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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의 예(藝)] 조선 초기부터 근현대까지...한국 미술의 뿌리를 되짚다

'100회 연재' 뭘 담았나

국공립 기관 소장품 위주 작품 선택

김환기 '매화와 항아리'로 연재 시작

한국 미술가 관심 확대·재조명 기여

독자들 반응 가장 뜨거웠던 작품은

가족의 애틋함 되새긴 배운성 '대가족'

김정은 위원장 답방 맞춰 보여주려던

오윤 '통일대원도' 소개 못해 아쉬움

김환기 ‘매화와 항아리’ 1957년작, 캔버스에 유채, 55x35cm / 사진제공=ⓒ(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두 손을 펴서 열 손가락만큼, 알고 있는 한국 미술가의 이름을 말해 보시오.”

-박수근, 이중섭.

“국민화가라 불리는 분들이죠. 작품 이미지도 언뜻 생각나고. 좋습니다. 또?”

-백남준.

“오 훌륭합니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죠. 한국인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니까요.”

-천경자, 운보 김기창.

“그림 좀 아시는군요.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천경자, 한국화를 독창적인 현대미술로 연결 시킨 김기창까지. 또 누가 있을까요?”

-…김환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그림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여기서부터 대답 속도가 느려지는 게 일반적이다.

“생각이 잘 안 나시면 조선 시대 화가도 있잖습니까?”

-아 맞다. 김홍도, 신윤복.

“조선 후기 미술의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도화서의 화원들이죠. 친근한 풍속화로 잘 알려진 화가이기도 하고요.”

-음…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독특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우리 예술의 독창성을 통해 우리 문화의 주체성을 널리 알린 자랑스러운 화가죠.”

혹시 더 얘기할 미술가를 물으면 잠잠해지는 게 보통이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고자 질문을 바꿔본다.



“그렇다면 알고 있거나 좋아하는 서양 미술가의 이름을 얘기해 보세요.”

-빈센트 반 고흐. 피카소. 모네. 샤갈. 마그리트, 마네, 드가, 르누아르. 레오나르도 다빈치, 세잔, 또….

이상범 ‘초동’ 1926년작, 152x182cm 화선지에 수묵담채화.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금세 열 명이 꽉 차 버린다. 그래서 지난 2017년 3월 시작된 ‘예(藝)’는 총 100회의 연재 동안 한국 미술가에 초점을 맞췄다. 15세기 조선 초기의 왕족 화가이자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을 앞세워 근현대 화가까지, 대체로 작고 작가를 다루되 생존 작가는 1945년 해방 전 출생으로 한정해 미술사적 평가를 기준으로 엄선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경제 일간지로 지난 1960년에 창간된 서울경제신문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온 선도자인 만큼 혁신과 영감의 원천인 문화예술의 가치를 중시해 왔다. 이에 일찍이 1990년대 초반부터 예(藝)면을 통해 우리 문화·예술의 탁월함을 되짚으며 그 경쟁력과 우수성의 뿌리부터 되짚었다.

명작이 된 예술품을 완상하는 독화(讀畵)는 독서 못지않은 영감의 우물이요, 문제 해결의 원천이 되곤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창의력과 융합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된 상황이라 예술에 대한 주목은 더욱 중요했다. 김환기의 ‘매화와 항아리’로 시작한 ‘조상인의 예’는 조선 후기 화가 고람 전기의 ‘매화초옥도’, 우봉 조희룡의 ‘홍백매도’부터 조선 말기 최고의 화가였던 양기훈이 밑그림을 그리고 자수로 색을 채운 ‘자수매화도’까지 매화 그림 하나를 보더라도 시대와 기법을 달리했다. 푸른빛 나무 그림자가 웅숭그리던 겨울 추위 밀어낼 때쯤에는 한국적 인상파 오지호의 ‘남향집’을, 꽁꽁 언 땅이 녹고 그 틈으로 움틀 무렵에는 검은 흙색을 뚫고 웅숭깊은 생명의 빛 스며내는 윤형근의 ‘청다색’을 소개했다. 여름에는 김기창의 ‘청록산수’나 남정 박노수의 ‘류하(柳下)’ 같은 푸른 그림이 제격이었다. 시퍼런 바다를 상상하게 하는 남관의 ‘환상’을 비롯해 전혁림

