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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흔들리자 미술계도 휘청

삼성·한진해운 등 위기에 산하 미술관 전시·후원 뚝

"독자생존도 어려운 판에…공익 기능 큰만큼 지원 필요"

오귀스트 로댕의 ‘지옥의 문(가운데 뒤쪽)’을 계기로 지난 1999년 서울 태평로에 ‘로댕갤러리’로 개관해 이름을 바꾼 삼성미술관 플라토는 지난해 중국 작가 류웨이의 전시를 끝으로 폐관했다. /서울경제DB




# 지난 연말 공개된 삼성미술관의 2017년 전시 계획은 미술계를 다소 놀라게 했다. 매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리움, 중구 태평로의 플라토,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까지 3개 관으로 나눠 빽빽한 연중 전시 일정을 알리던 것과 달리 리움의 주요 전시 단 2개만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이자 국내 경매 최고가(63억3,000만원) 기록을 세운 김환기 회고전과 글씨의 조형성과 정신성으로 한국미를 관통하는 서예전은 2개뿐이라고는 하나 의미는 상당하다. 리움미술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태평로 삼성생명 사옥 매각으로 플라토 미술관은 불가피하게 문 닫게 됐고 일련의 긴축 운영을 경기 변동을 감안한 통상적인 대응으로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지만 미술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말부터 위축된 삼성미술관의 분위기를 두고 “마치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이후 ‘개점휴업’ 상태를 암시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은 고미술, 특히 금석문·고지도 등에 관심이 많아 최근 리움에서는 이 분야의 전시가 눈에 띄게 늘었다.

# 과천에 본관을 둔 국립현대미술관이 2013년 숙원이던 서울관을 개관할 당시 가장 눈길을 끈 전시장은 설치작가 서도호의 작품으로 채운 ‘한진해운 박스프로젝트’였다. 당시만 해도 ‘잘나가던’ 한진해운이 후원한 연중 전시였다. 그러나 한진해운이 경영난에 빠지고 급기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면서 전시명은 ‘대한항공 박스프로젝트’로 바뀌었다. ‘떠넘기듯’ 옮겨간 전시 후원은 한진해운의 파산 선고와 함께 폐지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측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양지앙그룹의 전시가 끝나면 올해부터는 ‘서울관 박스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자체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을 뜻하는 메세나(mecenat)는 고대 로마의 예술 후원자 가이우스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예술 애호가를 뜻하는 패트론(patron) 역시 중세 이전부터 쓰인 용어다. 예술의 역사는 정치·종교 권력과 자본력에 의한 ‘후원의 역사’와 함께 성장했고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이른바 예술인 ‘블랙리스트’ 파문 역시 이를 꿰뚫어 반대 성향의 예술인에게 돈줄을 옥죄는 방식으로 쓰였다.

사상 초유의 오너 구속으로 삼성이 위기에 놓이자 미술계도 휘청이는 형국이다. 한진해운도 파산과 함께 ‘한진해운 박스프로젝트’만 사라진 게 아니라 고(故) 조수호 전 회장의 호를 따 만든 ‘양현미술상’까지 존립이 우려된다. 고 조 전 회장의 미망인인 최은영 양현재단 이사장이 2008년 제정한 양현미술상은 1억원의 상금과 개인전 지원을 제공하는 국제 미술상으로 세계 정상급 미술관의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을 맡아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여왔다. 그러나 한진해운 사태가 불거지면서 지난해는 시상식 없이 수상자 히토 슈타이얼에게 상금만 전달됐다. 올해는 3년 임기의 심사위원단을 새로 꾸려야 하는 시기라 진행이 원활할지 미지수다. 양현재단의 한 관계자는 “어렵게 만든 미술상이 권위를 쌓아가는 만큼 외부 영향이 있더라도 공익재단으로서의 활동은 꾸준히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모기업의 위기는 산하 미술관을 뒤흔들기 마련이다. 일례로 쌍용그룹이 사실상 해체된 뒤 창업주 김성곤 회장의 호를 딴 성곡미술관은 동력을 상실했다. 금호그룹이 위기설에 휩싸이면 금호미술관도 위축되곤 했다.

다만 대우그룹 해체로 경주의 선재미술관은 매각됐으나 서울의 아트선재센터는 김선정 관장의 의지로 살아남았다. 김 관장은 김우중 전 회장의 딸이지만 이를 넘은 전시기획자로서의 전문성이 해외 미술계에서도 인정받았다. SK도 최태원 회장의 구속과 사생활 문제 등 위기가 있었지만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은 ‘미디어아트’라는 특화된 장르에 대한 전문성으로 독보적 위치를 지켰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미술평론가는 “독자생존이 어려운 예술의 태생적 한계라 기업의 지원이 갈급한 미술계의 입장은 씁쓸하다”면서도 “미술관 및 문화재단 사업은 공익적 기능인 만큼 기업의 위기에서도 건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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