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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규제 적고 바이오 R&D역량·혁신 경쟁력 톱수준...글로벌 자금 줄이어

<싱가포르 바이오산업 왜 강한가>

R&D예산 집행 기술응용·사업화에 중점...창업여건 좋아

글로벌 기업에 15년간 법인세 면제·첫 5년 재정지원까지

영리병원·대학, 파격조건 인재영입...신기술 사업화 선도





싱가포르 주요 바이오메디컬 단지. /사진=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


싱가포르 다운타운에 있는 바이오 연구개발(R&D) 단지인 ‘바이오폴리스(Biopolis)는 지난 2000년대 중반 당시 리콴유 총리의 아시아 바이오 허브 계획의 일환으로 건립됐다. 최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찾아가서 보니 로슈·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노바티스·화이자·머크 등 국내외 연구소들이 입주해 있고 바이오 벤처·스타트업도 한 빌딩을 차지하고 있었다. 7개의 빌딩이 5층에서 다리로 연결돼 편하게 오갈 수 있었다.

전자공학 연구단지인 퓨전폴리스(Fusionpolis)도 인근에 있어 융합연구에 안성맞춤이다. 이곳에는 싱가포르 통상산업부 산하 과학기술청(A*STAR)이 있으며 산하 19개 과학기술 연구소가 바이오폴리스와 퓨전폴리스에 들어와 있다. 이들 연구소에서는 70여개국에서 온 6,000여명의 연구원들이 연구에 몰입하고 있었다. 퓨전폴리스를 방문하니 전시관에서 30여가지의 혁신기술 시연을 접할 수 있었다.

알렉산더 레즈하바 A*STAR 싱가포르게놈연구소(GIS) 디렉터는 “바이오 연구의 융합과 협업이 잘된다. 병원도 여기 있고 규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이뤄진다”며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풍부한 연구비를 주고 가까운 곳에 아파트나 자녀 국제학교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는 중국어·말레이어·타밀어와 함께 영어가 공용어이고 문화적 개방성도 높다. 유전체 검사로 질병을 예측하는 서비스도 우리나라는 탈모와 피부노화 등 12개 항목만 가능하지만 이곳은 미국처럼 별다른 제한이 없어 이미 100만명의 유전체 정보를 확보했다.

적도에서 북위 1도에 있는 싱가포르의 위치를 본따 작명한 ‘원-노스 파노라마’ 지역에 있는 바이오폴리스와 퓨전폴리스를 조감도 앞에서 찍은 모습. /사진=고광본선임기자


알렉산더 레즈하바 A*STAR GIS 디렉터가 게놈연구소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고광본선임기자


A*STAR 산하 연구소 연구원이 실험에 열중한 모습. /사진=고광본선임기자


우리나라 바이오 클러스터가 인천 송도, 경기도 판교, 충북 오송, 대구광역시 등으로 흩어져 있는 것에 비해 이곳은 도시국가답게 밀집돼 시너지를 낸다. 연구소도 지카바이러스·뎅기열 등 감염병과 암, 줄기세포, 헬스케어 기기 등을 두루 연구하는데 세계적 수준의 연구장비와 매뉴얼을 잘 갖추고 있었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인 A*STAR는 연 1조3,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집행할 때 응용과 사업화에 R&D의 주안점을 둔다. 정보기술(IT)은 물론 바이오에도 좋은 기술이 있으면 투자하겠다는 글로벌 투자자도 줄을 서 있다. 규제가 적고 정부와 기업, 대학·연구소 간 파트너십이 튼튼해 창업여건이 좋다. 우리나라가 바이오헬스에서 부처마다 정책 수립과 예산 집행이 분산돼 칸막이도 높고 R&D 지원이 논문·특허에 머물러 사업화로 원활히 이어지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A*STAR IME(마이크로전자공학연구소)에 근무하다 창업한 박미경 원바이오메드 대표는 “몇 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창업하려고 했는데 규제가 많아 접었다”며 “한국은 우수한 진단 키트를 개발해도 임신·당뇨 등 일부를 제외하면 실생활에 적용하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 회사는 혈액·소변 등으로 15~20분 내 핵산을 추출하고 25분 안에 20개 이상의 질환을 진단하는 시제품 개발 단계로 최근 5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그는 “A*STAR가 스핀오프를 예전보다 많이 권장한다”며 “저도 IME에서 분사해 조인트랩을 설립할 때 300만싱가포르달러(26억원)를 지원받고 연구실과 장비도 계속 활용하게 해주고 특허도 넘겨받았다”고 설명했다. 쉐리 왕 A*STAR 액셀러레이트 부대표는 “바이오폴리스에 입주하는 바이오벤처가 대거 늘고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에서 창업한 박미경 원바이오메드 대표가 실험실에서 연구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고광본선임기자