김창열 ‘물방울’ 1973년, 199x123cm 캔버스에 유화. 실제인 듯 착각하게 하는 물방울들이 화면 상단에 올망졸망 모여있고 화폭 나머지는 비워둬 시적인 여운을 남긴다.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의 ‘통영항’이나 잉어가 물 가르는 조석진의 ‘군어유영’ 등은 그림임에도 더위까지 날려버리기 충분했다. 꽃으로 계절을 보자면 황염수의 ‘장미’나 도상봉의 ‘국화’가 있었다. 청전 이상범의 겨울 풍경이나 소치 허련의 ‘가을산수’부터 소정 변관식의 추색(秋色), 허백련의 ‘추경산수’, 노수현의 ‘사계산수도’까지 전통적 화풍이 보여주는 계절 미감에는 독자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고람 전기 ‘매화초옥도’, 29.4x33.3cm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따금씩 시절이 그림을 불러내기도 했다. 광장의 함성이 뜨겁던 때에는 개미떼처럼 모인 군중이 어우러지며 춤추는 이응노의 ‘군상’을, 가치관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제 자리 지키는 유영국의 ‘산’을 통해 마음 붙들게 했다. 월드컵 축구 열기가 달아올랐을 때는 광화문 응원의 장을 지키고 선 김세중의 조각 ‘충무공 이순신장군상’을 들여다봤고 수능시험을 앞둔 때에는 조선 중기의 과거시험 풍경을 그린 한시각의 ‘북새선은도’를 살펴보며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며 위안 얻었다. 빙상 종목이 주를 이루는 평창동계올림픽 시즌에는 얼음판 위에서 재주 겨루는 장면을 그린 강세황의 ‘영대빙의’를, 휴가철에는 조선의 선비 김윤겸이 50대의 어느 여름날 다녀온 영남지역의 명승 14곳을 그린 ‘영남기행화첩’을 소개해 한국 전통회화의 여러 면모를 두루 보여줬다.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던 지난해 봄에는 1953년 9월 판문점 휴전회담장‘을 세련된 색감으로 그렸던 변월룡의 ‘진달래’를 선보였는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에 맞춰 보이고자 했던 오윤의 ’통일대원도‘를 소개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시공을 초월해 사랑받아온 명작들은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교감할 때 더 깊은 감동을 전했다.

배운성 ‘대가족’. 근대기 가족사를 보여줄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534호로 지정됐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독자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작품은 추석을 앞두고 곧 만날 식구들을 떠올리게 한 배운성의 ‘대가족’이었다. 사료적 가치 또한 높아 등록문화재 534호로 지정된 이 작품은 옛날식 한옥에 옹기종기 모인 가족들을 서양화 기법으로 사실적으로 그려 주목을 끌었다. 감상 문턱이 높은 추상화를 친숙하게 소개한 것 또한 호평받았다.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이자 기하학적 추상의 대표작가인 한묵의 ‘금색운의 교차’는 작가에 대한 재평가를 이끄는 데도 한몫했다. 또한 ‘물방울의 화가’ 김창열과 ‘단색화’ 대표작가 권영우·박서보·정창섭·하종현 등은 이름값이 너무나 유명해 오히려 그림을 작정하고 들여다볼 기회가 적었기에 ‘예’를 통한 소개가 작품에 좀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 백남준과 박현기 등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격인 작가들과 박이소·이강소 등 개념미술과 행위미술에 대한 조명도 보람이 컸다.

이응노 ‘군상’ 1986년작, 한지에 수묵, 167×266cm /사진제공=이응노미술관


소개된 그림은 기사를 통해 관심 갖게 된 독자들이 손쉽게 찾아가 볼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공립 기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골랐다. 약 2년에 걸친 100회 연재 동안 우리 근대 미술, 한국화, 나아가 우리 미술가에 대한 관심과 재조명이 늘어났고 관련 전시도 증가한 미약하나마 의미 있는 기여로 평가된다. 예(藝)는 비단 미술품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입고 먹고 마시는 의식주를 비롯한 문화 전반의 ‘정체성’이요, 자부심과 자긍심이 근간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藝’는 이 100점 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 가지나 더 있다는, 그 자랑스러운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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