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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High-K 특집: 'High-K'는 왜 업계의 슈퍼스타일까?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이 지난 10월 열렸던 2021 SEDEX 전시회 기조연설에서 High-K 메탈 게이트를 메모리에 첫 적용한 사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메모리는 HKMG 등 시스템반도체에 이미 도입된 기술을 적극 채택하며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하이(High)-K'라는 반도체 용어, 혹시 들어보셨나요? 저는 올해 기사를 쓰면서 이 용어를 정말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건지 다시 돌이켜보니, 삼성전자가 공식 석상에서 High-K 메탈게이트(HKMG)라는 용어를 여러 번 활용해서인 것 같습니다. 차세대 DDR5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D램에 High-K를 도입했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강조했었죠.

왠지 모르게 입에 착착 감기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는 반도체 용어. 그러면서도 느낌은 잘 안 오는 'High-K'. 이 녀석의 정체는 무엇인지, High-K 적용이 반도체 업계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에 대해 취재한 내용을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High-K'의 정체를 알기 전에 반도체 트랜지스터 구조를 살펴봐야 합니다

D램 트랜지스터 구조./사진=삼성전자


High-K를 본격적으로 알기 전에, 반도체 속에서 각종 전기 신호를 제어하는 트랜지스터(MOSFET)의 구조를 알아봅시다.

반도체 안에서는 수 억개의 트랜지스터가 열심히 일을 하죠. 트랜지스터는 전압이 트랜지스터로 들어오는 대문 역할을 하는 게이트, 이때부터 전기 알갱이(전하)를 공급하는 소스, 전하의 배출구인 드레인이 있습니다.

게이트에서 (+) 전압이 걸리면 순간적으로 소스와 드레인 사이 (-) 알갱이가 와글와글 모여 전기가 통하는 다리인 '채널'을 형성하게 됩니다. 마치 견우직녀 이야기에서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오작교 처럼요.

그럼 이제 트랜지스터 필수 요소인 절연막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바로 위 트랜지스터 그림을 보시면 게이트 바로 밑에 얇은 회색 막이 하나 보이시죠? 이게 절연막이라는 건데요.

절연막은 크게 두가지 기능을 합니다. 첫째로 △게이트에 전압이 걸리면 실리콘에 흩어져 있는 (-) 전하를 절연막 바로 아래로 박박 긁어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트랜지스터가 전하 알갱이를 얼마나 채울 수 있는지 가늠하는 정전 용량(Capacitance)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 (-) 알갱이가 게이트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임무를 맡아야 합니다. '누설 전류'를 막는다고도 하죠.

정전 용량을 잘 확보하기 위한 게이트 절연막 최적의 조건. 면적이 넓을수록, 절연막 두께가 얇을수록, 유전율이 높을수록 좋다./사진제공=삼성전자


게이트 절연막이 앞서 말한 정전 용량을 잘 확보하려면 크게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면 됩니다. △막 면적이 넓을수록 좋고 △막의 두께가 얇을수록 좋고 △유전율 'K' 값이 높으면 좋습니다.(정전용량 공식)

자, 본격적인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늘 그렇듯 오늘 발생하는 문제 역시 '집적도 높이기'에서 출발합니다.

첨단 반도체 시대로 갈수록 트랜지스터 크기는 갈수록 작아지고 있습니다. 제한된 면적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욱여 넣어 집적도를 높이기 위함인데요.

트랜지스터 크기가 줄어드는 만큼 절연막도 면적이 줄어듭니다. 따라서 더 이상 막 면적을 넓히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에 두 번째 조건인 절연막 두께를 얇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시작됩니다. 기존 절연막 소재인 실리콘옥사이드(실리콘산화물, SiO2)의 두께를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까지 낮추는 대수술을 진행하지만, 이제 너무 막이 얇아진 나머지 게이트 밖으로 도망나가는 (-)전하 알갱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누설 전류가 심각해지면 그만큼 칩의 전력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지겠죠.

그래서 마지막 남은 세 번째 방법을 쓰게 됩니다. 절연막 구조를 있는 힘껏 바꿔봤으니 이제 최후의 수단, 유전율 K를 올릴 수 있는 소재를 찾기 시작합니다.

◇슈퍼스타 'High-K'를 소개합니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 High-K가 나옵니다. 높은-K. 한글로 풀면 '고유전율'이라는 뜻인데요. 유전율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여기서 유전은 한자로 '誘電' 이라고 씁니다. '꾈 유', '전기 전'입니다. 네, 우리가 유혹이라는 말을 쓸 때 그 '유'입니다. 끌어들인다는 의미죠.

