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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치는 날 허다한데 누가 물려주겠어요”…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구둣방

구두 대신 캐주얼화·운동화로 트렌드 변화

코로나 재택근무 늘며 직장 유동인구 감소

90년대 1억에 거래…최근 2년새 70곳 줄어

“우리가 마지막 세대…5~10년 뒤 사라질 것”

종로구 삼일대로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는 정연주(61)씨가 손님이 없는 구둣방 안에서 TV를 보고 있다./구아모기자




“지난달은 가게문을 22일 열었는데 5일 밖에 돈을 벌지 못했어요. 이달도 보름간 손에 쥔 게 11만원이 전부입니다.”

서울 종로구 보신각 근처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는 유준철(75)씨는 영업장부를 펼쳐 보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는 하루만 사용해도 교체했던 구두닦이용 천이 보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깨끗한 상태로 도구함에 걸려 있었다. 유씨는 이날 오후 2시가 지나도록 한 명의 손님도 받지 못했다.

시내 곳곳의 주요 길목에 자리잡고 있던 구둣방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정장 대신 편한 캐주얼화를 즐겨입는 패션 트렌드 변화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요 고객층인 직장인들의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보신각 근처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는 유준철(75)씨가 매일 자신의 수입을 기록해온 영업장부./구아모기자


21일 서울시 ‘자치구별 구두수선대 현황’에 따르면 서울시 내 구둣방은 2018년 1,010개에서 2019년 979개, 2020년 940개로 2년 동안 70개가 사라졌다. 유씨가 영업중인 종로구도 같은 기간 60개에서 56개로 줄었다. 종로구에 따르면 이달에만 3곳의 구둣방이 사라질 예정이다.

유씨가 종로에 처음 자리 잡은 1989년에는 종로구 내 구둣방 권리금이 2,2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당시 명동에서 잘 나가는 상권 구둣방의 경우 1억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회사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구둣방의 인기가 높았지만 달라진 패션 트렌드에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종로구 삼일대로에서 23년째 구둣방을 운영하고 있는 정연주(61)씨는 “코로나19로 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줄어드니 더 힘든 것 같다”며 “운이 좋으면 하루에 10만원도 벌지만 최근에는 공치는 날도 수두룩하다”고 밝혔다.

종각역 앞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는 김현기(81)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김씨는 “과거에는 출퇴근과 점심시간은 물론 놀러 갈 때도 구두를 닦으러 왔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구두 자체를 잘 신지 않는다”며 “간혹 신더라도 따로 광을 낼 필요가 없는 구두가 대부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도 1998년 거금 3,000만원을 들여 종각역에 자리를 잡았다.

19일 광화문역 인근의 한 구둣방 앞 보도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구아모기자


수천 만원의 권리금이 오가던 구둣방 시세는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2010년 통과된 서울시 조례 개정안으로 직계가족 외에는 양도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도로점용료와 시설이용료 등 연 150만원에 달하는 유지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 구둣방 주인들은 자신이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정씨는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이걸 자식들에게 물려주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유씨도 “구두약 냄새가 풍기는 이곳이 나에게는 사람들을 만나 온 삶의 공간이라 쉽사리 접을 수 없다”면서도 “시대 흐름에 맞춰 앞으로 5년이나 10년 뒤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직업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 구아모 기자 amo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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