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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술품 유통, 규제대신 지원해야

캐슬린 킴 미국 뉴욕주 변호사·예술법 전문가





‘명품’이 있으면 ‘짝퉁’이 있다. 마찬가지로 명작의 조명 뒤에는 위작의 그림자가 얼씬거린다. 예술작품의 위·변작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나라 미술 시장만의 문제도 아니다. 오죽했으면 토머스 호빙 전 뉴욕메트로폴리탄뮤지엄 관장은 “예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예술품의 약 40%는 위작”이라고까지 했을까.

매년 가을이면 세계 예술시장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뉴욕에서 ‘예술법 콘퍼런스’가 열린다. 미국과 유럽의 예술법 전문가들, 예술시장 관계자들이 모여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교류한다. 전 세계 예술시장의 해묵은 테마가 진위 논쟁이기에 매년 빠지지 않는 주제가 예술품의 진위와 책임 문제다. 하지만 이 고질에 대한 해법으로 그 어떤 정부의 규제나 특별법 제정을 제안하는 이는 없다.

‘이우환 위작 사건’이 있었다. 국가만능주의와 관료주의를 신봉해온 문화체육관광부는 위작을 ‘근절’하겠다며 ‘미술품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안’을 들고 나왔다. 위작 발생원인의 핵심이 “미술품 유통업과 감정업을 (국가가)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첫째, 예술시장은 독점보다 경쟁이 가치다. 규제와 간섭보다는 자율과 책임이다. 법은 예술시장의 상상력을 도무지 좇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앞선 예술시장을 가진 나라들은 감히 국가의 규제와 특별법으로 예술시장을 재단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오히려 뉴욕의 경우 법제의 흐름은 ‘예술작품의 진품성·귀속성·원작자성’에 대해 자유롭고 독립적인 의견 제시가 건전하고 투명한 예술거래의 핵심이라 전제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진위감정가들을 과도한 소송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법률안이 상정됐을 정도다.



둘째, 정부는 위작 관련 처벌 규정이 없다는 것을 들었다. ‘이우환 위작 사건’의 경우 우리 법원은 위작을 진품으로 유통시킨 유통업자와 위작을 그렸고 서명까지 위조한 위작범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죄형법정주의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미 형법에 사기죄·사서명위조죄·사문서위변조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품유통법안’의 형사법적 가치는 전혀 없다. 셋째, 정부는 미술품 유통업자와 감정업자에 대한 등록제 및 신고제를 제안한다. 유통업자와 감정업자의 위법 행위를 막고 소위 ‘나카마’라 불리는 음성시장의 유통업자들을 양성화하겠다는 것이다. 본래 위작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나카마’들이 등록이나 신고를 하고 관리감독을 받으려 나설까. 예술품 컬렉터들 또한 거래와 관련된 개인 정보를 모두 노출해야 하는 국내 유통업자와의 거래 대신에 해외시장을 찾아 나설 것이다. 시장의 실패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넷째, 위작 근절을 위해 정부가 특정 단체나 기관을 가칭 미술품감정연구센터로 지정하겠다는 발상 또한 오만하다. 진위감정은 학문적 연구와 가능성에 대한 ‘의견’의 영역이다. 수십년간 한 작가만을 연구해온 연구자도 해당 작가의 작품에 대한 진위를 단정할 수 없다. 글로벌 예술시장 참여자들은 시장을 신뢰할까, 한국 정부를 신뢰할까.

결론은 뻔하다. ‘미술품유통법안’은 시대를 일탈한 규제만능주의와 관료주의의 ‘짝퉁’에 지나지 않는다. 조용히 철회함이 마땅하다. 대신 국가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스스로 천명한 ‘팔길이 원칙’이다. 간섭 대신 응원하라. 규제 대신 지원하라. 예술은 자유 속에 꽃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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