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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채우고 꺼내먹는 '푸드 셰어링'…"선한 영향력 퍼져 행복"[지구용 리포트]

■공동체 힘 보여준 수원시 '공유냉장고'

자영업자 주도, 음식낭비 줄이려 시작

라면·농산물·조리식품까지 무료 나눔

철저한 관리로 4년간 식중독 등 사고 '0'

"이웃과 관계 돈독…즐겁고 성취감 커요"

수원 공유냉장고는 지점별로 다르지만 매일 20~30명가량이 이용한다. 운영자 단톡방에서는 최근 ‘마이쮸 한 알을 두고 간 어린이’의 이야기가 공유돼 모두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진 제공=수원지속협




누구나 음식을 가져갈 수 있는 냉장고가 있다. 냉장고에는 인스턴트 카레, 라면, 음료수뿐 아니라 농산물과 김치·반찬 같은 조리 식품도 그득하다. 챙겨갈 수 있는 수량에는 제한이 있지만 무료다. 대신 다른 이용자들을 위해 음식을 두고 갈 수 있다. 경제학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것이다. 모두가 소를 먹일 수 있는 풀밭에서 각자의 이익만 챙기다 결국 풀밭이 황무지로 변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개념은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힘을 간과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운영되는 ‘공유냉장고’ 39대는 이런 공동체의 저력을 증명하는 훌륭한 사례다.

4년간 음식 안전 문제 ‘0건’


공유냉장고는 2018년 수원 고색로1호점을 시작으로 수원 전역에 퍼져나갔다. 운영 방식은 간단하다. 동네 식당 사장이 대표 운영자로 식당 앞에 설치된 냉장고를 관리한다. 혼자서 24시간 지켜볼 수는 없기 때문에 같은 동네 통장, 옆 카페 주인 등 2명의 공동 운영자도 관리를 돕는다. 냉장고는 24시간 열려 있고 음식을 두고 가든 가져가든 이용자의 자유다. 운영자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제때제때 버려야 하고 특히 상하기 쉬운 반찬류 등 조리 음식의 경우 냉장고에 들어온 당일 밤까지 가져가는 사람이 없으면 바로 처분한다. 냉장고마다 운영자들이 관리하기 때문에 지난 4년 동안 수원 공유냉장고에서 발생한 식중독 등 음식 안전과 관련된 사건은 ‘0건’이다.

사진 제공=수원지속협


그렇다면 냉장고 운영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냉장고 조달은 민관 협력 기구인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하지만 운영은 순수하게 민간이 맡는다. 지방자치단체 지원 예산은 전혀 없다. 박정아 수원지속협 사무국장은 “50~60대의 지역 자영업자, 통장들, 사회복지사 분들이 주로 운영을 맡고 있다. 자발적으로 ‘수원공유냉장고시민네트워크’를 만들어 회비를 걷고 3개월마다 운영위원회를 연다”고 설명했다. 이웃들과 오랫동안 선한 관계망을 유지해온 토박이들이 냉장고를 관리하고 누구나 공짜로 먹거리를 나눌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자 ‘우리 모두의 냉장고’가 됐다. 누군가 냉장고의 음식을 싹쓸이해가려고 하면 건너편 슈퍼마켓 사장이 냉장고 운영자에게 즉시 연락하는 식이다. 박 사무국장은 “냉장고에는 CCTV가 없지만 인간 CCTV들이 지켜주고 있다”고 표현했다.

돈보다 센 인센티브, 명예와 재미




운영자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돈이 아니다. 주로 50~60대인 운영자들은 냉장고를 관리하면서 독거 노인 가정이나 장애인 가정, 기초생활수급 가정 등에 직접 먹거리를 배달하기도 한다. 냉장고에 넣어두라며 운영자에게 농산물을 가져다주는 이웃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이웃들과 돈독해지고 먹거리 나눔에 기여한다는 성취감도 크다. 박 사무국장은 “돈보다 더 센 인센티브가 자존감·명예·재미·보람”이라며 “운영자분들께 힘들면 언제든 그만두시라고 하지만 본인이 즐거워서 하는 일이다 보니 오히려 극구 거절하신다”고 전했다. 그는 “공유냉장고를 보고 공유지의 비극을 떠올리시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공유지의 희극’”이라고 덧붙였다.

한 이용자가 공유냉장고에 남긴 메모. 사진 제공=수원지속협


공유냉장고는 필요한 이들에게 음식이 돌아가게 하고 음식 낭비를 줄인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농식품 중 약 14%인 500만 톤(2019년 기준)이 버려지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0조 원에 달한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조사에서도 전 세계에서 매년 생산되는 식량 40억 톤 중 3분의 1이 손실·낭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 9억 명을 먹이고도 남을 양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에서 등장한 음식 공유(푸드 셰어링)는 현재 전 세계 240여 개 도시로 퍼져나갔고 수원의 공유냉장고는 음식 공유의 한 모델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박 사무국장은 ‘민간 주도’를 비결로 지목했다. 그는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사고 가능성을 최대한 막기 위해 운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동사무소 운영 시간에만 냉장고를 개방하는 방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지속협에서는 기본적인 틀만 잡고 모든 권한을 지역 주민들에게 넘긴 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진 제공=수원지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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