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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 문화家산책]잔설 뚫고 꽃 피듯...'생명의 노래' 캔버스에 새기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추천작

'설악산 화가' 김종학 作 'NO.13'

진달래의 강한 생명력 표현

이중섭 '가족' 고난 함께 극복

하인두 '혼불'은 한국인 힘 상징

외출이나 여행을 자제하는 사회 분위기가 어언 한 달 째다. 집에만 있기 갑갑한데, 찾아온 봄은 마음을 들뜨게 하니 자연이 그리운 때다. 재택근무과 개학 연기로 식구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는 가족의 재발견 못지 않게 예상치 못한 갈등도 벌어진다. 답답한 코로나 시대에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자료관리과의 추천작을 소개한다. 예술은 현실을 반영해 탄생하지만, 그것이 다시 현실에 깊은 위안을 되돌려주기도 한다.

김종학 2006년작 ‘No.13’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눈밭 위에 분홍 진달래가 피었다. 폭 290㎝에 달하는 대작을 넓게 가로지르는 분홍의 생명력은 여리지만 강한 역설적 존재다. 설악산에는 종종 눈꽃과 벚꽃이 공존한다. 꽃샘 추위와 함께 찾아온 때늦은 눈도 있고, 철모르고 일찍 터뜨리는 꽃망울도 있어서다. ‘설악산의 화가’라 불리는 원로화가 김종학(83)의 눈에도 그렇게 잔설 뚫고 핀 봄꽃이 기특했던 모양이다. 이파리 없이 파르르 떨면서 눈 밟고 선 저 꽃들이 얼마나 고왔을까. 꽃잎 야들거리는 진달래는 산 중턱 차지한 앙상한 나무보다도 먼저 피어 ‘그래도 봄은 온다’고 온몸으로 외친다. 1979년 가을, 화단과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간 김종학은 자연의 생명력에서 삶의 의지를 배웠다. 서양화지만 한국화의 시점 처리, 민화적 표현법을 접목해 독보적인 자신만의 화풍을 일궜다. 작가는 “색깔을 내기 위해 직접 꽃잎을 따다가 화면에 대보기를 수십 번 반복하면서 색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연에 대한 경이를 진지하게 담은 작품은 막막한 위기 이후의 희망을 꿈꾸게 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 작품에 대해 “설악산 화가답게 산과 꽃을 소재로 자연의 섭리를 장쾌하게 표현했다”면서 “자연이 주는 치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고 평했다. 더불어 이중섭의 ‘가족’을 추천한 윤 관장은 “전쟁이라는 고난의 기간을 겪으면서 가족애를 주제로 그린 은지화”를 통해 “가족은 사랑의 보금자리”임을 강조했다.

이중섭 ‘가족’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1916~1954)은 유복했던 삶이 전쟁으로 피폐해졌을 때 어릴 적 고향 평양에서 본 고구려 고분벽화의 투박한 맛과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떠올렸다. 담뱃갑 속의 은박지를 반듯하게 펴서 예리한 것으로 종이가 뚫리지 않을 만큼만 눌러 윤곽선을 그렸고, 그 위에 물감이나 먹물을 칠해 솜·헝겊으로 문질러 패인 선 안으로 색을 밀어 넣었다. 고려자기에 쓰였던 상감기법, 금속공예의 은입사 기법을 응용한 셈이다. 종이 살 돈이 없던 그는 다방 한구석에 담배를 피워물고 추억을 곱씹으며 연기처럼 날아가버린 가족과 뒹굴던 시절을 은지에 새겼다. 그림 속 소년들은 만족감에 눈을 눈은 한 일(一)자로 지그시 감았다. 몸뚱이가 이리저리 뒤엉킨 구도는 살 부비며 사는 가족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하인두 1988년작 ‘혼불’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하인두(1930~1989)의 ‘혼불’은 색채만으로도 강렬한 울림을 일으킨다. 불화와 민화, 전통 채색화를 자신의 것으로 수용한 하인두는 “막연한 전위나 실험이 아니라 오리지낼리티가 있는 것, 즉 한국 냄새가 짙은 작품을 해야겠다”는 의지를 자주 밝혔고 “재료는 서양의 것을 쓰더라도 내용은 한국의 전통을 여과한 참멋을 담아야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도깨비불의 다른 이름인 ‘혼불’은 사람의 혼을 이루고 있다는 푸른빛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자체가 정신성의 결정체다. 위기와 재난의 시기일 수록 더욱 강하게 힘을 발휘하는 한국인 정신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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