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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진칼럼]'미스터 션샤인④' 글로리, 글로리 오직 Glory만…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이 뿌리내린 시간이자 불신이 만연했다.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을 품은 봄이면서 절망에 눌린 겨울이었다. 무엇이든 펼쳐진 듯 하면서도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천국으로 직행하고자 했지만 지옥으로도 향하고 있었다.

-찰스 디킨슨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 中-

서양의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대였다. 가베와 정장이 모단걸과 모단보이를 만들고, 삐루 한병에 세상 모든 폼을 다 잡던 세상이었다. 비가 와도 밤에 불이 켜지고 쇳덩어리가 사람을 실어나르는 요지경 세상이었다.

생각하지 않으면 나쁠 것이 없었다. 조선이든 일본이든 ‘국가’라는 것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야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부르던 이방원이 고려의 정몽주를 죽이고 조선의 왕이 된다 해서 백성들의 삶이 바뀌었던가.

그래도 조선은 참으로 꾸준했다. 임진년 의병의 자식들이 을미년에 의병이 됐고, 그 자식들이 또 의병이 됐고, 그 자식들은 독립군이 됐다. 수를 놓던 여인의 손에 총이 들리고, 양반과 상민 천민 할 것 없이 나라를 지키겠다며 모였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이름 한줄이면 된다는.



일본이 야욕의 송곳니를 완전히 드러낸 1907년, 오얏꽃에 내리쬔 봄날의 햇살처럼 찬란했던 이들의 영광도 결말을 맺을 때가 다가왔다. 건(Gun), 글로리(Glory), 새드엔딩(sad ending). 역사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만큼 모두가 꿈꾸는 결말을 맞을 수는 없다. 다만 그 ‘영광’만은 분명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겠지.

고애신은 ‘조선’이다. 연약하고 가냘프지만, 지치지 않는 힘과 강인한 정신을 지닌. 오천년 역사에 수많은 외침을 견뎌온 우리네 모두의 꿋꿋한 삶이다. 조국을 버린 이들도, 천하다 멸시받은 이들도, 침략자에 더 이상 내 것을 빼앗기기 싫은 이들 모두 그녀를 지키기 위해 나를 내던졌다.



유진 초이(이병헌), 구동매(유연석), 김희성(변요한) 세 남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지켜왔다. 총과 배경으로, 칼과 힘으로, 펜과 용기로. 저마다 때론 질투하기도 했으나 이들은 끝내 같은 자리에 섰다. 내 모든 생을 다 쓰겠다고. 살아만 있게 해주시면 나는 듯 가겠다고.

긴 여정이 마무리되고 이제 최후가 다가오고 있다. 유진 초이는 배경을 잃었다. 구동매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쫓기고 있다. 김희성은 글의 힘을 넘어서는 현실과 마주했다. 이 싸움의 절정에 다다르기 전 이들은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그녀를 막아섰으나 두번 세번 붙들지 않았다. 낭만이라 해야하나, 운명이라 해야하나. 그들은 새드엔딩을 직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알려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

햇빛 찬란한 제목과 ‘사랑과 투쟁’ 뒤에 ‘미스터 션샤인’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알아달라고, 기억하라고, 아니면 살라고. 어떻게든 살아 또다른 고애신이 되라고. 다시는 무릎 꿇지도, 나를 팔아먹으려는 자들에게 지지 말라고. 이 희생이 무모해지지 말라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이 드라마는 그렇게도 새드엔딩을 말하는 걸까.

삶은 잠깐의 햇살, 그리고 그늘, 그리고 밤이 지나면 다시 해가 떠오르는 법이다. 오얏꽃 흩날리던 날의 찬란한 햇빛은 슬픔이자 또다른 희망을 그렇게 구슬프고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있다.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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