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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기 맞은 세계 시계박람회…SIHH·바젤월드가 쪼그라든다?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세계 양대 시계 박람회인 바젤월드와 SIHH에서 이탈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시계 브랜드들이 자체 행사를 선호하고 고객들의 박람회 구매력이 축소되는 등 시계 박람회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 이들 박람회를 볼 수 없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바젤월드 박람회장의 상징적 이미지로 꼽히는 열린 원형 천장. 그늘진 모습이 현재 바젤월드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사진=셔터스톡




매년 1분기는 시계 마니아들이 가장 설레는 시기이다. 1월과 3월에 세계적인 시계 박람회인 SIHH와 바젤월드가 열려 내로라하는 시계 브랜드들이 새로운 시계들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신상 시계들의 스펙 정보 사전 공개와 박람회 이후 실물 평가 등이 이 시기에 계속 나오면서 각종 시계 커뮤니티는 1분기 내내 뜨겁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올해는 예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논란이 되어온 주요 시계 브랜드들의 박람회 이탈 이슈가 더 도드라지는 분위기다. ‘신상품이 어느 한 시기에 몰리지 않고 브랜드별로 나뉘어 공개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긍정적 의견도 보이지만, ‘브랜드별 정보를 따로 찾아봐야 하는 불편함이 상당할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나오고 있다.

◆ 스와치그룹 이슈

시계 박람회 축소 우려가 본격화한 건 지난해 초부터였다. 지난해 3월 열린 바젤월드는 2017년 대비 절반 규모인 650여 개 브랜드만이 참가해 충격을 줬다. 하지만 불참한 곳 상당수가 부품업체나 글로벌 인지도가 떨어지는 중저가 브랜드여서 큰 이슈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중국발 이슈로 큰 충격을 받은 스위스 시계업계가 2017년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다는 스위스시계산업협회의 보고서가 비슷한 시기 나와 충격을 덜어준 측면도 있었다.

2018년 7월 시계 박람회 축소 우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닉 하이예크 Nick Hayek 스와치그룹 회장이 2019년부터 그룹 산하 19개 브랜드 전체를 바젤월드에서 철수시킬 것이라 밝혔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시계그룹인 스와치그룹의 바젤월드 철수 선언은 시계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닉 하이예크 회장은 “박람회에선 이제 큰 의미를 찾기 어려워졌다”며 비싼 전시회 비용과 낮은 투자 효율, 주최 측인 MCH의 안일한 운영 등을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 9월에는 세계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오데마 피게와 리차드 밀이 2020년 SIHH 불참을 선언하면서 바젤월드에 이어 SIHH에서도 브랜드 이탈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를 두고 시계업계 일각에선 박람회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계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완성품 시계 브랜드의 경우 박람회 부스 운영에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이 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박람회 기간 리테일 판매로 이 비용을 회수하고도 남았다고 합니다. 지역 유통사 계약 건까지 합하면 연 매출의 절반 이상이 박람회 기간에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요즘엔 효율이 많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시계 브랜드들이 주요 지역마다 지사를 세워 로컬 유통사들의 역할이 많이 줄어들었고 또 그렇게 세워진 지사들이 활동을 늘리면서 박람회 고객 수요를 많이 흡수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사 매장에서 구입하는 걸 선호하는 고객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시장통 같은 박람회보다 지사 매장이 좀 더 안락하고 쾌적한데다 케어도 더 많이 해주니까요. 박람회에선 수많은 고객 중 한 명으로 취급받지만, 로컬 지사에선 한 명 한 명을 모두 VIP급으로 모시니까 대우도 차이가 많이 나죠. 또 영미권 일각에선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본사와 직접 소통하는 고객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박람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고객과 연결되는 거예요. 이런 환경을 고려하면 박람회는 마케팅이나 판매 채널 측면에서 매력을 많이 잃은 것 같습니다.”

