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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고 때려도 가만히 있는 게 상책?…‘학폭’ 피해자가 가해자 되는 세상

가해 학생에 목청 높였다가 사과·치료비 보상

추가 피해 막기 위한 대응이 부메랑 되기 일쑤

가해자 처벌수위 낮추는 ‘물타기’ 악용되기도

교육청 “휘말리지 말아야”…피해자 책임 강조

학폭위 심의 불복 건수, 3년 만에 92%나 증가

자료=이미지투데이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A씨는 평소 아들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로부터 지속적인 폭력과 따돌림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듣고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신도 막역히 지내던 아파트 주민의 아들이 가해 학생이라는 점이 믿기지 않았다. 진짜 억울한 일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아들을 데리러 간 학원에서 우연히 가해 학생을 마주친 A씨는 ‘아들을 더는 괴롭히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오히려 가해 학생은 “이미 사과했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A씨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목청을 높인 게 부메랑이 됐다. 가해 학생 부모는 자녀가 아동학대를 당했다며 되레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개최를 요청했고, 학폭위 결과 A씨는 서면 사과와 함께 치료비를 보상해야 했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들이 사후 대처 과정에서 억울하게 가해자로 둔갑해 추가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을 해결하려고 나섰다가 특정 발언을 문제 삼는 가해자 측으로부터 오히려 학교 폭력 신고를 당하는 식이다.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교육 당국도 “가해 학생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며 사실상 피해자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B씨도 최근 자녀가 가해 학생에게 대응하는 과정에서 던진 말 한마디에 발목이 잡혔다. 가해 학생은 학원 버스에서 B씨 자녀를 볼 때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난다”며 폭언과 함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등 폭행을 가했다. 견디다 못한 B씨 자녀가 “내가 음식물 쓰레기면 너는 아몬드야”라고 맞받아쳤다가 이후 학폭위에서 언어폭력이 인정돼 오히려 가해 학생에게 서면 사과를 해야 했다.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로 뒤바뀌는 일이 벌어져도 학교나 교육 당국은 오히려 피해자에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다. B씨 부모는 서면 사과를 결정한 심의 결과에 대해 교육지원청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담당 장학사는 “학폭 심의 기준에서는 방어적 행위도 폭력이 될 수 있다”며 “가해 학생의 폭력이 있더라도 그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학교 폭력 전문 변호사는 “가해자가 보복 감정에 따른 피해자와의 쌍방 과실을 주장할 때 이를 부정할 객관적 증거가 없는 경우 피해자가 억울한 상황에 놓이는 일이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가해자의 적반하장 식 대응은 이후 가해자에 대한 처벌수위를 낮춰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가해자도 일부 피해를 당한 당사자라는 사실이 인정될 경우 처벌수위 자체가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폭 전문 법률사무소 ‘유일’의 이호진 변호사는 “가벌성 측면에서 맞신고가 되면 심의위원도 사람이기 때문에 가해 사실이 희석돼 처벌 강도가 낮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학폭위 심의 결과에 불복하는 경우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6년 1,602건이었던 불복 건수는 2019년 3,096건으로 3년 새 93.2%나 급증했다. 박옥식 청소년폭력연구소장은 “누구나 자녀가 맞고 왔다고 하면 눈이 뒤집혀 소리칠 수도 있고, 피해자도 방어과정에서 맞대응할 수도 있다”며 “이러한 정황들을 고려해 심의해야 피해자가 두 번 울지 않게 된다”고 강조했다.

/허진 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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