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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빌미 저성과자 모욕…직장 내 괴롭힘 도마에

대신證 노조 고용부에 진정 예정

재계 "터질 게 터졌다" 우려 속

위반행위 기준 등 아직 불명확

판례 쌓일때까지는 혼란 불가피

김경자(왼쪽 일곱번째)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김현정(〃 여섯번째)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오병화(〃 여덟번째) 대신증권지부장 등이 25일 대신증권 본사 앞에서 대신증권의 ‘PT 대회’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재현기자




# A은행은 저성과자를 은행 안의 ‘실물자산’ 관리부서로 보낸다. 실물자산의 의미는 본사에 설치된 각종 그림으로, 예술작품의 ‘상태’를 점검하는 부서다. 이 부서에는 저성과자가 몰려 있다 보니 가끔 연수 예정자들이 6개월간 파견돼 ‘부서 혁신’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 B보험사는 오랫동안 각 지점별로 대형 화이트보드에 설계사들의 월실적을 표시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갑자기 보드가 사라졌다. 회사 측이 자칫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급하게 없애버린 것이다.

‘업무 저성과자에 대한 징계·교육’이 직장 내 괴롭힘 도마에 올랐다. 사업주가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행하는 각종 조치가 근로자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면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대신증권 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을 예정이며 재계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노총 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증권업종본부 대신증권지부는 25일 “대신증권 경영진이 상당수 직원을 저성과자로 낙인찍어 명단을 공개하고 영업역량 강화를 위한 프레젠테이션(PT) 대회를 명목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자행하고 있다”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다음주 중으로 진정을 넣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회사 측이 지난 17일 사내 공문을 보내 ‘고객관리와 상품판매 우수사례를 발굴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해 영업역량을 강화하겠다’며 PT 대회 계획과 함께 대상자 125명의 명단을 공개했다고 주장했다. 이 125명의 기준은 공문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각 지점장들이 구두로 “금융 및 서비스 실적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회사 측은 “전 영업직원 423명을 대상으로 하는 PT 대회로 저성과자 교육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문제를 제기하자 대상을 저성과자에서 전 직원으로 확대한 것”이라며 “저성과자의 명단을 공개해 모욕감을 주고 불편한 PT 대회 대상을 전 직원으로 확대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주장했다.



‘저성과자 교육’에 대해 노사의 주장이 엇갈리지만 재계에서는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저성과자의 역량을 신장시키기 위한 교육이나 업무교체는 증권·금융·교육 등 서비스 업계에서 매우 일반적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의 기업여신 실적이 좋지 않으면 지점장이 업무를 수신으로 바꾸거나 보험사의 각 지점별 실적을 공개적으로 표시해놓는 경우 등이다. 또 갑작스럽게 일부 직원을 불러 영업 노하우에 대한 교육을 하면 기준이 공개되지 않더라도 누구나 ‘저성과자 교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저성과자 조치가 직장 내 괴롭힘의 3대 요건인 △직장에서 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회사가 근로자에게 지시)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의도적 무시) △신제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경우 등에 해당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면 업무 저성과자 교육이 꾸준히 논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누차 지적해왔다”며 “‘무엇이 직장 내 괴롭힘인가’라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판례가 누적될 때까지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용자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교육을 시행한 것을 무조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는 없지만 교육이 어떤 식으로 계획되고 진행됐는지는 판단해야 할 듯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고용부의 판단을 노사가 수용하지 않는 경우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76조의 2와 3, 93조는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변경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근로자가 처분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고용부에 진정을 넣을 수는 있지만 과태료 등 정부의 행정권은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 결국 민사소송으로 비화하는 것이다. 경총 관계자는 “판례가 쌓일 때까지 2~3년은 필요한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비가 불거져나오겠느냐”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굉장히 협소하게 해석되고 ‘사측이 마음대로 할 수 있구나’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 않도록 고용부가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재현·유주희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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