(對症療法)이 있고 나아가 그 근본 원인을 찾아내 치유하는 근원치유(根源治癒)가 있다. 이른바 마음의 대증요법은 ‘대면관찰’이며 근원치유는 ‘반야바라밀’이다. 대면관찰로 무아(無我)를 맛봄으로써 마음의 세 가지 독(毒)인 탐·진·치와 근심 걱정에서 분리된다. 그리고 반야바라밀을 통해 무아를 넘어선 대아(大我)로 나아가 자신은 물론 다른 이의 밝은 미래를 그리고 창조한다.

예컨대 근심 걱정이 일어난다고 하자. 일단 닉네임을 붙여 대면해 관찰한다. ‘달마가 근심 걱정하고 있구나’ 하고 관찰한다. 이럴 때 근심 걱정하는 것은 달마다. 정작 나는 달마가 근심 걱정함을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관찰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근심 걱정은 실체가 없다. 또 닉네임인 달마도 실체가 없다. 결국 근심 걱정하는 ‘나’는 실체가 없는 것이다. 다만 관찰자가 있을 뿐. 이것이 모든 고통에서 분리되는 방법이다.

이제는 현재의 몸과 마음을 대면관찰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원하는 몸과 마음을 그리도록 하자. 예컨대 몸이 아프면 건강한 몸을 그리도록 한다. ‘달마가 병고 쾌차하여 몸이 건강해지는구나.’ 이와 같은 방법으로 몸의 불편한 부위가 편해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것도 좋다. 또 주위 사람들에게 무언가 베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달마가 기분 좋게 베풀고 있구나’ 하면 마음이 충만해진다. 화가 날 때 단순히 ‘달마가 화를 내고 있구나’ 하고 관찰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달마가 화에서 벗어나 포대화상처럼 자비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구나’라고 마음의 그림을 그린다. 우울증에 빠진 경우 ‘달마가 마음이 기뻐져 환하게 웃고 있구나’라고 우울증에서 벗어나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다 보면 실제로 마음이 즐거워진다.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웃을 일이 생겨서 웃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먼저 웃음으로써 웃을 일이 생기게 하는 것은 주인공만 할 수 있다. 우~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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