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멜로 퀸’ 손예진(36·사진)은 근래 수년간 새로운 장르에 한눈을 파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배에 올라타고 노략질을 하기도 했고(‘해적-바다로 간 산적’), 불륜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딸을 죽음으로 내몬 남편을 피도 눈물도 없이 응징하기도 했다(‘비밀은 없다’). 그랬던 손예진이 이번에는 인질범과 위험천만한 대치를 하며 협상을 이어가는 경찰관 하채윤으로 돌아왔다. 손예진이 데뷔 후 처음으로 현빈과 호흡을 맞춘 ‘협상’(이종석 감독)은 극장가의 대목인 추석 시즌 ‘안시성’ ‘명당’ ‘물괴’ 등과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인다.
영화 ‘협상’의 19일 개봉에 앞서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예진은 “명절에 가족들과 함께 감상하면 두 시간 동안 지루할 틈 없이 장르적 쾌감을 만끽할 수 있을 만한 범죄오락물”이라며 한가위 연휴 관람을 적극 권했다. 그러면서 “완성된 작품을 보니 시나리오에도 담겨 있던 긴박감과 몰입감이 생각 이상으로 잘 표현됐더라”고 덧붙였다.
영화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 소속의 하채윤 경위는 태국 방콕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한국인 기자와 자신의 상관을 납치한 인질범 민태구(현빈 분)와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전까지 단 한 차례도 마주하지 않고 모니터를 통해서만 협상을 위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한다. 충무로에서 이렇게 전면적인 ‘이원 촬영’을 시도한 작품은 ‘협상’이 처음이다. “저는 세트장 2층에, 현빈 씨는 지하에 마련된 공간에서 상대의 모습이 담긴 모니터를 보며 연기했어요. 별도의 리허설 없이 카메라 여러 대를 동시에 돌려놓고 마치 연극처럼 하나의 시퀀스를 중단하지 않고 일단 연기한 뒤 촬영분을 보면서 세밀한 부분을 잡아가는 방식으로 찍었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모험적이고 낯선 시도였는데 다행히 날 것 그대로의 긴장감이 잘 살아난 것 같아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손예진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연기하는 ‘이원 촬영’ 방식을 접하면서 대사의 중요성을 새삼 깨우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사실 그동안 저는 대사보다 배우의 아우라와 눈빛으로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걸 좋아하는 배우였다”며 “이번 작품에서 연기한 캐릭터의 직업이 협상가일 뿐 아니라 상대 배우와 직접 마주하지 않고 모니터를 사이에 둔 채 대화만으로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대사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고 털어놓았다. “저는 하채윤이 누구보다 훌륭한 사명감을 가진 경찰이지만 인질범의 동기와 개인사를 하나씩 알게 되면서 서서히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딜레마에 빠지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경찰관을 연기하면서 가볍기만 한 말투를 쓰면 사실성이 떨어질 것 같고, 반대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경찰관의 모습으로만 표현하면 재미가 없을 거 같아 그 중간 지점을 적절히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지난 2001년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데뷔한 손예진의 연기 인생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됐던 작품 중 하나는 ‘클래식(2003년)’이다. 이 영화를 통해 손예진은 청순하고 풋풋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며 ‘국민 첫사랑’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당시 ‘클래식’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조승우와 조인성이 공교롭게도 이번 추석 시즌에 개봉하는 라이벌 작품의 주연 배우로 나온다. 조인성은 당나라에 맞선 고구려의 항전을 그린 사극 ‘안시성’을, 조승우는 땅의 기운과 인간의 운명에 관한 작품 ‘명당’을 들고 손예진의 ‘협상’과 대결을 벌인다. “15년 전 ‘클래식’을 함께 찍었던 두 배우의 영화가 하필 우리 작품과 같은 날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신기한 우연이라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잘 성장했구나’ 싶기도 했어요. 추석 연휴가 기니까 관객들이 세 작품을 모두 관람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요. (웃음)”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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