◆ 자체 행사 선호

완성품 시계업체들의 판매·마케팅 채널 변화는 수년 전부터 예고됐던 바였다. 단일 브랜드를 운영하는 시계업체는 여전히 지역 유통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스와치그룹이나 리치몬트그룹, LVMH 같은 거대 그룹사는 세계 여러 지역에 지사를 세우고 직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신설된 지사들은 고객과의 소통을 늘리고 기념일을 챙기는 등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함로써 역할을 키워나갔다. 과거 박람회가 했던 고객과 브랜드를 연결하는 역할 상당 부분을 지사가 대체한 셈이다.

최근엔 단일 브랜드나 소규모 브랜드를 운영하는 시계업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늘고 있는 추세다. 리차드 밀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홍콩지사에서 한국 홍보·마케팅을 병행했지만, 최근 한국지사를 따로 두면서 지역 고객 소통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리차드 밀처럼 지사를 두는 대신 소규모 네트워크 행사를 통해 지역 고객과 소통하는 단일 브랜드도 늘고 있다. H.Moser & Cie, Hautelence, HYT 등 이다. 이들 중 글로벌 인지도를 쌓은 브랜드 상당수가 최근 박람회 역할을 줄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정희경 매뉴얼세븐 대표는 말한다. “올해 3월 출시 예정인 MB&F 시계를 SIHH 일주일 전 열린 1월 MB&F 자체 행사(프랑스 파리 개최)에서 먼저 봤습니다. 막스밀리언 부셰 MB&F 대표의 말에 따르면, 박람회에 참가하는 비용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고객과 딜러, 기자를 (소규모 행사를 통해) 직접 만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거예요. 비용도 비슷하고요. 신규 브랜드라면 박람회 참가를 통해 인지도 제고 효과를 노릴 수 있겠지만,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라면 자신이 주최한 소규모 행사를 통해 밀착 소통하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 두 박람회는 구별해야



업계 일각에는 시계 브랜드들의 박람회 이탈이 일시적이거나 바젤월드에 국한돼 일어날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이 같은 주장은 SIHH와 바젤월드 이탈 브랜드 규모가 현격히 차이나는 데 근거하고 있다.

SIHH와 바젤월드는 글로벌 톱2 시계 박람회이면서도 성격이 많이 다르다. SIHH는 고급 시계 브랜드만 참가하는 반면, 바젤월드는 시계 부품사는 물론 저가에서 고가를 아우르는 모든 시계 브랜드와 주얼리 브랜드가 모두 참가한다. 평균적인 참가 브랜드 수도 SIHH는 30여 개가 조금 넘지만, 바젤월드는 부품사 포함 1,000여 개가 훌쩍 넘어갈 정도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두 시계 박람회는 큰 차이를 보인다.

바젤월드는 최근 몇 년간 참가 브랜드 수가 많이 줄었다. 2017년까지만 해도 1,000개가 넘는 업체들이 참가했으나 2018년에는 650여 개로 축소됐다. 하지만 SIHH는 그렇지 않다. 올해는 반 클리프 앤 아펠, 내년엔 오데마 피게와 리차드 밀이 참가하지 않기로 하면서 마치 대단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이야기가 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올해 반 클리프 앤 아펠이 빠졌지만 대신 하이엔드급 브랜드인 보베가 신규 참가하며 그 자리를 메웠다. 내년부턴 오데마 피게와 리차드 밀을 볼 수 없을테지만, 빠른 시일 내 두 브랜드에 상응하는 다른 브랜드가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예상은 최근 몇 년 동안 SIHH에 참가한 브랜드들이 크게 늘었다는 점에 근거한다. 2015년까지 15개 브랜드만 참여했던 SIHH는 2016년 Carre′ des Horlogers 카테고리를 신설하면서 참여 브랜드 수가 24개로 크게 늘어났다. 고전적인 고급 시계 브랜드 외에도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신생 명품 브랜드들의 참가를 허용한 것이다. SIHH는 이후 참가 브랜드가 꾸준히 늘어 2017년 30개를 거쳐 2018년과 올해에는 35개까지 참가 브랜드가 확대됐다. 2017년에는 지라드 페리고와 율리스 나르당, 2018년에는 에르메스, 올해에는 보베 등이 동참하면서 고전적인 고급 시계 브랜드들의 신규 참가도 이어지고 있다. 고급 시계 브랜드들만 참가한다는 특수성 덕분에 지금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2018 바젤월드에 참석한 관람객이 부스 안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해 바젤월드는 참여 브랜드 수가 절반 이하로 급감해 우려를 자아냈다. 사진=셔터스톡


