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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대책 없이 창업 권유...학생들은 신용불량자 속출

재정지원 눈 먼 학교에 떠밀려

덜컥 도전했다 대출 받고 폐업

실적 쌓기 급급한 대학 탓에

학생들 창업 거부감만 커져

서울 A대학에 재학 중인 신모군은 2년 전 학내 창업보육센터에서 창업했다가 최근 폐업을 결정하고 취업자리를 찾고 있다. 신씨는 “창업동아리에서 활동하다 학교 측의 권유로 창업에 나섰던 동료 30명 가운데 90%는 1~2년 만에 모두 그만뒀다”면서 “그 사이 나이는 차고 스펙을 갖추지 못해 취업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학내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뒤 학교의 권유에 떠밀려 치밀한 준비 없이 창업했던 것이 후회된다고 전했다.

정부가 대학 창업 활성화에 발 벗고 나섰지만 학생들은 ‘창업포비아(공포증)’를 호소하고 있다. 정부 재정지원에 눈먼 대학들이 내실 있는 지원은 소홀히 한 채 학생들을 창업으로만 떠밀다 보니 청년들이 무직자나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은 각 대학이 창업을 지나치게 실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제대로 된 지원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씨는 “학교에서 창업을 전폭 지원한다고 홍보했지만 1년 동안 사무실 공간과 사무용품 구입을 위한 100만원을 지원한 게 전부”라며 “막상 창업을 시작하면 개발인력 등을 채용해야 하는데 별도의 후속투자가 없어 돈줄이 막히는 바람에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1년 내내 학교에서 들은 것은 ‘경진대회 나가 실적 쌓아오라’는 말이 전부였다”며 “폐업 위기에 놓인 일부 친구들이 궁여지책으로 대출을 받았다가 신용불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푸념했다.





창업 3년 만에 최근 폐업한 최모(31)씨 역시 “직장생활 없이 창업에 나서면 자금조달이 가장 큰 문제인데 주변에 투자받을 길이 없어 대출을 받았다가 6억원의 빚만 떠안게 됐다”며 “엔젤투자(초기 투자)를 지원해주는 대학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실제로 일부 대학에서는 정부 대학평가에 필요한 실적을 쌓기 위해 학생들을 공공연하게 창업으로 떠미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 한 수도권 대학의 창업전담 교수인 박모씨는 최근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박씨는 “산학협력 관련 정부 지원 예산을 받으려면 창업실적이 필수라 각종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학생들에게는 대학이 사업자등록을 대행해준다며 창업을 사실상 강권한다”며 “능력이 부족한 학생을 희망고문하며 억지로 창업을 시켜 결국 신용불량자 양산에만 기여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두게 됐다”고 푸념했다.

이처럼 대학들이 무분별하게 창업 독려에 나서는 것은 관련 지원예산이 지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상대 산학협력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대학이 직접 수행하는 창업지원 사업은 총 15개, 예산은 5,000억원에 이른다.

최근 들어 각종 대학평가지표에서 창업실적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도 성급한 창업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정부는 2일 혁신성장의 첫 대책으로 ‘혁신창업생태계 조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대학평가 때 창업실적 비중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지원에도 현장에서 내실 있는 지원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수년째 대학의 창업 관련 실적은 초라한 수준이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대에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창업한 학생창업 기업은 9개에 불과했다. 전남대와 충남대에서는 각각 30개와 27개의 학생 기업이 창업됐지만 고용실적은 전혀 없었다.

의욕적으로 청년창업 붐 조성에 나섰지만 애초 취지와 다르게 흐지부지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학생들이 창업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이대 앞에 조성돼 주목받았던 ‘이화 52번가 상점가’에서는 정작 학생창업자를 만나보기 힘들다. 대학 측에서 사업시행 1년 후 자체 지원을 종료하면서 정부 지원을 받은 일반 창업자들이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창업 분위기를 이어가되 자체 재원 투입 없이 정부 돈으로만 창업을 장려하는 대학들의 행태가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 창업전담 교수는 “상장회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을 창업지원센터장으로 데려와도 ‘정부 지원금에는 한도가 있다’며 신입사원 연봉을 제시할 정도로 대학들이 자체 투자에 인색하다”며 “저임금의 멘토들이 대학가에 계속 유입돼 내실 있는 교육은 드물고 전도유망한 학생창업 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도 전무해 학생들의 창업 거부감만 키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진용·신다은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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