고유전율이니까, 한마디로 같은 전압을 걸어줘도 (-) 알갱이를 자기 발 밑에 더 잘 끌어들이는 녀석이라는 겁니다.

부도체인 절연막에서 ‘분극’이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위쪽에서 (+) 전압을 걸면, 별탈 없던 부도체 원자들치즈처럼 쭉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분극이 됩니다. 더욱 쭉 늘어날수록 분극이 더욱 확실하게 되기 때문에 절연막 밑으로 ‘확실하게’ 더 많은 전자가 모일 수 있습니다. High-K는 전기 알갱이를 끌어당기는 능력이 탁월한 물질을 말합니다. /사진 출처: 구글


그럼 절연막 안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볼까요. 기본적으로 절연막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입니다. 하지만 게이트에서 (+) 전압을 걸면, 절연막 구성 물질인 '원자'가 치즈처럼 쭉 늘어나면서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됩니다. '분극'이라고도 하죠. 늘어지는 모양이 크면 클수록 유전율이 큽니다. 많이 늘어날수록 분극이 확실해져서 실리콘에 흩어진 (-) 전하를 더 박박 긁어모을 수 있거든요.

오른쪽에 있는 물질일수록 유전율 K가 더 높습니다. 기존 절연막으로 쓰였던 실리콘옥사이드(SiO2)는 5미만인 데 반해, 새로운 게이트 절연막 물질로 활용된 하프늄옥사이드(HfO2)의 경우 20 안팎의 유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진 제공=연세대학교 나노디바이스 연구실


자, 이제 업계는 기존에 한계에 다다랐던 실리콘옥사이드(SiO2) 절연막 대신 분극이 잘돼 유전율이 높은 하프늄옥사이드(HfO2) 기반 절연막을 도입합니다.

업계에 따르면 실리콘 옥사이드의 유전율(K)은 3.9입니다. 반면 하프늄옥사이드의 유전율(K)은 제조사와 성분 조합마다 다르지만 약 5배 높은 20 안팎으로 알려집니다. 똑같은 전압을 가하더라도 같은 면적과 두께라면 절연막 바로 아래에 기존보다 5배 많은 (-) 알갱이를 모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또 한번 더 바꿔 말하면 High-K 절연막을 전보다 5배 더 두껍게 해도 기존과 같은 알갱이 수를 모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막이 얇아지면서 발생하는 누설 전류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거죠. 대안을 찾던 엔지니어들에겐 '신의 선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진만 삼성전자 부사장이 지난 7월 ‘2021 GSA Memory+콘퍼런스' 발표에서 HKMG를 적용한 메모리의 ‘문턱전압(Vth)’이 더 낮아졌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턱전압은 트랜지스터에서 전기가 통하기 위해 거는 최소한의 전압을 말하는데, 삼성은 HKMG 덕분에 기존보다 저전압인 1.1V로도 동작시킬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전력 효율도 기존보다 13% 나아졌다고 덧붙였습니다./사진 제공=삼성전자


또 절연막이 High-K 물질로 바뀌면서 게이트도 기존 폴리실리콘(Poly-Silicon) 기반 게이트보다 훨씬 궁합이 좋은 메탈(금속) 기반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도 High-K 절연막 못지않은 큰 사건이었는데요. 이렇게 게이트 소재가 대폭 바뀌게 되면서 ‘HKMG’라는 게이트 계의 슈퍼 스타가 탄생한 겁니다.

참고로, High-K는 트랜지스터 외에도 전하를 모아 데이터를 저장하는 D램 캐패시터에도 활용합니다. 전하를 잡아뒀다가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이곳에서는, 전하를 잘 잡아둘 수 있는 '지르코늄옥사이드(ZrO2)'라는 고유전율 물질이 주로 쓰입니다.

◇아무리 슈퍼 스타 High-K라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인텔이 2007년(중간) HKMG를 적용한 CPU 펜린을 발표했을 때 반도체 업계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폴리실리콘-실리콘옥사이드 기반 게이트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구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사진제공=인텔


사실 HKMG는 반도체 양산에 도입된 지가 10년이 넘어갑니다. 최초로 이 개념을 양산에 도입한 회사는 인텔입니다. 2007년 45나노 CPU 펜린(Penryn)을 발표할 당시, 인텔이 HKMG 도입을 함께 발표하면서 전 세계 반도체 업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폴리실리콘-실리콘옥사이드 기반 게이트 구조에 익숙했던 업계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혁신이었기 때문이죠.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를 넘어 D램에도 HKMG를 최초로 도입한 것도, 그만큼 D램 속 트랜지스터 집적도 올리기가 극한의 상황으로 도달하고 있어 채택했을 것으로 해석됩니다.