◆ 바젤월드는 대위기

이처럼 SIHH의 미래 전망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바젤월드는 확실히 큰 위기에 직면해있다. 지난해 참가 브랜드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과 최대 고객인 스와치그룹 19개 브랜드가 이탈한 점, 안일한 운영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는 점 등이 위기의 배경이다. 닉 하이예크 스와치그룹 회장은 지난해 7월 이탈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바젤월드 운영에 큰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시계 브랜드들과 바젤월드 주최사인 MCH 간의 갈등은 꽤 골이 깊은 편이다. 2012년 MCH는 5,400억 원을 들여 대대적인 박람회장 확장공사를 진행했는데, 이 비용을 바젤월드에 참가하는 시계 브랜드에 전가시켜 수년째 원성을 듣고 있다. 고작 일주일 남짓 사용하는 박람회 부스 비용이 껑충 뛰자 중소 브랜드들은 바젤월드 참가를 포기하거나 부스를 외진 곳으로 이동·축소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름값이 높은 브랜드들은 고급 이미지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기존 자리와 규모를 유지하며 MCH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시계 브랜드들의 가장 큰 불만은 MCH 측의 안일한 운영이다. 부스 비용이 오른 만큼 운영의 질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바젤월드에 참석했던 한 매체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바젤월드 개막 바로 전날 열리는 프레스 데이에 주최 측 기조 연설을 르네 캄 Ren?Kamm MCH 회장 대신 실비 리터 Sylvie Ritter 총괄 디렉터가 대신했습니다. 해외 기자들 사이에선 르네 캄 회장이 바젤월드는 내팽개치고 아트페어 챙기는 데만 급급하다는 얘기부터 (바젤월드가) 21세기 박람회치곤 운영이 너무 올드하다, 불편하다 같은 얘기까지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MCH 측은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지난해 7월 바젤월드 총괄 디렉터를 실비 리터에서 미셸 로리스-멜리코프 Michel Loris-Melikoff로 교체하며 쇄신에 나섰다. 미셸 로리스-멜리코프 총괄 디렉터는 2019 바젤월드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포맷을 다수 구현할 것이라 약속했다. 하지만 새로운 총괄 디렉터 선임에도 스와치그룹이 2019년 바젤월드 불참을 선언해 바젤월드의 쇄신 약속 빛이 바랬다. 스와치그룹 불참 선언 이후에도 모리스 라크로와, 레이몬드 웨일 같은 굵직한 브랜드 이탈이 잇따르면서 바젤월드는 대위기를 맞고 있다.

◆ 특단의 대책 강구

시계 브랜드들의 자체 행사 선호나 고객들의 박람회 구매력 축소 등 시계 박람회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자 바젤월드와 SIHH도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바젤월드 주최사인 MCH와 SIHH 주최사인 FHH가 협약을 맺고 바젤월드와 SIHH 일정을 조정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동안 두 박람회를 잇달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2020년 SIHH는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제네바에서, 바젤월드는 4월 30일부터 5월 5일까지 바젤에서 개최된다. 1월 SIHH, 3월 바젤월드라는 공식이 깨지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계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5년 동안’이란 기간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시계 업계를 둘러싼 환경 변화가 지속적인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것인지 파악할 유예기간을 둔 것 같으니까요. 스마트워치처럼 과거 시계업계를 송두리째 흔들 것 같았던 이슈도 결국엔 찻잔 속 미풍에 그쳤던 경험이 있잖아요. 5년 동안 이탈 현상이 지속되면 구조적 문제로 파악하고 다른 변화를 줄 것이고,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면 다시 분리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당장 눈여겨 봐야 할 건 다가오는 3월 2019 바젤월드예요. MCH 측이 말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포맷이 ‘시계 브랜드들이 만족할 만큼’ 구현됐는지가 관건이죠. 2020년 회복세로 돌아설지 아니면 더 암울하게 변할지 예상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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