과학잡지인 ‘사이언티픽아메리칸’은 지난해 바이오 분야 혁신 경쟁력 평가에서 싱가포르를 미국에 이어 2위로 평가했다. 생산성과 정책·안정성, 교육·인력, 인프라, 지식재산권(IP) 보호, 기업지원이 우수해서다. 우리나라는 바이오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적극 투자하며 나름 성과를 내고 있으나 2009년 15위에서 지난해 26위로 해마다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A*STAR가 15년가량 집중 투자했는데 아직 블록버스터급 기술이 사업화된 게 별로 없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아시아의 바이오 허브로 자리매김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1819년부터 140년간 영국 식민지로 있다가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약 560만명)가 1인당 국민소득이 6만달러 가까이 고성장한 배경에는 해외투자와 인력유치 등 개방성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물류·금융·관광·석유화학 분야의 강국이 됐고 IT에 이어 바이오 허브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어 성과가 속속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이미 바이오헬스의 R&D 역량을 대폭 키우면서 글로벌 업체의 연구시설은 물론 공장까지 대거 유치했다. 실제 바이오폴리스에서 30분가량 달려 싱가포르 서쪽 끝 투아스에 있는 370㏊ 규모의 바이오메디컬파크I·Ⅱ를 가보니 제약·생명기술·의료기술·헬스케어 공장이 즐비했다. 헤어캡, 방진복, 전용 신발로 무장하고 미국 암젠 싱가포르제조공장(ASM)에 들어가니 고정시설의 변형·이동이 가능한 모듈화를 통해 공장 크기를 20%까지 줄여 생산성을 대폭 높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브라이언 브리슨 ASM 제조 부문 책임자는 “세계 환자들에게 공급하는 바이오의약품과 정제물질을 생산한다”며 “공정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어 다품종 소량 생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인 애브비의 바이오 공장 역시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대표적 백신 업체인 GSK도 마찬가지였다. 로슈·노바티스·화이자·MSD 등 글로벌 제약사들도 대거 입주해 있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 측은 “싱가포르는 바이오 기업에 최대 15년간 법인세 면제와 40년간 낮은 법인세율 혜택을 주고 첫 5년간 재정지원도 한다. 물류가 원활한 입지에다 국비로 인력을 교육한 뒤 기업에서 일하도록 지원한다”며 글로벌 바이오·제약사가 대체로 공장·연구시설을 싱가포르에 두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곳의 의료시장은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은 의료비가 저렴하지만 영리병원의 경우 한국에 비해 10배 가까이 비쌀 정도로 높다. 내국 부유층뿐만 아니라 해외 부호를 염두에 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병원 이외 유일한 임상1상 센터를 운영하는 일라이릴리의 로난 켈리 싱가포르 LCCP 연구소장은 “당뇨병이나 암 등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한 후 전 임상을 거쳐 사람에게 적용하는 첫번째 임상연구를 포함해 다수의 연구를 한다”며 “A*STAR와도 실비만 받고 임상연구와 인력교환을 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인건비는 비싸지만 제도·시스템이 효율적이고 규제가 미국과 유사할 정도로 많지 않은데다 데이터를 미국으로 보내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는 바이오 허브로 뜨기 위해 인력 양성과 R&D 사업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마크 오도노후 애브비 디렉터는 “우수 인력을 구하는 데 애로가 없다. 기업과 연구소·대학이 밀집돼 있어 인력교류가 원활해 시너지가 난다”고 전했다. 암젠에서는 학생들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교육 차원에서 현장교육도 하는 모습이었다.

난양공대(NTU)를 방문하니 해외 인재유치와 경쟁문화가 상상을 초월했다. 싱가포르국립대(NUS) 등과 함께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베이스캠프인 이곳은 교수와 박사후연구원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한다. 미국처럼 테뉴어(종신교수)를 주더라도 당근(인센티브)과 채찍(해고)을 모두 쓴다. 매년 100여명의 교수가 손바뀜될 정도다. 수브라 수레시 난양공대 총장은 “생명공학(BT)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R&D 성과를 사업화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대학이 신기술 테스트베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듀크-NUS 의학전문대학원의 패트릭 케이시 수석 부학장이 우수한 의과학자 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고광본선임기자


듀크-NUS 의학전문대학원의 패트릭 케이시 수석부학장은 “미국 듀크대처럼 의사(MD)는 물론 의학박사(phD), 의과학박사(MD-phD) 과정을 운영하는데, 우수한 의과학자를 키우려고 한다”며 “의사들이 임상에서 얻은 특허를 사업화하도록 지원한다”고 힘줘 말했다. 듀크-NUS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은 16개가량이며 기술이전도 10여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제현수 듀크-NUS 교수는 “지역 특성상 감염병 연구가 많은데 좋은 기술이 있으면 미국 벤처캐피털에 투자하라고 한다”며 “이곳의 대학은 미국에 비해서도 봉급이나 연구비, 연구 환경이 낫다고 보는데 논문이나 IP·사업화를 달성하지 못하면 예산을 확 줄인다”고 했다.

조남준 난양공대 재료과학·공학스쿨 교수가 대학의 산학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고광본선임기자


정부 R&D 기획·평가 시스템도 선진적이다. 총리실 산하 국립연구재단(NRF)이 R&D 비용을 집행할 때 여러 기관이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과제 평가도 100% 해외 전문가를 통해 ‘동료평가(Peer Review)’를 한다. 조남준 난양공대 재료과학·공학스쿨 교수는 “정부와 A*STAR, EDB, NRF, 대학 등이 5년마다 비전과 실행방안에 관한 혁신계획을 세워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며 “평가도 해외 전문가로 정성평가를 하고 연구자에게 독립성을 준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가 연간 20조원이 훌쩍 넘는 정부 R&D 예산을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 기업에 지원하면서 6만3,000개가 넘는 과제를 논문·특허 등 정량평가 위주로 선정하고 성공률이 98%에 달하지만 사업화는 별로 안 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싱가포르=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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