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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행(同行)

박소정 더 트리니티 대표





전시 준비를 위해 최근 춘천의 어느 ‘표구집’에서 기행과 파격의 대명사인 이외수 작가를 만났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나무젓가락과 성냥개비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썼다고 한다. 그리는 것이 너무 좋아 매진한 결과 공모전에서도 꾸준히 입상하게 된다.

하지만 열심히 그릴수록 재료가 빨리 떨어져 경제적으로 견뎌낼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자 소설가의 길을 택한 배경이다. 그는 이후 개성 넘치는 문체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청년을 위해 이야기한 ‘존버정신’은 신조어가 됐고 거침없이 던진 말 한마디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림을 놓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틈틈이 세상과 맞서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는 것은 일종의 수양이었다. 캔버스와 물감 대신 화선지에 젖어 들어가는 ‘먹’을 썼다. 그는 “먹은 액운을 물리치는 주술적 힘도 갖고 있고 인간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다”며 “정신적·영적 에너지를 쏟아부으려고 노력하는데 먹과 붓과 하나가 될 때 무념무상 혼연일체가 된다”고 털어놓았다.

중광 스님과 먹 공부를 한 그는 쉽게 쓰기 힘든 박경수 무형문화재의 닭털로 만든 붓을 쓰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고 했다. “그 붓을 쓰느라 화가 올라 어금니 네 개가 빠질 정도였죠. 붓이 쉽게 말도 안 듣고 8시간 동안 갈아낸 먹이 조류의 깃털에 붙어 화선지에 닿으면 일 획에 동이 났어요.” 그는 재료·도구와 싸우며 ‘합’이라는 것을 터득한다. 이 작가는 ‘일획봉황’이나 ‘일획산수’ 등 한 획으로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서설(瑞雪)이 내린 15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서울예술재단에서 강찬모·이헌정 작가와 함께 ‘동행’이라는 전시회를 연다. 그는 이번에 ‘일획봉황’과 ‘새날’ ‘숲에는 바람’ ‘청심’ 등을 선보인다. 세 사람은 작품관은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여정을 거쳐 예술가의 외길을 걸으며 독보적인 자리에 올랐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문학적 감수성과 현대적으로 번안된 한국화를 출품한 이외수, 침잠된 에너지와 명상성으로 세상의 기원에 대한 지평을 넓히고 있는 강찬모, 넓고 풍부한 조형성만큼이나 거칠 것 없는 창의적인 작가로서의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이헌정은 서로 다른 듯 하나의 길, 동행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시를 기획한 입장에서 세 작가에게 동행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히말라야 작가로 불리는 강 작가는 “동행은 영원하고 무한하며 아름다운 사랑”, 이헌정 작가는 “동행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인데 귀환을 전제로 완성된다”고 각각 답했다. 이외수 작가는 “걸음이 느린 사람과는 같이 갈 수 있어도 목적지가 다른 사람과는 같이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방향과 소통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혔다.

올해는 재물이 많이 따르고 큰 복이 온다는 ‘황금 돼지의 해’이다. 기해년(己亥年)이 모두가 소통하고 동행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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