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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버려지는 아이들…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자소서

미혼모 보호한다는 특례법 오히려 '신분노출'

낙태·영아유기 부작용 낳아 사회편견 더 키워

출산·비밀통보제 도입엔 공감대·부작용 공존

"부모·아이 신원 철저히 관리할 제도마련 시급"





영아유기는 형법 제272조에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중범죄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버리고 싶은 엄마는 없겠지만 영아유기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은 미혼모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부실한 탓이 가장 크다. 미혼모에 대한 경제적 지원 못지않게 사회적 편견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정책이 뒤따라야 영아유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해마다 영아유기가 늘고 있는 배경에는 지난 2012년 8월 시행된 입양특례법이 있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아동의 권익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친부모의 출생등록을 의무화했다. 아이를 입양하려면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출생신고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여성들이 자신의 출산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꺼리면서 낙태를 선택하거나 영아를 유기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천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로 결정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는 임신과 출산·산후조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며 “여성이 익명으로 조용히 임신과 출산을 마치고 떠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2,464건이었던 입양은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2년 1,880건으로 줄었다. 입양은 이듬해 922건으로 감소했고 2018년 681건을 기록했다. 반면 인구 1만명당 영아유기는 2012년 4.8명에서 2018년 9.8명으로 급증했다. 지난달 중고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에 아이를 판매한다는 글을 올려 사회적 공분을 자아낸 20대 여성도 입양 절차를 밟던 중 복잡한 규정에 화가 나 순간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입양특례법 시행으로 입양 절차가 까다로워진 만큼 이를 보완할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표적인 제도가 출생통보제와 비밀출산제(보호출산제)다. 출생통보제는 아이의 출생 사실을 부모가 아닌 병원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는 제도다. 미국·독일·영국·호주 등 대다수 선진국에서 시행 중이다. 아이를 낳은 즉시 지방정부에 통보되기 때문에 입양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밀출산제는 영아의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알리는 출생통보제의 단점을 보완하고 영아유기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장치다. 출생통보제만 도입하면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산모가 병원을 기피하고 몰래 아이를 낳아 유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출생통보제와 비밀출산제를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



비밀출산제가 도입되면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임신부는 전문가 상담 등의 엄격한 절차를 거쳐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하고 출생 등록을 할 수 있다. 친부모의 이름·생일·주소 등 개인정보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국가가 관리하기 때문에 이들의 공적 서류에는 자녀를 출생했다는 사실이 기재되지 않는다.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환경에 놓인 부모가 홀로 아이를 출산해 유기하는 것보다 이들에게 익명성을 보장해 아동의 권리를 증진시키자는 취지다.

오창화 전국입양가족연대 대표는 “낙태에 대한 대안은 임신부에 대한 지원과 입양인데 지금은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입양마저 쉽지 않기에 많은 여성들이 영아유기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며 “아이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생명권이라는 점에서 비밀출산제 도입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신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2018년 2월 비밀출산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에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관련 입법이 후순위로 밀리고 20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법안도 폐기됐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비밀출산제 도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여건이 된다면 제도 도입을 적극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밀출산제 도입에 앞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밀출산제의 장점이 많지만 이를 무턱대고 도입했을 경우 부모가 정부를 믿고 아이의 양육을 쉽게 포기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으로 자녀를 출산하기 때문에 자녀가 성장한 뒤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일찍이 비밀출산제를 도입한 유럽에서도 부모에 대한 자녀의 알 권리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비밀출산제에 따라 산모가 가명으로 자녀의 출생을 등록했더라도 자녀가 16세가 되면 친모의 신상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산모가 반드시 동의해야 자녀가 자신의 친모가 누군지 알 수 있도록 까다로운 법규를 적용하고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밀출산제는 아이를 양육할 형편이 되지 않는 부모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지만 부모의 신원을 완전히 익명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동이 자신의 뿌리를 찾을 권리를 박탈하는 제도가 될 수도 있다”며 “정부가 친부모의 신원을 철저하게 관리하다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양측의 동의에 따라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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