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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세편살]'한뼘 더 하늘 가까이' 2030세대에게 루프탑이 특별한 이유는?

'루프탑카페' '루프탑바' '루프탑수영장' SNS상 인기몰이

주거환경 열악하고 갑갑한 현실에 지친 청년세대, '개방감' 즐겨

우후죽순 늘면서 '안전문제' '불법운영' 우려도 커져





누구나 탁 트인 하늘을 보면 눈앞에 닥친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한숨 돌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도심에서 널따란 하늘을 만나기 쉽지 않죠. 그래서 그런지 빌딩숲 속 루프탑(rooftop)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루프탑은 건축물 지붕 전체 또는 일부에 경사를 두지 않고 평지붕을 설치해 사람이 나갈 수 있는 옥상을 정원, 여가공간 등으로 활용한 공간입니다. 최근 들어 우수한 주·야간 경관을 갖춘 루프탑이 카페, 주점 등으로 꾸며지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를 수상한 페터 춤토르는 “건축은 내부와 주변의 삶을 담는 봉투이자 배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루프탑 공간에 담긴 사회상은 어떨까요?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축 아이디어로 스톡홀름의 한 건축회사가 선보인 십(十)자모양의 ‘루프탑 수영장’./트위터


미국 시카고에 위치한 루프탑 바 ‘오프쇼어’의 전경/페이스북


■“해방감 느끼는 공간” 세계적인 루프탑 열풍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화재로 무너진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축 시 현재 문화를 반영한 새로운 건축양식 도입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건축가, 디자이너들의 첨탑 재건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쏟아진 가운데 스톡홀름의 한 건축회사가 십(十)자 모양의 ‘루프탑 수영장’을 제안해 장안의 화제가 됐습니다. 미국 시카고에서는 관광 명소인 ‘네이비피어’에 미국에서 가장 큰 루프탑바 ‘오프쇼어’가 개점했습니다. 그 규모가 1,000평에 이르고, 하늘뿐만 아니라 근처 미시간 호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네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루프탑 관련 게시물.


루프탑은 국내에서도 인기인데요. 인스타그램에는 루프탑을 주제어로 한 게시물을 검색하면 67만 2,000건이 뜹니다. 세부적으로 #루프탑카페 22만 3,000개, #루프탑바 8만 2,400개, #루프탑수영장 3만 3,700개 등의 방문 인증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루프탑 시설이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은 것을 알 수 있죠. 일주일에 한두 번은 루프탑바를 찾는다는 직장인 박 씨(27)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곳을 찾는다”며 “일반 가게보다 분위기가 훨씬 더 자유롭고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친구들과 함께 서울의 한 호텔 루프탑바를 찾은 김 씨(20)는 “루프탑에 가면 일상과 떨어진 새로운 장소에 온 기분이 든다”며 “루프탑 공간이 많아지면서 예전보다 접근성도 좋아졌다”고 전했습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조영진 연구위원은 젊은 세대가 루프탑 공간에 열광하는 이유로 ‘개방감’과 ‘경관’을 꼽았습니다. 그는 “80년대 이후 위생적으로 편리하나 외부공간을 향유하기 어려운 아파트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에게 탁 트인 외부공간과의 만남은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라며 “ 좋은 경관을 갖춘 루프탑에서는 일상과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온라인 점포 거래소 점포라인 사이트 화면.


루프탑의 인기는 부동산 시장에서 루프탑의 물량과 가격에도 반영이 되고 있는데요. 이태원의 M부동산 관계자는 “루프탑이 있는 상가 매물은 평균 시세보다 비싸다”고 말했습니다. 점포매매 플랫폼 점포라인에 따르면 홍대 소재 루프탑 레스토랑의 권리금은 평균 1억 원으로 2018년 서울 소재 숙박·음식점업 평균 권리금인 6,693만원에 비해 약 50% 높습니다. 이 지역에서 루프탑 카페를 운영하는 서 씨는 “개인 카페를 창업해 2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일반 상가 카페보다 수익이 좋다”며 “특히 여름에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전했습니다.

■‘조망인가, 안전인가’ 아슬아슬한 루프탑 안전기준

루프탑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많아지면서 정부도 루프탑 기준을 손봤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공공질서를 지키는 동시에 영업규제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식품접객업 옥외영업 운영을 일부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지난해 발표했습니다. 식약처는 루프탑에 고정 구조물이 아닌 이동식의 간단한 편의시설(파라솔, 식탁, 의자)을 설치하는 등 건축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자체장이 정한 장소와 시설기준 등을 충족하면 루프탑을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습니다. 이 지침에 따라 서울시는 서초구와 송파구, 서대문구, 중구 등 4곳에서의 옥외영업을 허용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업소는 옥상에 고정 구조물을 설치하는 등 지붕과 건축물을 불법으로 고쳐서 버젓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추락 위험 있는 루프탑 난간(좌)과 테이블이 근접배치된 루프탑(우)./소비자원 제공


안전 문제도 골칫거리입니다. 건축법에 따르면 루프탑 난간 높이는 120센티미터 이상이어야 하는데요.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서울·경기와 부산·인천·대구·대전·광주·울산 등 6대 광역시에 있는 루프탑 운영 업소 28곳을 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업소들이 법에서 명시한 난간 높이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손님들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난간을 일부러 낮췄다는 것이 업주들의 설명이었습니다. 또 24개 업소는 난간과 테이블 간 거리가 가깝거나 완전히 붙어있어 물건이 밖으로 추락할 위험도 있었죠. 소비자원 역시 이를 우려하면서 “일부 지자체가 특정 지역 옥상 내 식품접객영업을 허용하고 있지만 영업시간, 안전시설, 소방시설 구비 등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갈증을 풀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

이와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루프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조망권’에 대한 갈망 때문일 것입니다. 조망권은 휴식과 주거공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점점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대한지방행정공제회에서 발행한 ‘도시문제36권’ 간행물에서 오규식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좋은 경치를 조망함으로써 인간은 다양한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며 특히 “조망권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공간적으로 개방된 아름다운 경치를 볼 때 공간적으로 답답한 경치를 볼 때마다 1분당 평균 심장 박동 수가 낮아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루프탑 공간에 있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박 씨의 말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니었군요.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고시원 복도와 그 내부 모습./사진=마포구


과거 어느 세대보다 휴식의 질을 따지는 밀레니엄 세대가 조망권을 갖춘 주거환경을 갖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지난 2017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행한 ‘청년 주거 문제와 정책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전체 청년 가운데 17.6%인 45만 가구가 최저주거기준 미달 주택, 지하방이나 고시원 등 주거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6평짜리 월세방에 살고 있는 직장인 이 씨(28)는 “조그만 방 안에 내내 있으면 답답하다”며 “주말에 쉴 때만큼은 루프탑 카페같이 탁 트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35조에는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적으로 요구되는 인간의 생래적인 기본권”으로 환경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굳이 루프탑을 찾지 않더라도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해보며 류시화 시인이 옮긴 시 한 구절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당신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는가?

하늘은 멀었는가, 가까웠는가?

구름은 어떤 형상을 하고 있었는가?

바람은 어떤 냄새가 났는가?

당신에게 있어 좋은 하루란 어떤 날인가?”

-오사다 히로시 <최초의 질문> 중

/황민아 인턴기자 noma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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