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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초라한 민낯…'주력산업 징비록' 쓰자

日 보복에 韓 경제 허점 드러나

대중기 서플라이체인 무너지고

혁신성장 뿌리 기초과학은 약해

반도체 등 소재는 日에 좌지우지

겹규제에 신산업 진출도 힘들어





일본 정부가 수개월에 걸쳐 치열하게 준비했다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의 수출규제는 한방에 한국 경제의 급소를 찔렀다. 일본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포토레지스트 등 3개 소재의 연간 수입 규모는 1,7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3개 소재가 없으면 45조원의 반도체를 만들지 못한다. 지난 1990년대부터 ‘가마우지 경제(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구조)’라는 비아냥을 들어온 한국 산업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변화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 생태계를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서는 뼈저린 반성과 함께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협력 스크럼을 더 촘촘히 짜야 한다. 여전히 ‘갑을’이라는 틀에 묶여 있는 대·중소기업 관계, 경쟁력 제고보다는 사회공헌에 가까운 협업방식 등은 상생을 넘어 새로운 산업 생태계 구성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특히 기술유출 시비는 유기적 협업을 가로막는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한국의 기업 간 기술협력 순위는 26위에 그쳤다. 기술의 매매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협력은 여전히 초보 수준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산업 생태계 육성 시스템을 주문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정부가 원재료 확보 및 기초과학 지원을 하고, 대기업이 응용기술 단계부터 관여하는 식으로 민관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강소기업을 키워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력산업의 기반이 되는 인재 육성도 시급하다. 물리학·화학 등 기초과학 전공자들은 갈 곳이 없다. 이들을 받아줄 시장이 사라진 탓이다. 갈 곳이 없는 인재는 중국 등 해외로 떠나고 있다. 균형을 잡지 못한 정책은 기업과 산업을 무너뜨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밀어붙인 탈(脫)원전정책은 원전 부품업체들을 하나둘씩 시장에서 사라지게 하고 있다. 5월 원전 핵심부품인 셸(shell)을 만드는 국내 1위 업체 에스에이에스는 수주가 뚝 끊기자 결국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규제에 발목이 잡혀 기업의 신산업 진출이 지지부진하면서 수출 주력산업 리스트는 20년 전과 똑같다. 지배구조 규제 등에 인수합병(M&A) 시도조차 드물다. 이 이사는 “미래 산업에 대한 ‘빅 푸시’를 해야 아랫단부터 윗단까지 산업 전반이 발전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점검, 장기적으로는 부품·소재 산업 육성 등에 나서지 못하면 계속 외풍에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일 보복계기 ‘협업 시스템’ 모순노출...‘생태계 육성안’ 새로 짜야>

<상> 허점 드러난 대중기 상생





반도체 원천기술의 산실로 불리는, 최초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반도체 실험실에서 ICT소재부품연구원들이 연구 중인 반도체 웨이퍼를 검사하고 있다./서울경제DB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모순이 여실히 드러났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구매 약속’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대기업은 경쟁력 없는 제품에 개런티(보장)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1등 제품에 100등 부품을 사용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 지 10년이 흘렀지만 결과는 목표의 절반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오히려 여기저기 허점만 드러내고 있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대기업 경쟁력 제고→성과 공정 배분이 이뤄지는 생태계 조성이라는 목표는 무위에 그치고 있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의 협업이 시혜적 차원의 사회공헌에 가깝다는 시각이 강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수시로 불거졌던 이익공유제 등의 정책 추진 시도는 사회 갈등 속에 산업 경쟁력을 퇴보시키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한 대기업 임원은 “대·중기 상생 프로그램을 통해 산업 생태계를 탄탄하게 만드는 효과를 얻기도 하지만 아직은 많은 부분에서 어려운 기업을 돕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라며 “대기업 입장에서는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해외 업체를 놓아두고 국내 기업에 인센티브를 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국 제조업이 글로벌 자유무역의 우산 아래 형성된 분업구조를 등에 업고 주력산업을 키워온 점도 건강한 산업 생태계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대기업들은 부품·장비·소재 등 축적된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와 관련해서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일본·미국·독일 등의 기업에 의존해왔다. 그 결과 대일 무역적자만도 연간 240억달러(2018년 기준)가 넘는다. 메모리반도체가 초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도 장비 등 후방산업으로의 낙수효과는 20% 수준의 낮은 국산화율 탓에 기대조차 하기 어려웠다. 연간 수십조원 투자에 따른 과실의 대부분이 미국이나 일본 기업의 몫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보호무역주의 득세, 기술패권 다툼 성격을 띤 무역분쟁, 일본의 경제보복 등이 맞물리며 우리의 허약한 산업 체질이 시험대에 올랐다”며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점검, 중장기적으로는 부품·소재 육성 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중기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본다=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나 어긋나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이미 깨져 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들이 기술탈취에만 열을 올린다는 입장이다. 기술자료 요구 및 유출, 특허 공동출원 요구 등은 중소기업이 반발하는 단골메뉴다. 한 업체 대표는 “모 대기업이 특허출원에 공동특허자로 넣어줄 것을 요구했고 거부하면 납품을 받지 않겠다고 해서 대기업이 기여한 바가 전혀 없음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며 “특허 등록 후 대기업은 유사기술을 특허출원하고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갑을’이라는 틀에 가두는 것도 문제다. 중소기업이 피해자로 인식되는 구조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보채면 달래야 한다는 구조가 대·중기 관계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현금살포 복지처럼 자금 지원만 바라는 중소기업에 불만이 많다. 상생 차원에서 개발자금을 지원하면 엉뚱한 곳에 쓰이는 사례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생태계 육성안을 새로 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단순히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식의 대책으로는 기술축적이 쉽지 않은 만큼 연구 단계에서부터 민관의 역할 설정을 더 정교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원재료 확보와 기초연구 지원이 정부의 역할이라면 기초연구에서 응용개발로 넘어가는 단계부터는 대기업과 관련 벤더가 붙어야 한다”며 “특히 산업 지원에 대학의 연구인력이 더 많이 관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같은 경우 삼성 내 연구원들과 연구개발한 기술이 산업 현장에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피드백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플라이체인의 변화 먼저 점검해야=올해 초 현대모비스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 현대·기아자동차 공장으로 수출했던 부품을 유럽(EU) 공장으로 돌렸다. 중국 공장에서 만든 부품에 관세가 붙으면서 현대차의 가격 경쟁력 악화로 미국 현지 영업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선제조치를 내린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미국이 관세를 매긴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디스플레이 오디오가 포함되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관세 폭탄이 수출선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뜻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HP·델·MS·구글·아마존·소니·닌텐도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탈중국을 감행하고 있다. 애플만 해도 중국의 생산기반 중 30%를 동남아로 이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 기업마저 내수 물량을 제외한 생산은 해외로 거점을 옮기는 추세다. 모두 글로벌 공급망에 큰 변화를 동반할 수 있는 요인이다. 기업별로 글로벌 밸류체인에 대한 꼼꼼한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단기 대응에 급급하지 말고 글로벌 무역의 큰 흐름을 주목하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이사는 “미국이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 기업을 전방위로 때리면서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며 “우리 기업이 산업 경쟁력을 바짝 끌어올리지 않으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상훈·김연하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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