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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민주주의에 대한 좌파의 위협

배넌의 발언기회 원천봉쇄 등

우파인사 초청연설 잇단 취소

반대파에 대한 방해 일상화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도박일뿐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파리드 자카리아




벌써 몇년째 학자들은 세계가 ‘민주주의 불경기’를 겪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들에 따르면 민주체제를 향해 나아가던 국가들의 움직임이 둔화됐거나 멈춰 섰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역방향으로의 반전이 이뤄졌다.

학자들은 선진 산업국의 경우에도 민주주의가 빈 껍질만 남긴 채 고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도널드 트럼프에 관한 우려가 고개를 드는 것은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 그는 법관들과 자유언론은 물론 자신이 이끄는 행정부 조직의 일부인 법무부까지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적 규범의 핵심이 침식되는 우려스러러운 사태는 좌파 쪽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논란이 많은 우파 인사들에게 그들의 견해를 피력할 기회와 장소를 내주지 않으려는 좌파의 아우성은 일상적인 일이 돼버렸다.

대학들은 콘돌리자 라이스와 찰스 머레이 같은 초청연사의 연설을 취소했다. 다른 캠퍼스들도 대규모 시위를 우려해 보수적 초청인사의 연설을 꺼리거나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다.

나와의 CNN 대담을 비롯해 최근 몇 달간 방송과 신문 인터뷰에 자주 등장했던 스티브 배넌도 이와 유사한 잡음에 휘말렸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행정부를 떠난 후 유명무실한 인사가 된 배넌에게 계속 발언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궁극적으로 영리사업체인 언론은 그에 대한 대중적 무관심을 알아채고 아예 초청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이코노미스트·파이낸셜타임스·60 미니츠·뉴요커 등 최근 들어 배넌과의 인터뷰를 추진했던 언론사 관계자들은 그가 지적이며 영향력 있는 이념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배넌은 뉴라이트가 활용할 가장 큰 미디어 플랫폼을 구축했고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 트럼프의 성공적인 대선 캠페인을 지휘했으며 서방세계 전역에서 기세를 올리는 대중주의(populism)를 설명하고 활성화하는 데 이바지한 인물이다.

아마도 조만간 사그라질 반짝 유명세(15 minutes of fame)를 타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현 상황에서 그는 분명히 크게 주목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좌파에 속한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배넌이 따분하고 일반의 관심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재미없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다. 많은 사람에게 그의 아이디어가 매혹적이고 설득력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것이 두려워서다.

이를 막기 위해 그의 방해자들이 들고 나온 해법은 발언기회의 원천봉쇄다. 배넌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힐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그의 아이디어가 사라지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배넌과 우파에 속한 다른 인사들을 억누르려 드는 과정에서 진보주의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고에 재갈을 물리려던 공산주의 국가들의 시도가 성공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진보주의자들은 그들이 지닌 이념의 기원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의 허다한 정부들이 서책을 금지하고 해설을 검열하며 개인적 믿음을 이유로 숱한 시민들을 투옥하는 등의 억압적인 행태를 보이던 1859년,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명저인 ‘자유론(On Liberty)’에서 정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설파했다. 그는 “우세한 견해와 감정의 폭압으로부터의 자유-스스로의 아이디어와 관습을 반대파에게 강요하려 드는 사회적 성향으로부터의 자유” 또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방대법원의 올리버 웬덜 홈스 대법관이 후일 “우리가 혐오하는 사고를 할 수 있는 자유”라고 일컬은 자유언론의 고전적 방어체계가 현재 미국에서, 그것도 좌파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반세기 전 학생들은 그들의 생각에 모욕적이라 여겨지는 연사들의 견해를 차단했다.

컴퓨터 혁명의 아버지로 통하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과학자 윌리엄 쇼클리는 1974년 토론회에 참석해달라는 예일대 학생들의 초청을 받았다.

인종평등회의의 흑인 지도자인 로이 이니스를 상대로 “흑인들은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종으로 자발적으로 거세돼야 한다”는 그의 혐오스러운 견해를 주제 삼아 공방을 벌이는 자리였다(토론은 이니스가 제안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캠퍼스에 소란이 발생하면서 토론회는 취소됐다. 후에 이니스가 아닌 다른 상대가 참여하는 토론회 일정이 잡혔으나 이마저 학생들의 방해로 중단됐다.

오늘날과의 차이점은 예일대의 경우 쇼클리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지 못한 실수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예일대는 당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 보고서는 토론과 반대를 장려하는 대학의 의무를 천명한 이정표적 선언으로 남아 있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어떤 대학도 우정과 연대, 화합, 예의바름, 상호존경 등을 토론의 일차적이고 지배적인 가치로 만들어선 안 되며…이들을 중심 목적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정확한 이유는 그것이 새롭고 도발적이며 충격적이고 비정통적인 사람들에게 그들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포럼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자유로운 표현의 결과가 그 당시에는 불쾌하게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유익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1차 수정헌법조항이 그렇듯이 위험을 감수한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기초인 사상·믿음·표현과 행동의 자유에 거는 장기적인 도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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