High-K 절연막 연구는 오랜 시간 지속됐지만, 업계에서는 이 절연막이 '골치 아픈 녀석'으로 통합니다. 기존 실리콘옥사이드에 비해 압도적 유전율 외엔 딱히 장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공정 문제. 실리콘 표면 성질을 열처리로 변형시켜서 만든 SiO2 절연막과 달리 High-K 절연막은 원자층증착(ALD)이라는 차세대 증착 방법으로 10나노미터 이하 두께 층을 만듭니다.

High-K 물질은 원자층증착(ALD) 공정을 통해 정교하고 빠르게 증착할 수 있습니다. 화학기상증착법(CVD)보다 깔끔하고 균일한 박막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꼽힙니다./사진=연세대학교 나노디바이스 연구실


아무리 첨단 공정인 ALD를 적용했다고 해도, 자연스러운 변형으로 생긴 기존 막보다 실리콘과 닿은 경계 면이 훨씬 울퉁불퉁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전자 알갱이가 마치 비포장 도로를 지나가 듯 통과하기 때문에, 기존보다 전류 배달이 상대적으로 덜 원활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 High-K 절연막 특성 상 도망가는 전하 알갱이가 아예 게이트 밖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절연막 사이에 끼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절연막을 파고든 가시처럼 돼 소자 성능을 불안정하게 할 바엔, 차라리 눈 앞에서 사라져버리는 게 낫다는 업계 분석이 있습니다.

게다가 High-K 절연막도 트랜지스터 크기 축소로 두께가 점점 얇아져야 하는 숙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설 전류를 막는 능력이 SiO2보다 뛰어나지는 않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업계와 학계는 현재의 하프늄옥사이드를 대체할 수 있는 혁신적인 High-K 물질을 찾아내는 데 더욱 골몰 중입니다.

◇Low-K가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High-K 물질이 있으니 반대로 Low-K 특성을 띤 친구도 있겠죠. Low가 '낮다'는 쪽의 어감이라고 해서 쓸모없는, 구시대적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유전율이 낮다는 것은 전하 알갱이를 끌어들이는 힘이 낮다는 뜻이죠. 그만큼 반도체 내에서 전기가 빠르게 이동하는 배선과 배선 사이를 채우는 부분에서는 Low-K 절연막이 상당히 유용하고, 필요한 상황입니다.

반도체 속 각종 배선 사이를 채우는 절연막에는 전류 이동 간섭을 최소화하는 Low-K 물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사진=IBM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배선과 배선 사이에 아무런 물질을 넣지 않는 것입니다. 진공의 유전율은 1에 불과하거든요. 배선 사이에 진공만 있다면 칩 속이 마치 우리 생활에서 보는 고가도로와 같은 모양이겠죠.

하지만 반도체 회로 사이에는 무언가를 반드시 채워야 하는 특성 상, 배선의 속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저유전율의 물질이 반드시 채워져야 합니다. Low-K든 High-K든 모든 절연막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Low, High-K 절연막은 마법의 원료, 프리커서(전구체)라는 주요 소재가 반도체 장비 내에서 반응을 일으키며 만들어집니다.

삼성전자가 올해 업계 최초로 HKMG를 활용한 DDR5 D램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사진은 DDR5 D램 모듈.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등 우리나라 반도체 제조사들은 막을 만드는 공정에서는 압도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료인 프리커서 제조 기술 경쟁력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 국내 업체들이 분전하고 있지만 프랑스 에어리퀴드, 독일 머크 등 세계적인 화학 회사들이 압도적 기술을 보유, 한 개 종류의 프리커서로도 수백 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내 칩 제조사들의 관련 원료 해외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게이트용 High-K 절연막이 반도체 발전의 열쇠를 쥔 기술인만큼, 앞으로 소재의 잠재성과 성장 동력도 무궁무진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High-K 소재가 어디서 나올지 모르고요, 쓰임새는 더 늘어날 거니까요. 투자 요인은 충분하고 우리는 세계의 연구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아직 10나노 후반 D램을 생산하는 중국 유력 반도체 업체가 HKMG 전문가를 찾고 있는 부분도 촉각을 세워야 할 부분입니다.

박태주 한양대 재료화학공학과 교수는 "인텔이 HKMG 기술을 처음 상용화한 1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가 그들의 뛰어난 기술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몰랐지만, 지금은 세계 최정상 수준에 다다랐다"며 "이 사례는 중국 등 반도체 후발주자에게도 유사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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