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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1년]월급 준 근로자 퇴근후 대리운전…기업 생산물량 해외로 돌려

<상>근로자·기업 모두 불만

상용직 초과근로 월 3시간 감소

급여 월 4만3,000원 줄며 '투잡'

제조업체는 인건비 늘어나 울상

"수익 악화…국내에 공장 안 지어"

부서 쪼개고 자회사 설립 편법도

한 빙과업체 공장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빙과업체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성수기를 대비한 비축생산 시기를 앞당기면서 원가 부담 증가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사 A사는 일부 인력을 퇴사 처리해 자회사로 옮기고 있다. 전체인원이 100명을 넘는 이 회사는 1년이라도 주 52시간제 적용을 늦추기 위해 이런 편법을 사용한다. 내년 1월부터 300인 미만 사업장도 주52시간제를 적용 받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1년 늦은 2021년부터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꼼수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A사 사장에게는 필사의 몸부림이다. 일부에선 주 52시간 이상 근무가 불가피한 부서만 별도로 분리하거나 부서 쪼개기도 한다.

주52시간제가 시행된 지 1년. 정부는 ‘저녁이 있는 삶’을 실현하겠다며 밀어 부쳤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누구도 만족 하지 못하는 정책으로 부작용이 쏟아지고 있다.

야근, 특근을 없애며 근로시간 단축으로 얇아진 월급봉투는 근로자들은 투잡, 쓰리잡으로 내몰고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금속가공업체 대표 C씨는 직원 2명이 퇴근 후 대리운전을 하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를챘다. C씨는 “오죽하면 대리운전까지 하겠냐 싶어 따로 얘기는 안 했다”면서 “대리운전으로 잠이 부족해 일하다가 안전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에 따르면 2년 전보다 올해 대리기사 수가 2~3배가량 늘었다. 카카오에서 대리기사를 많이 뽑기도 했지만 야근비를 채우려는 가장들이 투잡으로 대리기사를 택한 것이다. 근로자들에게 주52시간제는 저녁의 미숙련 노동자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지난해 상용직 근로자의 초과근로시간이 월 2.48시간 감소하면서 총 근로시간이 3시간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상용직의 초과급여는 월 4만3,820원 감소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앞으로 주52시간제가 확대 적용될 경우 근로시간 및 급여 감소 폭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급여 감소는 곧바로 노사간 임금협상을 갈등으로 이어진다. 식품업체인 B사는 생산직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든 만큼 임금이나 수당을 올려달라고 요구해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주52시간제 시행 후 생산직을 추가 고용해 전체 인건비가 늘어난 상황에서 노조의 임금·수당 인상 요구에 맞닥뜨리게 돼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물론 주52시간제의 긍적적인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대기업 위주로 정시 퇴근 문화가 확산되면서 불필요한 야근이나 회식 등이 크게 줄었다. 상사 눈치를 보지 않고 칼퇴근한 직장인들이 운동, 학습, 문화생활 등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에 맞춰 집중근무제 등을 시행하면서 업무 효율성도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나 회사의 경우에 근로시간 단축은 누구도 만족하기 힘든 정책이다. 정부가 장시간 근로 관행을 해소한다며 주52시간제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유연성 없는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해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직원을 추가로 뽑아야 해 부담이 커졌다. 경기도에 있는 한 인프라 투자 업체는 생산직 직원이 900명 정도인데 주52시간제 시행 후 50여명을 추가로 채용했다. 24시간 연속 가동해야 하는 설비가 적지 않은데 기존에는 주말에 맞교대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3교대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생산물량을 해외 공장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추가로 인건비를 부담하느니 해외 인전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





성수기에 제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해야 하는 기업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빙과업체의 경우 줄어든 근로시간에 맞추기 위해 비축생산 시기를 앞당기면서 원가 부담이 가중된다. 게다가 근로시간 단축의 보완책으로 거론돼온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은 국회에 가로막혀 있어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빙과업계는 연간 생산물량의 절반가량이 6~8월 3개월간 집중적으로 소비돼 통상 매년 4월부터 빙과류 비축생산에 들어간다. 하지만 지난해 주52시간제 도입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한 빙과업체는 올해부터 비축생산 시기를 4월에서 2월로 두 달 앞당겼다. 이 회사 관계자는 “비축생산 돌입 시기가 빨라져 비축물량 보관 기간이 늘어나면서 냉동창고 가동에 따른 전기료 등 원가 부담이 늘어나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설업계도 비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주52시간제 시행 이후 건설공사의 44%가 공기 연장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주52시간제가 시행된 지난해 7월1일 이전에 계약한 공사는 주 68시간에 맞춰 공사 기간과 공사비를 산정했다”며 “구조적으로 공기 맞추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기업과 근로자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해야 할 근로시간 문제를 국가가 개입해 해결하려다 보니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과거 컨베이어 벨트 생산 시대의 사고 방식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강제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용·김현상·양종곤기자 jy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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